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어매들의 삶이야기 모음집
‘시방은 암것도 안 무솨, 글자를 안께! ’

 <이 세상에서 제일 세고, 제일 강하고, 제일 훌륭하고, 제일 장한, 인생의 그 숱하고도 얄궂은 고비들을 넘어 매일 ‘나의 기적’을 쓰고 있는 장한 당신을 응원합니다. 이제는 당신꽃 필 무렵!>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마지막회에 붙은 헌사다.

 “왜 나를 숭글 디가 없어 여기다가 숭궈 놨나” 싶은 돌밭에서 스스로 일어나 꽃이 된 어매들한테도 바치고 싶다.

 무안여성농어업인센터에서 한글을 배우는 어매들의 삶의 이야기를 옮겨 쓴 모음집 《시방은 암것도 안 무솨, 글자를 안께!》. 글자를 알기 전에도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암것도 안 무솨’라는 불굴의 정신으로 살아왔고, 호강질(길)은 몰르고 고생질(길)로만 건너오면서도 발 디딘 자리에서 한사코 꽃을 피워내며, 가난하면서도 각박하지 않았고, 항꾼에 나누고 퍼주는 버르쟁이를 고치지 못한 어매들의 이야기다.

 강맹순 강영희 강정례 김고만 김단례 김연례 김옥금 김정순 김포접 김화엽 노정임 박삼녀 박은심 안덕심 안미순 유숙희 윤명애 윤연임 이경자 이백임 이삼임 이윤심 이현임 임춘금 전덕례 전정순 정광순 정매신 정정례 정춘심 주순례 최단임 최순례 최영자 김귀심 김옥자 김옥희 김순자 배대례 신금자.

 땡볕과 폭우와 거센 바람 속을 지나온 생애의 시간 속에서 핀 당신꽃들의 말씀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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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매들 말씀: 공부가 이라고 재미질 수가

 “저번 날은 동세가 녹두를 따달라고 해서 내가 뻔하니 사정을 알고 있응께 학교를 가야 하는디 할 수 없이 따주느라고 학교를 못 나왔당께. 나는 학교 다니는 재미로 사는디 녹두 따다가 학교도 못 가는 것이 겁나게 앵한 일이여.”(전덕례)
 
 “작년부터 내 신수가 아홉수인디도 겁나게 좋아분다고 우리집 식구가 말하더라고라우. 아매나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이 좋은 신수인갑서라우. 이라고 재미질 수가 없어라우.”(김연례)
 
 “그때는 사친회비가 있었제. 그래서 우리 아부지가 돈 든다고 학교를 안 보낸 것이제. 날만 쇠믄 나는 소를 띠끼로 갔제.”(박삼녀)‘
 
 “우리집 식구가 뭔 말을 할 때 꼭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속이 상해라우. 내가 속으로 그랬소. 내가 못다닌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그렇게 내 앞에서 내세울 일인가 싶을 때가 많더란 말이어라우. 그럴 때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이 한이었는디 이라고 학교를 다니게 된께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어부러라우.”(윤명애)
 
 “내가 무안 가는 버스 번호라도 알고자파서 궁리를 하다가 교회를 한 삼 년 다니고 났더만 알 것 같더라고. 그러다가 공부를 더해 볼라고 농업여성센터에 나가게 된 것이제. 인자는 귀가 안 들려 답답해 죽겄어. 어찌게든지 내가 더 들어볼라고 선생님 코 앞에 앙거서 듣는디도 모를 때가 더 많애불어라우.”(노정임)
 
 “남편이 살았을 때는 운전을 하니 내가 말만 하면 다 사다주고 해서 글을 몰라도 불편한 줄을 몰랐지라우. 그런디 남편이 가고나니 택배가 와도 모르겠고 영수증도 그렇고 글을 배워야 하겠더라고라우.”(안덕심)
 
