섬나라 한정된 자원 ‘온고지신’ 돋보여

▲ 차분하고 멋스러움이 돋보였던 대만 시가지.
 대륙의 눈물, ‘대륙의 고구마’란 별칭이 붙은 대만 여행을 준비할 때 SNS에서 주로 떠도는 말이 ‘예스진지’란 것이었다.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 대만 하면 꼭 가볼 데를 이렇게 외우기 좋게 정리해 놓은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다. 그래! 우선 여기를 기본으로 다음 걸 준비하자 그렇게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난해 초가을, 네 남자의 대만여행기를 정리한다.

 무안공항에서 ‘아점’을 먹고 출발했다. ‘제주항공’을 탔는데 온통 주황색 비행기가 참 따뜻하고 아담했다. 별 불편함은 없었다. 단지 착륙 시 좀 요동친다 정도였다. 기내에선 물 이외에는 모든 걸 사먹어야 했는데 두 시간 동안 뭐 먹기도 그랬다. 창밖을 보는 사이 금방 대만 타오위안(桃園) 공항에 도착했다. 거기서 잠깐 고민하다 네 사람이면 기차나 버스보다 좀 비용이 들겠지만 택시가 더 제격이라는 큰 형의 제안에 흔쾌히 택시를 탔다. 오는 길에 지나치는 시가지를 보았는데 마치 뭐랄까 우리나라의 항구도시 부산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택시 운전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물론 말이 안통해서겠지만 좀 보수적인 국민성을 가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도시와 사람에게서 무언가 편안한 동질감 같은 걸 느끼면서 30분 만에 호텔에 도착했다. 트와이스 쯔위의 나라로도 통하고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달달한 영화로도 알려진 대만다운, 호텔 직원의 세련되고 친절한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호텔도 물론 깨끗하고 좋았다. 아침 11시에 출발 오후 2시쯤 호텔에 도착하여 방을 잡고 첫 대만여행을 시작했다.

 이제 해외도 하루 생활권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마침 호텔이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어 지하철을 타고 먼저 ‘화산1914’라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도 우리나라와 생김새나 분위기가 거의 흡사했다. 단지 지하철이라기보다는 거의 지상철에 더 가까웠다. 지하철에 비친 도시의 속살은 마치 재미있고 신기했다. 큰 길을 중심으로 한쪽은 현대화되어 있고 다른 한쪽은 곧 무너질 거 같은, 굉장히 세월의 때가 잔뜩 묻은 3~4층짜리 건물이 즐비했다. 양쪽으로 보이는 급격한 시가지 차이가 무언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듯 했다. 더욱 놀라운 건 분명히 그들은 불과 몇 십년(1949년) 전에 중국에서 건너온 본토 사람들인데도 우리나라 지하철마냥 고요하다는 것이었다.
 
▲요란하지 않고 멋스러운 도시재생

 연일 비가 많이 내렸다. 첫날은 ‘비 오네!’ 했지만 그 비가 계속 더 강도가 세지자, 그제야 아열대 기후대에 속하는 대만의 우기가 왔음을 알았다. 아무리 선행 공부를 열심히 해도 여행은 닥쳐야 아는 것들이 훨씬 많다.

 ‘화산1914’는 옛 양조장을 도시재생한 곳이었다. 그래서 창의문화원구라고도 부른다. 청년몰처럼 운영되는데 주로 창의적인 예술소품을 파는 작은 갤러리, 개성 있는 카페와 식당, 문화공방 등으로 운영된다. 건물은 단순하지만 이처럼 옛것을 현대에 살려놓으니 굉장히 빈티지한 매력이 물씬 풍겼다. 작고 아기자기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상품이기도 한 예술가들의 개성 있는 부스들을 둘러보노라니 오후가 금방 갔다. ‘어쩌면 향수일지라도 이렇듯 잘 살려놓으면 온고지신한 삶을 계속 누릴 수 있겠구나!’ 한창 도시 재생 열풍이 불고 있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곳이었다.
옛날 담배 공장을 재생해 문화예술공간으로. 화산1914창의문화원구.

