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_5]길냥이(3) 선택

냥이들이 밥주라고 울어댑니다. 토방 데크 뛰어다니는 소리, 희미하게 냐~옹 하는 소리. 일어나서 부엌불을 켜고 일을 좀 합니다. 그리고 거실 창문을 열면, 의자 위에 올라 있는 놈, 의자 아래 수그리고 있는 놈, 데크에서 쳐다보고 있는 놈, 그야말로 놈놈놈입니다. 
냥이들이 밥주라고 울어댑니다. 토방 데크 뛰어다니는 소리, 희미하게 냐~옹 하는 소리. 일어나서 부엌불을 켜고 일을 좀 합니다. 그리고 거실 창문을 열면, 의자 위에 올라 있는 놈, 의자 아래 수그리고 있는 놈, 데크에서 쳐다보고 있는 놈, 그야말로 놈놈놈입니다. 

필자는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 아내(곰순)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곰돌곰순의 귀촌일기_5]길냥이(3) 선택

냥이들이 밥주라고 울어댑니다. 토방 데크 뛰어다니는 소리, 희미하게 냐~옹 하는 소리. 일어나서 부엌불을 켜고 일을 좀 합니다. 그리고 거실 창문을 열면, 의자 위에 올라 있는 놈, 의자 아래 수그리고 있는 놈, 데크에서 쳐다보고 있는 놈, 그야말로 놈놈놈입니다. 
엄마 흰냥이는 대문 안쪽에 다소곳이 앉아서 이쪽을 보고 있습니다. 아빠 검냥이는 현관 데크 계단 바로 아래에 앉아서, 일어난지가 언젠디 인제야 내다보냐는 듯이. 쳐다봅니다. 
현관문을 열면, 예전에는 후다닥 마당으로 튀는 놈, 뒤로 돌아서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놈, 몇 걸음 물러서다 긴장한 채 쳐다보는 놈들이었습니다. 
요새는? 글쎄, 이렇게 달라졌네요. 데크에서 몇 걸음 다가오는 놈, 의자 위에서 저를 보고 ‘냐 ~ 하’ 하는 놈, 의자 밑에 있다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얼른 따라와서 밥 주라는 놈. 
냥이들이 우리가족을 많이 받아주고 있는 듯. 하지만 한 번도 곁을 주지는 않아서 직접 만져보지는 못했답니다. 반 년 정도 되었지만 태생이 길냥이임을 감안하면, 이 정도에 감사. 
냥이들을 따라 밥 주러 대문으로 가다 왼쪽 텃밭에 눈을 돌리니, 아, 밭이 온통 파헤쳐져 있습니다. 어제 아내가 열무 뽑은 자리에 여러 종류의 상추 씨앗을 심었다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맨 땅인 곳들이 몇 곳 보입니다. 신경이 좀 쓰입니다. 
냥이들과 공존을 계속 해야 하나? 