 “자석들도 9남매나 되야. 모다 가르쳤어. 변호사, 선생, 호주로 가서 살고 있는 막둥이아들도 있제. 어디서 비행기 소리가 크게 나믄 나는 하늘을 쳐다보게 되더랑께. 어쩔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해. 자식이 많애도 질게 못 본 아들이 더 보고자플 때가 있더란 말이요. 잘 있는지 행펜은 어쩐지 저번참에 학교에서 편지쓰기를 하라고 할 때 내가 그 아들한티 편지를 썼제. 쓰고자픈 말은 많애도 받침이 애러워서 못쓴께 간핀하게 그립다고 해서 보냈더만 막둥이가 전화를 했더랑께. 울먹이믄서 엄마가 다 핀지를 썼다고. 내가 공부를 한께 좋길래 동네 질부한테도 말을 했더만 질부가 그래 ‘인자사 배워서 뭣한다냐?”고. 그래서 그랬어. 그 소리가 뭔 소리여? 엊그저께도 농협에 가서 돈을 찾으믄서 내 이름을 썼더만 농협직원이 깜짝 놀래믄서 어디서 배웠냐고 하드만.”(최영자)

어매들 말씀: 힘들고 설웠던 일을 생각함시롱

 “나는 이불이 없어서 요때기 하나하고 겨울 오바 하나로 애기들하고 삼년을 살았어. 이불이 없어 힘들고 설웠던 일을 생각함시롱 돈만 보면 이불을 사모으기 시작했제. 나중에는 이불이 너무 많애서 버려야 하는디도 절대로 이불을 버리지 못하겠드라고. 이불만 생각을 하믄 내가 눈물이 다 나와불어.”(박은심)
 
 “큰집에서 쫓겨나서 밤중에 옛날에는 서숙 모가지를 짤라서 마당에다 모태논 디서 새끼들하고 잠을 자라고 하드만이라우. 애기들은 서숙 위에다 요를 펴서 눕혀쓴디 내가 잘 자리는 없어 그 서숙 모가지 위에서 잘라고 하는디 몸뚱아리를 서숙모가지가 찔러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제. 너무나 살기가 힘들어서 삼십 대 초반부터 낙지장사를 시작했어라우. 낙지를 이고 팔러 다녔지라우. 그때는 바보같이 돈을 벌믄 한푼도 안 남기고 서방 손에다 났어라우. 그 돈을 받는 순간 이 남자는 그 돈으로 주막에서 술이나 받어묵고 놈들 사주고 나만 죽어났지라우.”(최순례)
 
 “나는 소를 띠끼고 소깔을 비고 하는 일을 죽어라하고 살았제. 내 밑으로 남동생들이 애래서 딸들만 일을 시캐. 깔 비어서 보리하고 썰어갖고 소 오줌 구댕이를 맹글러 갔고 그 오짐하고 똥을 찌끄러서 거름을 맹글았어. 맨 그런 일만 하고 어린 세월은 살아보지 못했어. 형제지간에 오순도순하고 재미지게 살아본 추억도 우리 집은 없었어.”(박삼녀)
 
 “지게질도 하믄서 농사일을 겁나게 했제라우. 옛날에 호밀을 지게에 지어 나를 때는 참말로 힘들었서라우. 키가 작은디 낄다란 밀모가지가 땅에 안 닿게 할라고 몸부림을 치믄서 지게질에 져서 짐을 부려 놀 때는 힘이 쑥 빠져서 일어날 힘도 없었당께.”(강맹순)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이 모두 영리해서 대학까지 나왔제. 촌에서 농사를 지어서 대학까지 갈치기가 힘들어. 대학시험 보는 날은 제발 우리 아들 이번 시험에서 대학을 갈 수 없게 해주라고 빌어불었제만은 대학에 합격을 해서 갤치느라고 겁나게 힘들어 불었어. 한 아들이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를 가믄 그 사이 월사금을 모았다가 다른 아들을 갤쳤제.”(전덕례)
 