 한때 우리처럼 일제 식민지 시대를 겪었던 대만엔 그 잔재들이 많다. 중국과 태평양을 견제할 목적으로 일본은 이 곳에 군사 기지를 두었지만 대만의 경제 산업 분야에 꽤 투자를 많이 해서 일자리 창출은 물론 아름다운 건물들도 꽤 많이 만들어 놓았다. 총통부 역시도 아직 일제 시대 석조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고, 그 당시 학교나 공장들의 잔재들이 오늘의 이런 문화 재생 현장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워낙 건물들이 튼튼하고 그 당시 유럽식을 가미하여 석조나 목조로 잘 지어진 터라 이런 내부 개조를 통해 역사가 숨 쉬는 건물로 재탄생한 것이다. 건축 예술은 우리가 직접 살아가는 곳이기에 얼마나 중요한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대만 재생현장은 예술, 문화, 환경, 청춘, 농촌, 동식물을 주제로 한 작품과 상품들로 대변된다. 그래서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고 멋스럽다고 느껴졌다. 느리고 낡은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는 끝없이 내리고 있었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려다가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다시 택시를 탔다. 택시를 자꾸 타다보니 저절로 알게 된 건데 이렇게 네 사람 정도가 이동하는 데는 택시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편의성, 가격, 시간 절약 모든 면에서. 세 사람이면 약간 아깝고 두 사람이면 망설이게 되고 다섯 사람이면 아예 타지 못한다. 계산 없이 네 사람을 맞추어 왔는데 택시를 타면서 ‘참 행운이다’고 생각했다.

 근처에 있어 통상 관광코스에 속하는 고궁박물관으로 갔다. 점점 더 ‘하드레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고궁박물관에는 지하로가 있어 입구에선 잠시 비를 피할 순 있었지만 이내 다시 우산을 펴야 했다. 바람까지 불어 신발과 하의가 몽땅 젖어 갔다. 여유 있게 관람할 상태가 아니었다. 금요일 날은 야간 개장을 한다고 했다. 우리의 운은 그런 시간과도 일치되었지만 기상과 몸 상태가 더 이상의 관람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나마 입장료까지 비싸서 이번 관람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당장 비를 피할 수 있는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기념품 가게에선 여기서 가장 유명한 유물들을 모방해 상품으로 팔고 있었기에 간접적인 관람효과를 낼 수 있었다. “중국 자금성 보물을 거의 가져왔다”는 고궁박물관의 대표 유물은 놀랍게도 옥으로 만든 배추와 돼지고기였다. 근처 식당에 이 두 가지 재료로 만든 메뉴도 있다는데 딱 우리나라 보쌈 느낌일 것 같았다. 옥조각, 시, 서화, 비문 그런 것들이 전시물의 주류였다. 중국 문화의 집대성이라고 하지만 역시 남는 것 건 글과 그림뿐인가! 세상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다가왔다. 이렇게 첫 날의 축축하고 서툴지만 나름 보람찬 하루일정을 보냈다.
타이페이 고궁박물관.
 
▲예류,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작품들

 둘째 날은 대만관광을 대표한다는 ‘예스진지’로 정했다. 이번 여행은 자유 여행이라 그냥 그날 그날 가고 싶은 곳 가면 그만이었다. 약간은 불편하기도하고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었지만 이곳은 바로 자유여행자의 천국 대만이었기에 괜찮았다. 전날 역시 여행하면 빠질 수 없는 호텔방 밤 미팅을 하면서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이른 아침, 호텔 프런트에서 택시는 불러주었다. 하루 종일 도는 비용이 우리 돈 15만 원 정도(대만돈 4000위안 / 100위안 = 4000원 정도)되었다. 하루를 우리를 위해서 온전히 투자한 것 치곤 괜찮았다. 드디어 전용기사까지 대동하고 예류를 향해 출발했다.

 대만 수도 타이페이에서 조금만 북쪽으로 가면 바로 바닷가가 나오기 시작한다. 어느 방향이나 마찬가지다. 대만이 우리나라 제주의 20배 한국의 1/3쯤 되는 거대한 섬나라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 예류 해안에 도착했다. 해안으로 나가기 전 입구에 수산 시장이 있었는데 건어물, 회, 튀김, 열대과일 등등 먹을거리가 즐비했다. 우린 말린 쥐포와 건망고를 사서 먹었는데 현지 기사님도 좋아하고 여행 중 간식거리로 그만이었다. 동남아 여행자들은 대개 고수와 어간장과 더불어 망고, 두리안, 람부탄 같은 열대 과일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매니아가 되든지 비호감이든지 둘 중의 한 가지 자세를 취하게 된다. 난 새로운 문물은 솜처럼 잘 흡수하는 성격이라 대체로 아무거나 잘 먹는다.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자연의 예술’, 예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그리고 100% 사실이다. 딱 보면 부드러운 모래 위에 세워진 곰보버섯 왕국을 연상시킨다. 마치 버섯처럼 마디는 하얗고 지붕은 까맣다. 어쩜 돌이 저런 모양이 될 수 있을까? 그 중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찬양하는 바위가 따로 있다. 바로 ‘네페르티티(여왕의 머리)’이다. 그녀는 매일 머리를 가다듬고 현재까지 매우 아름답지만 그러나 언젠가 빼빼 말라 죽을 시한부 모래의 운명을 지니고 산다. 모든 바위가 다 그렇다. 바람과 파도는 조각을 하지만 작품을 영원히 보존하진 않는다. 미련 없이 날마다 만들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우리는 단지 한 순간순간을 접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네페르티티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머릿결도 바람에 나부끼듯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여기서 사진 찍을 때는 포인트를 잘 잡아야 한다. 그녀의 프로필을 잡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걱정 할 필요는 없다. 딱 포인트에 발판이 그려져 있다. 그것도 좀 우습다. 왜 정해진 자리에 꼭 서야해? 한때 ‘넛지’라고 해서 그런 것들을 찬양했지만 왠지 남에게 끌려다는 것 같아 개성 강한 사람들에겐 은근 반항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난 물론 거기서 하나 찍고 다른 곳에 서서 하나 더 찍었다. 아마도 이런 걸 소심한 반항이라고 하던가?
예류 지질공원의 상징 여왕의 머리.

