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흘 그리고 빛의 벙커
돼지고기 매개 동등한 위치서 지위 박탈

▲ 빛의 벙커.
 이렇게 사설을 마친 심방은 그 염원을 담아 마을의 리더들에게 신의 기운으로 씻어주고 소망을 기원해주는 절차를 마쳤다. 그런 다음 제단에 있는 제물을 동쪽으로 던져 드리는 일종의 고시레 같은 것으로 일단의 굿을 마무리했다.

 그 뒤를 이어 이번에는 제단의 뒤편에 둔 제상을 두고 제례를 올린다. 그런 다음 시누대를 붙들고 정화수의 역할을 하는 소주를 뿜어 정결하게 한 다음 신들린 듯 대를 흔든다. 심방의 눈은 이때 거의 신내림을 받은 듯한 빛을 쏘아내고 다시 제단으로 돌아 마치 활시위를 당기듯 겨냥한다. 그리고 냅다 뛰어가 그 제단앞에 엎드린다. 이 모습은 사냥꾼이 활을 당겨 짐승을 잡아 달아나지 못하게 잡으려는 몸짓과 다르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제의 앞에서 백조도령이 한라산의 수렵신이었다는 사실이 다시 상기된다. 수렵의 신인 백조도령과 농경과 생산의 신인 서정승 따님의 결합이지만 결국 돼지고기를 매개로 동등한 위치에서 지위를 박탈당하고 한 단계 아래로 내려간 여성신의 지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 중심에 있는 돼지를 생각해 본다. 농경의 생산이 풍요롭지 못한 제주라는 지역의 취약한 환경에서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돼지는 정말 요긴한 식재료였으리라. 하지만 비교문화적 측면에서 보자면 사막지대에서 그렇듯이 돼지는 인간과 같은 음식을 먹고, 물을 가장 필요로 하는 존재감인지라 돼지를 키우고 먹는 것을 금기시했다. 가장 소중한 영양공급원임에도 불구하고 금기시하는 것, 이를테면 사냥을 통해 주식을 공급하는 남성의 권위가 집에서 기르고 가꾸는 것이나 채취하는 것으로 또 다른 공급원을 제공하는 여성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면 이에 대한 시기심이나 권위의 전복에 대한 우려로 인해 이런 사단이 난 것이 아닌가 싶어지는 구절이다.
 
▲제주의 삶과 문화 찾아다니는 여행
 
 박대 받은 따님애기는 그럼에도 아기를 낳고 기르는 삼승할망의 지위를 부여받아 아기의 점지를 바라는 여인들의 치성을 받고 있다. 아이러니컬 하게 돼지가 한배에 여덟마리 새끼 돼지를 출산하는 유감주술이 여기 깃든 것 아닌가 싶어진다. 하여튼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건너오면서 우리들은 인간과 더불어 가축화하거나 반려화한 동물들을 더욱 접하게 되는데 이 시대의 돼지는 사육한 돼지는 아닐 것이지만 훗날 제주에서는 통시라고 해서 제주를 화장실과 한우리에 두고 키웠다. 화장실과 한곳에 사육하는 돼지의 이유를 중산간의 수많은 뱀 때문이라고 얘기를 한다. 슬그머니 집안을 침범하는 뱀은 사람에게 무서운 존재감이다. 그런 뱀과 상극이 돼지이니 이들로 하여금 뱀을 물리치라는 의미에서 울이 없는 퉁시에 돼지를 둔 것이다고 전해온다. 지금이야 흑돼지라고 해서 제주 오겹살로 비싼 가격에 팔리는 거듭된 종자개량을 거쳤지만 과거 관광객이 많지 않았던 시대에 우리는 똥돼지를 먹었다. 바로 통시에서 자란 돼지와 조라고 하는 곡물로 만든 막걸리인 조껍데기 술을 먹었던 2000년대 중반까지의 생활이 있었다.

