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자신답게 살아가기

▲ 꽁치가 활짝 웃습니다.
 꽁치는 아침이 밝으면 이불 속에서 크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납니다. 주황색 원피스잠옷을 벗고 샤워를 합니다. 비누로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습니다. 거울 속 자기를 보며 씽긋 웃어도 줍니다. 꽁치는 개운한 기분으로 옷장 문을 엽니다. 초록색,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파란색 치마들이 잔뜩 걸려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을까? 꽁치는 그날그날 마음에 드는 치마를 꺼내 입습니다. 꽁치는 치마를 입고 아빠가 구워준 달걀 프라이를 먹습니다. 또 어떤 날은 치마를 입고 형이랑 마당에서 농구를 합니다. 그리고 치마를 입고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갑니다. 축구를 할 때, 꽁치의 넓은 치마폭은 최고의 골키퍼입니다.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는 공을 치마폭으로 막을 수 있거든요. 또 공기놀이 할 때도 꽁치의 부드러운 치마폭은 제격입니다. 꽁치는 치마를 입고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고 술래잡기도 합니다.
 오늘은 즐거운 체육 시간이 들었습니다.
 “자, 모두 탈의실에 가서 체육복으로 갈아입으세요!”
 “꽁치, 너는 남자탈의실로 가야지.”
 체육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여자 탈의실로 향하는 꽁치를 선생님이 붙잡습니다.
 -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중에서
 
▲이분법적 사회에서 존엄하게 살아가기란…

 꽁치는 치마를 입는다. 꽁치의 옷장에는 치마만 있다. 꽁치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형제를 형이라고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부르는 것처럼, 치마를 입는 것은 꽁치에게 무척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형이 자신의 형이기 때문이고, 치마는 원래 자기의 옷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꽁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런 꽁치를 보면 낯설고 이상하게 보인다.

 치마가 원래부터 꽁치의 옷이었다 하더라도, 치마를 입고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처음부터,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기만 했을까?

 꽁치에게 옷 선택권이 없었을 때 꽁치의 엄마아빠는 꽁치에게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혔을 것이다. 왜냐하면 꽁치는 지정성별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꽁치는 옷 선택권을 가진 후로도 꽤 오랫동안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에는 지정성별에 따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성역할과 성규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꽁치도 처음부터 그것을 거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정답과 오답, 선과 악, 성공과 실패, 득과 실 등으로 극단적으로 세계를 둘로만 나누는 이분법적 사유방식은 사람을 경직되고 배타적이며 폭력적으로 만든다. 세계를 ‘이것’과 ‘이것이 아닌 것’으로만 인식하면 ‘이것’과 ‘이것이 아닌 것’ 이외의 다른 것은 ‘이것’과 ‘이것 아닌 것’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비정상적인 것이 되고 만다. 이 비정상적인 것들은 고유성이 재단되어 ‘이것’과 ‘이것 아닌 것’ 안에 강제로 포함되거나 ‘옳지 않은 것, 잘못된 것’이 되어 인식에서 삭제되거나 배제당한다. 그의 세계는 명확하기는 하지만 삭막하고 다양성을 포함하지 못해 편협하다.

 사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상과 비정상, 강자와 약자, 남성과 여성, 비장애인과 장애인, 자국민과 이주민, 기혼자와 비혼자 등 사람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사회는 이분법 안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래서 이분법 안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강제적으로 훼손하면서까지 이분법으로 분리되어진 두 측 안으로 포함시키려 한다. 그리고 이분법 밖의 존재들에게 부정한 것, 잘못 된 것, 위험한 것이라는 가치판단까지 덧씌운다. 이분법적인 사회에서는 이분법으로 분리된 양 측 사이에서도 한 측이 중심측이 되면서 중심측을 중심으로 정상과 비정상, 완전한 것과 불완전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으로 나뉜다. 중심측이 정상이고 완전한 것이기에 세계는 중심측을 중심으로 질서가 형성되어진다. 지배구조가 형성되고 논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꽁치는 치마를 입고 아빠가 구워 준 달걀 프라이를 먹고 형이랑 마당에서 농구를 하고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갑니다. 꽁치의 넓은 치마폭은 최고의 골키퍼!꽁치의 부드러운 치마폭은 공기놀이에 제격!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이분법적 사회는 남성 중심적 질서, 지배구조, 가부장제를 정당화한다.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차별과 억압을 인내하는 것을 미덕으로 교육받고 강요받는다. 성별이분법적 사회는 간성인 사람, 사회에서 여성 성별로 지정되었으나 남성의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 남성 성별로 지정되었으나 여성의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 여성도 남성도 해당되지 않는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 등 성별이분법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하고 그에 보내지는 차별과 폭력과 혐오를 조장하고 묵인한다.