 예류에서 삼십분 쯤 달리면 진과스가 나온다. 진과스는 청일전쟁 이후 주둔한 일본이 개발한 금광도시로 일본식 다다미 집 그리고 사무실 정도가 아직 잘 보존된 채로 남아있다. 아참! 은색 출근 버스도 있다. 그닥 특별해 보일 것은 없는 곳이다. 그냥 고즈넉한 안개 낀 산마을을 산책삼아 한 바퀴 도는 정도였다. 현지인들에겐 향수를 자극할지 모르지만 관광객들에겐 잠깐 들르는 정도다. 소위 황금박물관이라는 곳엔 커다란 금괴 달랑 하나 유리관 속에 놓여있고, 들 수 있으면 가져가라고 건방지게 써있다. 유일한 관광거리는 일본식 광산 도시락 먹는 것이다. 그걸 파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다. 돈가스처럼 튀긴 생선이나 고기를 밥과 곁들여 먹는 것인데 일본풍의 깔끔한 맛이 느껴질 것 같았다(배불러서 못 먹음). 배고플 땐 여기 살짝 들러서 이 도시락으로 요기를 하고 주변을 산책하면 나름 매력이 있을 것 같다. 대만은 대개 이렇다. 중국 황산처럼 어메이징한 걸 기대하면 분명 실망하지만 소확행을 기대하고 가면 분명 그 이상이다. 아무튼 기대치를 낮추는 게 중요하다.
 
▲탄광을 자산으로 한 대표 관광지

 열번째 금광마을이 쉬펀이다. 쉬펀에도 아직도 기차가 다닌다. 마치 50년대 판자촌이 다닥다닥 붙은 우리나라 철도역 같다. 건물도 엄청 낡았다. 하지만 늘 문정성시를 이룬다. 바로 풍등 때문이다. 여기서 풍등 한번 날려보는 건 모든 대만 여행자의 워너비 하이라이트이다. 비싸지도 않다. 풍등 하나에 만 원 꼴이니 누구나 가볍게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다. 상점 점원들이 친절하게 인증 샷을 찍어준다. 온갖 포즈를 요구해주고 각 나라말도 꽤 하는지라 그냥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그들에게 맡기면 끝이다. 그곳에 가면 누구나 잠깐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사람 몸통만한 풍등이 촛불 하나로도 신기하게 날아간다. 그러다 건물에 부딪치기라도 하면 잠시 불이 난다. 보기엔 집이 곧 탈것 같아 불안하지만 상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풍등을 준비해 준다. 파란 하늘 위로 쉴 새 없이 풍등이 떠오르고 추억도 뭉게뭉게 떠오른다. 산 곳곳에 추락한 풍등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모르겠다. 대만인들을 보면 작은 것엔 별로 고민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쿠나마타나나? 딱 내 스타일인데.

 아홉 번째 광산도시 지우펀은 소문 그대로 그냥 홍등가였다. 홍등이 많이 걸려 있은 수많은 작은 상가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장터 골목을 이루고 있었다. 한때 일은 고되지만 돈은 넘쳐나는 금광도시의 상업 중심지였을 것이다. 세계적인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이곳이 워낙 예쁘게 나와 더욱 유명세를 탔다. 여기선 대만의 거의 모든 먹을거리를 만날 수 있다. 이곳 만의 과일빙수나 아메이 차 같은 유명 음식들도 있다. 역시 비가 몹시 내렸다. 골목 사이사이를 비와 사람을 피해서 마치 미꾸라지마냥 다녀야 했다. 냄새나고 피곤했다. 중년들에겐 좀 별로였다. 젊은이들은 그 고생마저도 감미로운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잘 다녔다. 내 기준을 일반화시키고 싶진 않다. 당연히 이런 복잡함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이리 유명해진 걸 거다.