 송당의 본향당과 와흘의 본향당의 제의는 많은 생각을 내게 주었다. 하고많은 관광지의 외양만 보고, 기실 그들이 간직해온 역사와 전통과 문화와 삶의 내밀한 구석을 보지 못하면서 풍경으로서 음미하는 여행법에 대한 회의감이다. 함께 한 동료들과 이런 얘기를 주고받을 필요는 없었다. 이미 우리의 목표는 내밀한 제주의 자연과 삶과 문화를 찾아 다니고 있으니.

 이제 걸음을 옮긴다. 성산일출봉쪽으로 방향을 잡아 어기적거리며 간다. 쓰러진 당산나무에 신격을 부여하는 심방의 사설이나 제주의 역사속에서 큰 맥락을 놓치지 않는 서사 구조의 힘은 구술문화가 갖는 자장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게 한다. 내 서가에 꽃혀 있는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라는 책을 아직 읽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밀려오면 제주 허씨를 내려 놓으면 반드시 읽어야 될 책이 두권이나 생겨났다. 제주신화에 관한 책과 구술문화에 대한 책이 그것이었다.
미디어아트로 구현된 빈센트 반고흐 작품.
 
▲비싼 가격에 외면당하는 관광 제주
 
 배가 아주 고파진 시간, 차는 일출봉 언저리의 식당을 찾아냈다. 70㎝급 갈치를 통째로 구워내는 집이었다. 그 갈치와 생선구이를 곁들여 먹는데 시장이 반찬 같은 것이지만 모양새는 요란한데 간이 배어있지 않으니 서운함이 가득한 식사였다. 소문난 잔치, 핫플로 유명한 곳을 검색하다가 우리는 이것이 실수였음을 갈치 한젓가락에 인지했다. 그저 제주의 다양해진 막걸리만 축낼뻔하다 가격이 두려워 우걱우걱 목안에 집어 넣었다. 생각해보면 제주의 관광지 주변 음식점은 가격이 실로 비싸진 것이 사실이다.

 육지에서는 8000원에서 1만 원이면 어지간한 식사를 마치는데 제주에서는 1만 원으로는 고를만한 식사가 거의 없다. 대부분이 1만3000원대를 형성하고 있으니 모두들 제주를 기피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다.

 먼저 언급한 흑돼지도 곳에 따라 다르지만 1인분이 150그람 정도인데 1만8000원대를 형성해서 양도 적을 뿐만 아니라 단가까지도 높아 제주에서 삼겹살도 마음껏 먹기 어려운 지경이기도 했다. 물론 비싼 임대료와 원가 탓도 있지만 과도한 가격들이 가져온 실망감은 이 돈이면 동남아나 일본가야지 라는 인식을 심어줄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예전의 제주관광이 항공권등을 독식하던 여행사 등의 선구매로 인해 옵션투어나 쇼핑, 사진과 비디오 강요 등으로 어지러웠던 시대가 있었고, 인터넷의 시대로 전환되고, 다시 저가항공의 경쟁시대로 되며 자유여행이 대세로 기울어지고 거기에 단체 보다는 가족이나 개별여행으로 변환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제주다운 매력물의 발굴이나 서비스의 질적 전환, 가격 경쟁력은 다른 외국에 비해 옛 모습 그대로인지라 관광목적지에서 제주가 배제되는 현상을 어떻게 제주관광업계는 생각하고있는지 궁금해졌다.
 
▲해저케이블 서버 공간이 미디어 아트로
 
 개운치 못한 식당을 나와 성산일출봉을 한번 우러러 본다. 제주 관광의 랜드마크로 변함없는 일출봉에도 설문대 할망의 자취가 남아있다. 등경바위라고 설문대할망이 등잔불을 얹어놓고 옷을 기우던 곳이 거기 있었다.

