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꽃 필 무렵
무안 어매들의 삶이야기 모음집
임춘금

▲ 손놀릴 틈 없이 기어이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임춘금 어매.
 <이 세상에서 제일 세고, 제일 강하고, 제일 훌륭하고, 제일 장한, 인생의 그 숱하고도 얄궂은 고비들을 넘어 매일 ‘나의 기적’을 쓰고 있는 장한 당신을 응원합니다. 이제는 당신꽃 필 무렵!>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마지막회에 붙은 헌사다.
 “왜 나를 숭글 디가 없어 여기다가 숭궈 놨나” 싶은 돌밭에서 스스로 일어나 꽃이 된 어매들한테도 바치고 싶다.
 무안여성농어업인센터에서 한글을 배우는 어매들의 삶의 이야기를 옮겨 쓴 모음집 《시방은 암것도 안 무솨, 글자를 안께!》. 글자를 알기 전에도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암것도 안 무솨’라는 불굴의 정신으로 살아왔고, 호강질(길)은 몰르고 고생질(길)로만 건너오면서도 발 디딘 자리에서 한사코 꽃을 피워내며, 가난하면서도 각박하지 않았고, 항꾼에 나누고 퍼주는 버르쟁이를 고치지 못한 어매들의 이야기다.
 강맹순 강영희 강정례 김고만 김단례 김연례 김옥금 김정순 김포접 김화엽 노정임 박삼녀 박은심 안덕심 안미순 유숙희 윤명애 윤연임 이경자 이백임 이삼임 이윤심 이현임 임춘금 전덕례 전정순 정광순 정매신 정정례 정춘심 주순례 최단임 최순례 최영자 김귀심 김옥자 김옥희 김순자 배대례 신금자.
 땡볕과 폭우와 거센 바람 속을 지나온 생애의 시간 속에서 핀 당신꽃들의 말씀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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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이 고구마로 가득 찼다. 빨랫줄에 빨래 대신 매달린 것은 고구마 빼깽이. 크고작은 채반들에 널어둔 고구마 조각들이 햇볕과 바람에 꼬득꼬득 짱짱한 단맛을 품어가고 있다.

 “자석들 손지들 오문 요런 것도 군임석이 되제.”

 손놀릴 틈 없이 무어든 궁리하여 기어이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임춘금(83·현경면 마산리 마산마을) 어매.

 “시집 온께 식구가 나할라 열다섯이여.”

 아들 형제가 열 명. 신랑은 그 중 셋째였다. 식구들 밥이며 옷이며 뒤치다꺼리가 끊이지 않았다.

 “증조할매가 결혼한 지 얼마 안되어서 증조하나씨가 병으로 느닷없이 돌아가셔붓다요. 남편 따라 죽을란다고 감나무에 목매달았는디 배를 몬차본께 뭣이 잽히는 것이 꼭 임신한 것 같애서 도로 살아개갖고 그 손이 이러코 퍼졌제.”

 ‘죽어야겠다’에서 ‘살아야겠다’로 넘어온 증조할매의 결단 덕에 수많은 생명이 피었다. 그 유복자가 결혼해서 칠남매를 낳고, 또 그 아들이 열 형제를 낳았다.

 어매는 시집와서 스물 넷에 큰딸을 낳았다. 그때의 고통은 지금도 어매한테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밤으로 닷새 낮으로 닷새를 고생하고 낳았어. 벵원에도 안가고 밤나 피만 뚝뚝 떨어지고 애기는 안 나오고. 하도 아파서 방바닥을 뿍뿍 기어댕긴께 아파서 무릎이 다 벗어져 불었더라고. 그러코 보대끼다가 애기를 낳았어.”

 애기 낳고 삼일 만에 일어났더니 이불 빨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불 호지(호청)가 일곱 폭인디 시어마니가 그것을 뜯어서 물에다 당가놨어. 날이 더웁기는 하고 당가논 그 물이 거푸거푸 일면서 괘. 애기낳고 나서 암것도 못 묵는디 들샘으로 빨러 갔당께. 멀제. 산너매여. 근디 건둠벙이라 말라서 물이 없어. 여그 저그 가도 물이 없고 겨우 겨우 물 나오는 시암을 찾아서 뽈아갖고 왔당께. 그 빨래는 죽어도 잊어묵들 못해.”

 그래도 시어머니 살아생전에 큰소리 한번을 안내고 살았다. 맘속에만 품고 시어머니한테 못다한 말들은 무엇일까.

 “인자 다 소양없어. 그때 안한 말 뭐더러 인자사 해?”

 “힘들게 살았어도 우리 아그들이 한나 삐뚤어지도 안하고 잘 컸어. 큰딸은 대학 4년제 합격했는디 아들 대학 보낸다고 못보내겄다 했제. 아들만 거석하고 그전에는 딸은 안갈치요. 그때 대학 못보낸 것이 젤로 미안하고 후회돼.”

 안방 문 위에 가족사진이 걸렸다. 유정한 눈길로 늘 어루만지는 자식들 얼굴이 그속에 있다.

 “저 꺼멍양복 입은 놈이 몬자 가부렀어라.”

 막둥이 아들이 십여 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떴다.

 “아들 잃어버리고 애를 태왔제. 밤으로 낮으로 잠도 안오고 그런 제가 한 3년 이어지더니 손떨리는 증상이 와라. 속에서 화로 난 병이라 고치지는 못한다고 합디다. 마음에서 난 병이라고. 살았으문 쉰두 살. 항시 잊을 때가 없제.”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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