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꽃 필 무렵
무안 어매들의 삶이야기 모음집
강정례

▲ “니가 그 강을 다 살고 건너고 나문 존 일 있을 것인께, 친정 어매가 그러코 말한 것을 나는 가슴에 담고 버투고 살았어.”
 <이 세상에서 제일 세고, 제일 강하고, 제일 훌륭하고, 제일 장한, 인생의 그 숱하고도 얄궂은 고비들을 넘어 매일 ‘나의 기적’을 쓰고 있는 장한 당신을 응원합니다. 이제는 당신꽃 필 무렵!>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마지막회에 붙은 헌사다.
 “왜 나를 숭글 디가 없어 여기다가 숭궈 놨나” 싶은 돌밭에서 스스로 일어나 꽃이 된 어매들한테도 바치고 싶다.
 무안여성농어업인센터에서 한글을 배우는 어매들의 삶의 이야기를 옮겨 쓴 모음집 《시방은 암것도 안 무솨, 글자를 안께!》. 글자를 알기 전에도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암것도 안 무솨’라는 불굴의 정신으로 살아왔고, 호강질(길)은 몰르고 고생질(길)로만 건너오면서도 발 디딘 자리에서 한사코 꽃을 피워내며, 가난하면서도 각박하지 않았고, 항꾼에 나누고 퍼주는 버르쟁이를 고치지 못한 어매들의 이야기다.
 강맹순 강영희 강정례 김고만 김단례 김연례 김옥금 김정순 김포접 김화엽 노정임 박삼녀 박은심 안덕심 안미순 유숙희 윤명애 윤연임 이경자 이백임 이삼임 이윤심 이현임 임춘금 전덕례 전정순 정광순 정매신 정정례 정춘심 주순례 최단임 최순례 최영자 김귀심 김옥자 김옥희 김순자 배대례 신금자.
 땡볕과 폭우와 거센 바람 속을 지나온 생애의 시간 속에서 핀 당신꽃들의 말씀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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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어마니가 징허니 까탈시로왔어. 시어마니 시집살이에 눈물로 밥을 삼고 살았제.”

 강정례(75·해제면 양월리 신촌마을) 어매의 시집살이는 한없이 매웠다.

 “삼동네서 다 말해. 그런 메느리 못보문 어떤 메느리 얻을라고 그러냐고. 시집온께 시동생들이 양발이랑 옷이 다 떨어진 채로 댕기더라고. 낮으로 일하고 밤에 양발이나 옷을 꿔맬라고 해도 불도 못쓰게 해. 초롱불(호롱불) 아깝다고. 시어마니는 내가 하는 것이 고러고 다 미왔어. 이불속에서 더듬아서 몰래 꿔매고 그런 시상을 살았어.”

 막둥이라고 집에서 이쁨 받고 크고 동네에서 매시랍단 칭찬 듣고 살았던 어매였다.

 “저런 각시는 좁쌀양석 싸갖고 댕개도 못 얻은다고 그랬어. 사람들이 나를 나쁘다 해야 존디 사람들이문 다 나한테 잘한다근께 시어마니가 나를 더 미와했어. 빨래를 흑허게 백옥같이 해놔도 탓을 해. 시집올 때 비누 많이 갖고 왔다고 함부로 많이 쓰냐고 머시라그래. 밤마다 토방갓에 걸치고 앙거서 잔소리를 한께 사람 못살아.”
 
“효부상 저것을 나를 뭐더러 줬으끄나”

 스물한 살이던 해 섣달 열엿새날에 어매는 시집을 왔다.

 육남매 장남 며느리였다.

 “시집와서 가매에서 나온께 사람들이 나를 방 아랫목에다 앉혀다 놨는디 시어마니가 난중에 그래. 방에 큰 산덩어리 앉혀놓은 것처럼 보이더라고. 시어마니 눈에 안좋게 보였다 그말이겄제.”

 신랑은 놈의집살이를 하는 머슴이었다.

 “내가 시집오자마자 얼마 살도 않고 설도 안 쇠고 놈의집으로 다시 가더라고.”

 신랑 없는 시집에서 혼자 온갖 설움을 겪었다.

 “시어마니는 산에 나무하러 갈 때도 동네 각시들하고 같이 못가게 했어. 행이나 당신 숭볼까봐. 하래는 나 한자 앞엣산으로 가서 나무해갖고 질라고 하다가 그 무건 생솔가지 둥치가 넘어감서 자빠져서 허리를 다쳤어. 근디 시어마니가 벵원에도 못가게 해. 아파죽겄어서 든눠 있는디, 밭에서 꽤를 비어다놓고는 내가 꾀부리고 든둬있다고 재 긁는 당글개를 갖고 와서 투덕투덕 뚜들더라고. 제때 치료를 못해서 내가 허리벵신이 되아불었어.”