 중국과 대만의 마라훠궈(우리나라의 샤브샤브 같은)는 무한리필이지만 좀 비싸다. 한 사람당 2만 원 정도, 길거리의 먹거리가 즐비한 이곳에서 2만원은 싼 가격이 아니다. 보글보글 끊는 맛있는 국물에 각종 야채, 해산물, 고기를 넣어 끓여서 건져 먹는 음식이다. 국물도 개운하고 각종 재료들도 다양해 맛있다. 물론 여기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비 맞은 후 먹은 훠궈는 내게 한국 국물같이 개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대만 음식들은 중국과 서양의 퓨전에 더 가깝다. 그래서 특별히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거의 맛있는 음식으로 통한다. 젊은 취향에 맞는 열대 과일이나 우유, 설탕을 이용한 과자나 아이스크림들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작은 섬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이들은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습관처럼 그냥 지어내는 것 같다.
갖가지 소원을 담아 풍등을 날리다. 스펀지역.

 사람들 겉모습만 보면 마치 중국 소도시 같은데,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고 친절하고 교통 편의는 물론 거리도 깔끔하다. 파란 신호등 안에 사람이 들어있어 신호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속도가 달라져 재밌다. 총통부 같은 총리관저도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시내 한 가운데 있다. 다만 경비가 좀 삼엄할 뿐이다. 사진 찍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스린이나 서문정 같은 재래시장들은 사실 하수구 냄새 나고 협소하고 좀 지저분하다. 이 나라 사람들은 그 냄새를 오히려 낭만으로 여기는 것 같다. 잊혀진 포차의 낭만을 우리는 애써 살리려 노력하지만 여기는 그냥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런 게 우리와 좀 다르다. 대만의 강점은 이 재래시장들처럼 수많은 자영업자, 중소기업들이 탄탄하다는 것이다.
 
▲아열대 나라 조변석개 기상이 변수

 중국은 대만을 ‘양안’으로 ‘하나의 국가’로 묶어두려 한다. 그래서 두 체제는 겉으론 평화롭지만 안으론 늘 긴장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곳곳에 전쟁 느낌이 난다. 전쟁기념관도 많고 학생들도 여전히 깃발 흔들기 같은 매스게임을 연습한다. 다윗과 골리앗 같지만 절대 중국에 기죽지 않으려 한다. 하나의 중국 그런 게 오늘날 가능하기나 한 걸까? 두 개 세 개의 중국으로 나누어 져야 세계사적으로 옳은 것이 아닐까? 누구나 끝까지 분전하는 약자를 응원하는 마음이 은근히 있다. 그런 걸 ‘언더독효과’라고도 한다. 나 역시 괜시리 밑에 눌린 개, 대만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힘내! 타이완!

 중정기념관에 왔다. 중정은 초대총통 장개석의 호였다. 장개석은 이곳 대만 원주민 입장에서 보자면 국민당 패잔병을 이끌고 온 침략자였다. 대만은 늘 그런 땅이었다. 중국에서 밀린 세력들이 주로 한발 후퇴하여 숨을 고르는 패배자이자 침략자의 땅이었다.

 장개석의 국민당은 본토에서 명분없는 전쟁(초공전)으로 공산당과 대립하다 몰락한 뒤 대만으로 도망쳤다. 중정기념관은 대만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간직돼 있는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대만의 사람이나 도시 풍경은 고요하고 이국적인 아열대 나라였다. 거리마다 아름드리 드리우진 수많은 가로수 숲은 도시와 자연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표본 같았다.

 대만일정 마지막 날 예상치 못한 태풍을 만났다. 아침에 비가 심상치 않더라니. 그 날 공항에 호기롭게 갔더니 급기야 태풍 경보가 발령되고 비행기는 뜨질 못했다. 부랴부랴 다른 운항 편(중국항공)을 알아보고 기쁘게 임시표를 받았지만 타기 일보직전에 거의 5배의 요금이라는 걸 알고 그냥 다음날 오는 비행기를 다시 예매하고 부랴부랴 타오위안(도원) 공항 가까운 호텔을 잡았다. ‘살다보니 별일도 다 겪는구나’ 생각했지만 뜻밖의 이런 상황이 가히 나쁘지 않았다. 저녁에 밥을 먹으로 나갔다. 고난 가운데 밥이라도 맛있는 것 먹자고 했는데 이리저리 맛 집을 찾아 또 헤맸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들 하지만, 모를 땐 식당을 최대한 두루두루 살펴보는 편이 악수를 방지하는 방법이다. 오랜 갈등 끝에 결국 맛있게 보이는 냄새 좋은 철판구이 집을 찾아 들어갔다. 언젠간 TV에서 본 것도 같은 기시감도 있어서였다. 그런데 그 맛은 와우! 대만 내내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기막힌 맛이었다. 비와 태풍이 몰고 온 불행이 이런 행운으로 다시 돌아올 줄이야. 대만에 대한 좋은 추억이 하나 더 늘었다. 다음 날 비행기는 무사히 날아올랐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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