 꽁치가 치마를 입는 것은 ‘성기를 중심으로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에 해당하지 않는 자신을 사회에 드러내는 살 떨리는 일이며, 또한 여성으로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가기 힘든 사회에서 스스로 여성임을 밝히는 일이다. 꽁치가 치마를 입는 순간, 다층적으로 사회에서 배제될 것이고, 혐오와 편견의 시선이 쏟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꽁치가 치마를 입은 것은 자신은 본연의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답게 살겠다는 처절하고 결연한 선언이라고 생각된다.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자신답게 살아가기1 - “저는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 나라와 국민을 수호하는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사관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소정의 교육을 받고 부사관 학교에서의 고된 훈련과정과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해 결국 부사관으로 임관하였다. 자신의 성 정체성 혼란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는 군인으로서 능력을 쌓아가며 임무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기도 하고, 군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 상장도 받았다. 그는 이 나라와 국민을 수호하는 군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월 23일 강제 전역 당했다.

 그는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그리고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동료와 부대에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호르몬치료를 시작했고 작년 11월에 군 복무 중 군부대에서 휴가를 얻어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휴가 복귀 후 ‘신체변화에 대한 의무조사’에서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받고 강제 전역 당했다.

 군에서는 그의 강제 전역 사유를 성전환 수술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신체가 군에 계속 복무할 수 없는 ‘심신장애 3급’ 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심신장애 3급’은 전신경근군이 완전 마비되어 군인으로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성전환 수술로 고환양측을 제거한 군인의 신체상태를 전신경근군이 완전 마비된 상태와 같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고환 제거 후 신체적 기능 변화에 대한 객관적이고 타당한 통계와 기준 자료 없이 군인으로서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만으로 그를 강제 전역시킨 것은, 그리고 국가인권위의 전역심사위 소집을 늦추라는 권고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전역심사위를 열고 강제 전역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사람의 행복추구권리를 침탈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본다.
친구들이 치마를 가지러 갑니다. 저마다 옷장을 열고, 모든 서랍을 살피고, 제일 예쁜 치마를 한 벌씩 골라 나옵니다. 집집마다 옷장 문이 튤립처럼 활짝 열렸습니다.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자신답게 살아가기 2 - “내 삶은 다른 사람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시되고 반대를 당한다.”
 
 꽁치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갑니다. 무언가 꽁치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 앞에 한참 서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꽁치가 아빠에게 말합니다. ‘저, 여기 나가고 싶어요.’ 꽁치가 아빠에게 내민 것은 ‘사과소녀선발대회’ 포스터였습니다. 아빠의 얼굴이 난감해 하는 표정입니다. ‘글쎄.... 너희 엄마와 한 번 상의해 보자꾸나.’ 꽁치는 사과소녀선발대회에 나가기 위해 워킹연습도 하고 장기자랑도 준비하고 우승소감도 미리 연습했습니다. 하지만 엄마아빠는 꽁치가 사과소녀선발대회에 나가겠다는 말을 한 후부터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치마들 전부 다 치워 버리자고 했잖아요!”
 “그래도 꽁치는 바지보다 치마가 잘 어울리는 걸.....”
 “당신이 그 모양이니 꽁치가 자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거라고요! 내가 꽁치랑 얘기해 봐야겠어요!”
 엄마는 꽁치의 방문을 두드렸어요. 꽁치 방에 들어온 엄마는 꽁치를 껴안고 엉엉 웁니다. 엄마의 눈물이 꽁치의 어깨에 떨어집니다. 꽁치의 어깨가 불에 덴 듯 뜨거워집니다. 엄마가 꽁치에게 말합니다.
 “내일부터 치마는 입지 않기로 약속해 줄래?”
 -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중에서
 
 꽁치는 왜 미인대회에 나가고 싶었을까? 획일화된 외모를 기준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평가하고, 여성을 존엄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성적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미인대회를 우리의 꽁치는 왜 나가고 싶었는지...왜곡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인간이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닌 것처럼, 왜곡된 성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가 여성이 아닌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가부장제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던 여성들의 많은 수는 여성이지만 남성중심의 성인식, 성문화, 성역할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가부장적인 질서를 오히려 옹호하고 공고히 하기도 한다. 꽁치도 가부장적 사회에서 나고 자란 그런 여성인 것이다.