 어매는 효성 지극하다고 시부모 봉양 잘한다고 표창장을 4개나 받았다.

 “저 효부상 저것을 나를 뭐더러 줬으끄나고 울었어. 저런 거라도 없으문 악착이나 한번 내봤을 것인디. 행이나 뭐이나 잘못하문 저런 년을 상 줬다고 숭이 나올깨비 그런 소리 안들을라고 애쓰고 살았제.”

 날마다 친정동네 바라보며 우는 날 많았다.

 “저그 나가문 친정동네가 바라다보여. 날마다 석양녘 설풋해지문 친정쪽 쳐다봄서 울었제. 내 눈물 받았으문 강 하나는 됐을 거이여. 바다도 된다고 봐야제.”
 
“친정어매 말씀을 가슴에 담고 버투고 살았어”

 “시어마니가 사람 짠한 중을 몰라. 쌍둥이 배갖고 있을 때도 일을 많이 시캤어. 애기 날 달에도 밭을 매라 하고 바다에서 포래를 뜯어라 하고. 밭을 매라근디 못 매겄더라고. 엎지지를 못한께.”

 첫애기 가졌을 적 태몽이 각별했다.

 “시암에 동우 갖고 물을 질러 갔는디 어떤 사람이 큰산에서 내려왔담서 내가 물이고 가는 디로 따라와. 쪽박을 당글당글 띄운 물동우를 한방울도 안 흘리고 왔는디 그때 본께 그 사람이 우리 작은오빠여. ‘막둥아 너는 내 말을 들어라 물동우를 얼른 집에다 내려놓고 나 따라 가자’ 그래. 큰산 고랑을 따라 올라간께 거그에 머리도 긴 산신령 같은 양반이 있는디 무삽지 않더라고. 그분이 네모난 곽을 들고 있는디 너삼(산삼)이 기래졌어. 작은오빠가 ‘저그 빛나고 있는 분이 산신령님이다. 시킨 대로해라’라고 해서 그런다고 그런께 너삼 기려진 것을 나를 주더라고. 그것을 갖다가 앞다지에다 딱 너놨는디 애기를 가졌어.”

 그 산신령님은 어매 꿈속에 이따금 나타났다.

 “언젠가 꿈속에서는 니그 집 앞에서 젤로 큰 소나무가 보일 것이다. 그 솔나무 꼬닥에서 내가 항시 내려다보고 느그 자손들을 쓰다듬어줄 것이라고 언젠가는 행복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셔. 나와서 건네다본께 진짜 솔나무한나가 보이더라고. 긍께 나는 항상 그 솔나무를 쳐다봐.”

 그 솔나무는 어매한테 평생에 걸친 의지처고 기도처. 굽어살피는 존재가 절박하게 필요했던 어매의 마음이 낳은 꿈이고 믿음인지도 모른다.

 딸을 시집보내면서 “어찌끄나 시어마니를 본께 내 딸 고생하게 생갰다. 그래도 어쩔 것이냐. 잘 전디고 잘 살아야한다”고 눈물로 당부했던 친정어매는 막둥이딸 시집보낸지 일년 만에 세상을 뜨셨다.

 “니가 그 강을 다 살고 건너고 나문 존 일 있을 것잉께, 친정어매가 그러코 말한 것을 나는 항시 가슴에 담고 버투고 살았어.”

 유난히 수줍고 고운 웃음을 지닌 어매. 시난고난 살아오면서도 지켜온 웃음이기에 더욱 귀하고 물큰하다. 어매는 지금 좋은 세월이 왔다고 여기며 산다.

 “자식들이 모다 착하게 잘 커서 무탈하게 잘 산께.”

 “시어마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시아바이는 오래 사셨제. 시아바이가 돌아가실 때 돈을 백만원 모태놨다가 내 손에 쥐어주더라고. 광에 가문 횃가리푸대가 있응께 그것을 가져오라고 해서 본께 백만원이 들어있더라고. 그때 돈 백만원이문 컸제. 아들을 주제 왜 나를 주요 긍께 아들보담 너를 줘야제 그럼서 아들한테 당부를 하더라고. 이집에 와서 메느리가 고생했응께 인자 너라도 잘해주라고. 돌아가시고나서 나도 울고 소도 지 새끼를 띠고 울고 고양이도 숫내를 내서 울고, 셋이 그라고 울었어.”

 어매는 오늘도 집 앞 솔나무 쳐다본다.

 “이산으로 감서 쓰다듬어주고 저산으로 감서 쓰다듬어주고 항시 돌봐주시는 신령님, 고맙습니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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