 “남편이 죽기 얼마 전 뜬금없이 가스레인지하고 냉장고를 외상으로 사왔어. 그 가스레인지로 라면 하나도 못 끌여먹고 가셨구만. 남편이 나를 위해 한 일이 통털어서 그 일이었을께라우? 인자는 남편 무능을 말할 시간도 없었제. 내가 가장으로 삶을 살아내야 했응께. 장례를 마치는 날 호미를 들고 뒷밭에서 밭을 맸지라. 마을 사람들은 남편을 보내고도 일을 하는 독한 여자라고 빈정댈 수도 있었제. 하제만은 내 마음은 더 강해져야 살아갈 수 있겠다는 몸부림이었제.”(안미순)

어매들 말씀: 똑똑한 사람보다는 보드라운 사람이 좋겄더만 
 
 “어른들이 다 우리 집에서만 시아부이가 돌아가시기를 원하시더라고. 그래서 시숙한테 내가 그랬어. 그라믄 원을 들어주라고 그랬어. 시숙님이 말을 하라고 해서 수건을 삼백 개를 사다 주라고 했어. 그런께 왜 그러냐고 해서 시아부이가 생전에 욕심많고 꼽꼽하다고 소문이 나불어서 내가 동네 사람들한테 수건을 두세 개를 나눠 줄라고 그런다고 내가 말을 했어. 그래서 내가 참말로 그렇게 했어. 신발이고 수건이고 원없이 사람들한테 나눠줬제. 세상에 태어나서 남한테 여시 같다는 소리를 들으믄 못쓰는 일이여. 내가 이라고 놈하고 나눠먹기를 좋아한께 우리 아그들이 잘 풀린갑다고 내가 속으로 생각을 하제.”(윤연임)
 
 “시어매는 까시같은 심보를 발라 보라고 교회에 먼저 댕기게 했구먼. 천상 댕겨도 시어매는 그 까시 같은 성질은 고쳐질 기척도 없어. 참말로 모래알이 싹이 나제, 타고난 성질머리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제. 시어매를 보믄서 각심을 해불었어. 시어매같이 건성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말아야 허겄다는 생각을 깊이깊이 했제.”(이현임)
 
 “우리 자석들은 말도 못하게 나를 생각을 하제. 일을 하믄 자석들이 엄마하고 등을 질란다고 해라우. 그라고 못하게 해도 우리 집이 동네 가운데라서 사람들이 일을 하러 가는 것을 보믄 마음이 아파라우. 허던 살림을 재낄란께 이라고 마음이 아퍼라우.”(김포접)
 
 “시한에 눈이 오문 나는 잠을 안 자고 고샅을 다 쓸어놔야만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여.”(전덕례)
 
 “우리 자석들이 다 잘 사는 것은 아무래도 어른께서 심성이 밝아서 그런가 생각을 허제. 젊을 적에 어판장에서 갈치를 한 상자씩 사 오믄 한 마을에 사는 형님들하고 그 갈치를 나눌 때가 있제. 그라믄 그릇 세 개를 놓고 큰형님은 형님이니 제일 큰 것으로 골라서 넣제. 작은형님은 식구가 많으니 더 큰 것으로 담더라고. 본인 것은 그 중에 질 작은 것으로 담제. 우리 어른이 마음을 곱게 쓰고 큰 욕심을 안 부려서 자석들도 본을 받고 산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 나이가 들수록 욕심내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이경자)
 
 “내가 네 발로 가는 자가용을 타고 논둑길을 가고 있는디 경운기가 쏜살같이 달려들어불어. 어쩌겄어. 길가로 급하게 피하다가 논으로 퐁당 빠져불었제. 천만다행이 논으로 넘어져서 부드라운 흙이라서 얼굴만 다쳤제. 그랑께 딱딱한 것보다는 보드라운 것이 그라고 좋은 것이드라고. 사람도 똑똑한 사람보다는 보드라운 사람이 좋겄더만. 딱딱한 시멘트 같았으믄 인정사정없이 내 몸댕이를 내동댕이쳐불었제. 논흙은 조심조심 이리이리 해서 살그머니 나를 받아준 것이여.”(이삼임)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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