 꽁치가 미인대회에 나가기를 꿈꾸는 것을 보며, 아름다운 치마와 가녀린 몸매, 부드럽고 고운 말투 등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여성성이 좋아서 치마를 입은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트랜스젠더를 ‘여장에 성적 페티쉬를 느끼는 남성’, ‘상품화된 여성의 외모와 조작된 여성의 기호 등을 선망하여 여성이 되기를 선택한 자’, 그래서 ‘왜곡된 여성성을 고착시키는 사람’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사람의 성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본연의 그의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술이 좋고 담배가 좋고 책이 좋고, 화려한 옷이 좋아서 그것을 선택하고 소유하는 것처럼 성은 여성이 좋아서, 남성이 좋아서, 트랜스젠더가 좋아서, 무성애가 좋아서, 양성애가 좋아서, 이성애가 좋아서, 동성애가 좋아서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성을 선택의 문제로 이해한다면, 선택은 바꾸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므로 트랜스젠더, 양성애자, 무성애자 등은 치료와 교육을 통해 시스젠더로, 이성애자로 고쳐놓을 수 있다는 의미이며, 고치기 위한 각종의 방법과 시도를 용인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사회가 성기를 중심으로 그의 성을 지정하기 전부터 그는 자신의 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지키며 살 것인지, 숨기며 살 것인지나 왜곡시키며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선택 아닌 선택이 남을 뿐이다.
친구들이 치마를 가지러 갑니다. 저마다 옷장을 열고, 모든 서랍을 살피고, 제일 예쁜 치마를 한 벌씩 골라 나옵니다. 집집마다 옷장 문이 튤립처럼 활짝 열렸습니다

 사회 지정성별은 남성이었지만 자신의 성인 여성으로 성전환하고 성별정정까지 마친 트랜스젠더여성이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대학에 최종 합격하였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합격소식이 알려지자, 숙명여대 학내 게시판에는 ‘성전환 남성의 입학을 반대한다.’라는 대자보가 붙고,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막기 위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이 만들어지고, 일부 페미니즘 동아리는 성전환 남성의 입학을 저지해야 한다는 의견들을 쏟아냈다. 이 학교 신입생 익명 단체대화방에서도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 찬반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학교에 합격하였던 트랜스젠더 여성은 끝내 이 학교입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은 지정성별은 남성이지만 자신의 성은 여성이었기에 어린 시절부터 멸시와 혐오와 차별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의 성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었다면 그는 멸시와 차별을 받을 이유가 없다. 성별이분법적 사회에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기에 괴롭힘과 혐오를 받아왔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임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정말 여성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대로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자신답게 살아가기
 
 ‘성전환 남성의 입학을 반대한다.’라는 대자보가 붙을 때 옆에 “트랜스젠더 여성의 우리 학교 합격을 환영한다.”라는 대자보가 나란히 붙었다. “여대는 사회적 차별과 억압을 받아온 사람이 여대에 입학하는 것”이라는 말을 할 때 “숙명여대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교육과 연대를 위해 탄생한 학교, 사회적 약자·소수자와의 동행과 연대는 숙명인의 출발이며 계속 확장해나가야 할 가치”라는 의견이 나왔다. “남성이 여성의 안전한 공간을 침입해 들어 온다.”는 주장에 “사회 소수자와 약자에게 보내는 배제와 혐오를 없애는 것이 사회 전체를 보다 안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꽁치야, 오늘 왜 학교에 안 왔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옷장에 치마가 모두 사라졌어. 그래서 학교에도, 사과소녀선발대회에도 나갈 수 없게 됐어.”
 “우리가 치마를 찾아 줄게! 창문 밖으로 넘어와!”
 친구들이 치마를 가지러 갑니다. 저마다 옷장을 열고, 모든 서랍을 살피고, 제일 예쁜 치마를 한 벌씩 골라 나옵니다. 집집마다 옷장 문이 튤립처럼 활짝 열렸습니다. 모두 꽁치를 위한 옷장이 됩니다. 꽁치와 친구들은 대회장 앞에 도착했습니다. 꽁치가 무대 위로 한걸음 한걸음 나섭니다. 꽁치가 노래를 부릅니다. 관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남자애가 치마를 입었어.”
 “여자야, 남자야?”
 “목소리가 남자애 같아!”
 “세상에!”
 그때,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보다 훨씬 더 큰 소리로 누군가 꽁치를 부릅니다.
 “꽁치야!”
 엄마와 아빠와 형입니다. ‘치마 입은 꽁치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라는 플래카드를 높이 치켜들고 있습니다. 꽁치는 활짝 웃습니다.
-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중에서
 
 꽁치가 꽁치로 웃을 수 있어서 참 좋다. 행복하다. 꽁치는 자신의 본연의 모습으로 가족 곁에, 친구 곁에 우리 곁에 쭉~ 있을 것이다. 성별이분법을 거부하는 삶과 인식, 차별을 저지하는 실천, 다양성을 수용하는 태도, 사람을 옹호하는 선택과 가치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논의되고 실현되기를 바란다.
하수정 <인권교육연구소 뚜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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