 누워서 저 일출봉을 보면 마치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 같아 보인다는 그곳에 우리는 눈만 맞추고 이제 서둘러 마지막 행선지인 빛의 벙커를 찾아간다. 과거 한국의 본토와 제주, 일본을 잇는 해저케이블의 서버를 관리하던 공간이었다. 1990년 평지 900평에 건물을 짓고 이를 흙으로 덮고 나무와 풀을 심어 마치 동산처럼 만들었던 곳이다. 2012년까지 사용하다 이를 민간에 위탁하여 커피박물관인 바움이 지역 커뮤니티의 문화활동 공간으로 이용하다 마침내 미디어 아트의 중심공간으로 이곳을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진즉부터 이곳에 대한 보도와 이야기를 들었기에 설레임을 가지고 찾아 갔다. 함께 일하는 동료는 작년에 들렀을 때 외부 주차장에 차를 두고 셔틀을 타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성황이었다고 했으니 내심 우리도 그럴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적었다. 이 또한 코로나의 영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빈센트 반고흐 전을 개막한지 한달도 못되어 10만명이 관람했다는 제주의 신문을 보았던 터였다. 동굴처럼 벙커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다. 입구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부자연스러움은 저 내부의 어둠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달라진다. 워낙에 바이럴 마케팅에 귀를 열어 두었던 우리 모두였기에 1만5천뭔의 입장료는 충분히 보상할 것이라 여겼다. 어둠을 그림으로 환치하는 공간인데다 그 그림이 접하기 힘든 고흐의 그림이기에 더욱 기대심리는 높아졌다. 게다가 생동감 있는 미디어 아트로 표현해 주는 것이니 첨단의 기기와 미술작품이 어떻게 조응할 것인지도 궁금증이 이는 마당이었다.
미디어아트로 구현된 빈센트 반고흐 작품.
 
▲제주의 신화, 그리고 미래로의 여행
 
 과연 내부로 들어서니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드넓은 공간에 빔 프로젝터를 통해 연신 작품들이 움직이고 있다. 먼 길은 좁혀져서 오고, 언덕은 마치 내가 오르는 것처럼 경사져서 다가가고, 그림에서 희미하게 나타나던 가족들의 모습은 마치 내 앞에서 펼쳐진 만찬의 자리처럼 눈망울이 초롱하다. 화상을 그린 그림이나 자화상, 초상화 들이 생동감 있게 그들의 내면깊숙한 곳까지 다가갈수 있는 것처럼 화면은 앵글을 집중하면서 포커싱을 해주고 있다.

 꽃과 화초와 가로수와 예배당 길 등의 그림에 있는 사람과 내가 더불어 있으면 이것을 보는 시선은 누가 그림이고 누가 관람객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경이 거기 펼쳐지고 있다. 별이 빛나는 하늘과 강에서, 해바라기의 정밀화에서 나는 세기의 화가 고흐와 혼연일체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네모난 큐브에 각가의 칸막이를 조정하여 마치 미로처럼, 굴처럼, 액자처럼, 창틀처럼 배치하여 걷는 걸음마다 신비한 그림의 세계에 몰입하게 하는 힘.

 불현듯 나는 내 고향의 이이남작가와 박상화작가 등과 광주광역시의 유네스코 미디어창의도시와 광주문화재단의 미디어놀이터와 홀로그램극장 등을 떠올렸다. 거기에 여권을 받기 위해 안보교육을 받으러 들렀던 광주공원 오르는길옆 벙커와 국군통합병원의 시설물까지도 부록처럼 따라왔다. 과거의 예술이 마치 붓질이 마르지 않는 작업중의 캔버스를 보는 듯한 시각적 충격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어서 서둘러 나와야 동문시장을 들려 귀향의 비행기에 오르는데 한시간반 동안 다섯명의 사내는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은체 작품과 그것을 품어낸 공간과 이를 구현하는 테크놀러지에 빠져 있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번 여행의 백미는 바로 이곳이었다고, 달구벌의 문화에서도 빛고을의 문화에서도 배울점이 많을 것이라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

 제주의 신화와 제주의 핏빛 함성과 제주의 미래를 새롭게 다져가는 현장을 찾아가는 3일간, 중년의 아저씨들은 깊은 울림으로 동문시장에서 고등어회와 해삼을 먹으며 다음을 기약하고 이별을 고했다.
전고필<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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