냥이들 놀이터가 된 텃밭

장마 끝날 무렵부터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답니다. 새로 밭을 갈아서 상추, 쑥갓, 당귀 모종을 심었답니다. 다음날 보니 냥이 새끼들이 눕고, 뒹굴고, 파헤치고, 다시 묻고,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니 절반 정도 되는 땅에는 새싹들이 자라지 않습니다. 
장마 전에 열무를 심어 놓은 게 잘 자라지 않았답니다. 벌레들이 많았지만, 농약을 안 한 거라 깨끗이 씻어서 먹으면 괜찮다고 아침마다 싸먹거나 샐러드를 해서 먹었답니다. 근데 시간이 갈수록 잘 자라지도 않고 심하다 싶을 정도로 벌레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가족회의를 한 대로 싹 다 뽑아버리고 땅을 일구고는 여러 채소 씨앗을 심었답니다. 그런데 냥이 새끼들이 아내 주변을 앞으로 뛰고 옆으로 뛰면서 뒹굴고 파헤치고 하더랍니다. 야단을 치고 손을 내밀거나 한 걸음 움직이기라도 하면 옆으로 피했다가 다시 와서 또 놀이터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봅니다. 땅을 갈면 푹신해서 냥이들이 좋아한답니다. 결국 그 밭에서는 싹들이 자라지 않게 되겠지요. 냥이들을 마당에서 기를 때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랍니다. 그래서 결국은 ‘선택’을 하게 된답니다. 밭이냐, 냥이냐.
몇 번 찾아온 검냥이를 챙겨준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습니다. 게다가 검냥이가 구역싸움에서 이긴 모습을 본 후에는(귀촌일기 1 참조) 그냥 있기가 뭐해서 본격적으로 챙기기 시작했지요. 그것이 지금은 암컷인 흰냥이에다 새끼들까지, 아, 이렇게 될 줄 처음에는 진짜 몰랐습니다. 
챙겨주는 음식들이 은근히 많습니다. 여러 종류의 사료와 간식에다, 종류별 멸치와 노가리, 생선까지. 끼니때만 찾아오던 아이들이 이제는 집을 잘 나가지 않은 듯합니다. 식사 후 안 보이면 어김없이 나무 밑이나 정자 밑, 옥상 그늘에서 자고 있습니다. 여름에 접어들면서 냥이 가족들이 정자를 완전히 장악해 버렸습니다. 봄에는 오전에 집안 일 끝내면 커피를 내려 정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더랬는데. 여름에는 덥기도 했지만, 냥이 가족을 배려한다고 정자 근처에는 아예 가지를 못했답니다. 냥이 가족이 하루 종일 정자에서 자기 때문에 혹시라도 깨울까봐서요(정자 에피소드는 다음에 서술하겠습니다). 야행성이라 저녁에는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알 길이 없지만, 아마 마당이나 옥상에서 노는 것 같습니다. 새벽에 현관 문을 열면 몇 초 있지 않아 우루루, 옥상에서 내려오는 걸 보면은요. 

며칠 동안 회의 ‘답정야옹’

“한 마리면 몰라도, 다섯 마리는 너무 많아.”(어, 새끼가 네 마리 아니었나? 네, 새끼흰냥이 에피소드는 다음에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내의 말입니다. 
“거두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제와서 내칠 수는 없지 않겄냐이.”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며칠 동안 결론이 뻔한(!) 회의를 합니다. 그리고 끝은 꼭 어떻게 예방을 할까. 밭을 갈면 울타리를 하는 건 어떨까? 나무로, 그물망으로, 철망으로. 하지만 이것도 곧 시들해집니다. 얘들한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요. 
하지만 이대로 그냥 지나가는 건 화장실 가서 일 보고 뭐 안 닦고 나온 것처럼 좀 찝찝합니다. 어쩔 수 없이 결정을 해야 하는 거지요.
밭을 포기해야 할까요? 냥이들을 쫓아내야 할까요? 어렵습니다. 
냥이들을 선택하면 밭을 포기해야 하는데, 이사 온 목적이 냥이들을 기르기 위해서였나? 밭을 만든 이유가 냥이들 놀이터 때문이었나? 그럼 앞으로 잎싹 채소들은 로컬푸드에서 다 사먹어야 하나? 
밭을 선택하면 냥이들을 쫓아내야 하는데,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부정이 되는 건 아닐까? 아니, 스스로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하는 건 아닐까? 냥이들과 함께 하면서 느꼈던 즐거움, 기대감, 설레임, 보람 등은 더 이상 없는 걸까? 최근 새끼들 눈을 쳐다보면 ‘냐 ~ 하’ 해 주던 것도, 아내가 새끼들 먹이를 주는데 발라당 뒤집어 배를 보이고 네 발을 허공에 대고 흔들어 댔다며 기뻐하던 모습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겠지? 
이쯤 되니 ‘기회비용’(어떤 선택으로 인해 포기된 기회들 가운데 가장 큰 가치를 갖는 기회 자체 또는 그러한 기회가 갖는 가치를 말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을 저절로 따지게 됩니다. 나무위키에서 기회비용을 설명한 걸 인용해 보겠습니다. 
A라는 대안을 선택할 때 다른 B, C, D 대안들 중에서 최선책을 선택하지 못하는 비용과 현재 들인 비용의 합계를 의미한다. 경제학적으로 설명하자면 A라는 선택을 하면서 소모된 비용을 '명시적 비용'으로, A라는 선택을 했을 때 잠재적인 비용을 '암묵적 비용'이라고 한다. 그리고 A를 선택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대안들 중 가장 큰 가치를 지닌 대안의 가치를 ‘기회 비용’이라고 한다.
이걸 참고 삼아 두 경우 비용을 산출해 봅니다. 밭은 채소를 가꾸든 냥이 가족 놀이터가 되든, 어차피 저희 집 재산이기 때문에 밭의 비용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밭을 선택하는 걸 채소 선택으로 하면, 들어가는 비용(명시적 비용)은 채소 씨앗 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인데, 보통 한 봉지에 몇 백 원, 귀한 거는 천 원 대입니다. 그래서 여러 종류를 합해서 5,000원을 잡습니다. 냥이 가족은 저희가 비용을 들여서 사지 않았기 때문에 비용은 0원입니다. 그런데 냥이 가족을 선택하게 되면 씨앗 비용뿐만 아니라 채소를 사서 먹어야 하기 때문에 최소 비용으로 10000원을 잡았습니다. 
이걸 참고해서 냥이 가족과 채소밭의 기회비용을 도표로 그려봅니다.

냥이와 텃밭의 기회비용
냥이와 텃밭의 기회비용

냥이들과 씨앗들의 공존으로 

기회비용이 낮은 걸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밭을 선택해야겠습니다. 그것이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충실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계산을 하고 보면 속에서 거부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이러한 원리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계산을 해서 이익이나 이득이 나는 쪽을 선택하는 게 선택자에게 항상 좋은가, 라고 물어보면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꼭 그렇지는 않거든요. 살면서 깨달은 삶의 아주 작은 이치는 돈, 이익, 이득, 비용 등의 개념을 동원할 때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선택이지만, 어떤 상황과 조건, 인간관계 아래에서는 손해가 막심한 걸 선택하기도 하고, 또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냥이가족을 선택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미 가족회의를 했을 때부터 암묵적인 결론이기도 합니다. 회의를 한다 해도, 냥이들이 어떤 피해를 입힌다 해도 ‘답정너’(답은 정해졌어, 너로!)처럼 ‘답정냐옹이’인 거죠. 근데, 이 선택이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비용으로 계산하기 쉽지 않은 냥이 가족에게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과 즐거움, 여유와 힐링, 사색, 아이디어 등을 생각하면 저희 가족이 냥이 가족을 선택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오히려 몇 배 더 많을 거 같거든요. 
아침에 운동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아내가 귀띔을 합니다. 밭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집에 가서 확인해 보라고. 무얼까, 혹시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머라도 있다는 것일 텐데, 얼른 확인하고 싶습니다. 마당에 들어 밭을 보는 순간, 아 ~, 머리가 맑아집니다. 
새싹들이 나왔습니다. 냥이들이 구르고, 파헤치고, 헤집어 놓은 그 밭에 새싹들이 가지런히 나와 있습니다. 어떤 곳들은 듬성듬성하고 또 어떤 곳들은 삐뚤빼뚤하긴 해도 새싹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모종을 심은 곳들은 맨 땅이 되어 황무지로 변했지만, 씨앗을 심은 곳은 새 생명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씨앗이 냥이가족들과 함께 공존하라고 타이르는 것도 같습니다. 아주 잠깐이었을지라도 멀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냐고, 평소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하는 듯도 합니다. 생각해 보니 냥이들과 씨앗들은 이렇게 서로 지지고 볶고 하면서 사는데, 그런 자연의 이치를 미처 몰랐던 거 같습니다. 냥이들과 씨앗들의 공존이라고 할까요? 안다고 하면서도 아직 몸과 삶에 체득이 되지 않은 공존의 지혜를 익혀야겠습니다. 
백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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