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청일의 독서일기] (9)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백청일의 독서일기] (9)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오늘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이하 ‘수용소의 하루’)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1918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솔제니친은 육군장교로 복무하던 1945년 친구에게 스탈린에 관한 짧은 불만을 담은 편지를 보냈는데 정보당국의 감시망에 걸렸습니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생활하였고,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혼란한 사회 분위기 속에 그의 형기도 끝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외지로 3년간 유배당하는 생활을 한 끝에야 1957년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62년 ‘수용소의 하루’를 발표하였습니다.

작품은 전체주의 체제였던 스탈린 치하 소련의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8년 동안의 수용소 생활을 체험한 작가 본인의 경험이 녹아 있는 이 책을 통해 솔제니친은 일약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73년 발표한 <<수용소 군도>> 때문에 1974년 국외로 추방되었고,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련의 붕괴 이후 1994년 러시아로 귀국하였고, 2008년 사망하였습니다(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네이버 백과사전).

이 작품은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럼에도 “이곳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지”라고 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또한 문학작품을 당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으로 들여다 본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자유권과 평등권이 헌법으로 보장된 “이곳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지”만, 혹시 우리 사회 안에 수용소와 같은 모습은 없을까요?

이 글은 이런 물음을 중심으로 ‘작품’과 ‘현실’을 꿰어 보려는 하나의 시도입니다.

1930년대 시베리아 강제 노동수용소
1930년대 시베리아 강제 노동수용소

작품 결말로 읽는 작가의 의도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독ㆍ소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해 돌아왔으나 스파이 혐의를 받아 반국가죄 58조를 적용받고 강제 노동수용소 1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여러 수용소를 거치면서 8년이 지났습니다.

새벽 다섯 시 슈호프(췌-854번)는 기상 망치소리에 깨었지만 몸살 기운이 있어 쉽게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타타르인에게 걸려 간수실 마루청소를 하고, 의무실에 들르지만 영창에 갈 수 있다는 반협박을 받고, 식당에서 멀건 야채스프를 먹고 200g 빵 한 조각을 챙긴 후 여느 때처럼 강제노동을 나갑니다. 얼굴이 찢겨 나갈 정도의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바람을 맞으며 작업장인 난방발전센터 작업장에서 중앙난방시설 짓기 작업을 합니다. 그럼에도 슈호프는 잠자리에 들어 오늘 하루가 “아주 운이 좋은”, 행복한 하루였다고 회상합니다. 수용소의 하루를 압축적으로 제시하면서도 작가의 의도를 알게 해주는 마지막 장면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우리는 작가의 의도가 스탈린 치하에서 진행되었던 강제노동수용소의 실상을 고발하는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의 슈호프에 주목해 보면, 주제를 이렇게만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작가의 의도를 다 이해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슈호프는 내일이나 내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계획하지 않습니다. 간수들이 다 해결해 주기 때문이지요. 대신 눈앞에 닥친 줄칼 조각 숨기기나 죽 한 그릇을 어떻게 더 먹을 수 있을까, 당장 해야 할 벽돌쌓기를 어떻게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에 더 초조해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는, 대대로 흘러 내려오는 러시아 민중들의 삶에 대한 낙관성을 보여주는 게 작가의 또 다른 의도라 할 수 있습니다.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

강제 노동 수용소의 이중구조와 법칙들

강제 노동수용소는 약육강식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힘을 가진 ‘위쪽 세계’와 힘이 없는 ‘아래쪽 세계’로 이분화 되어 있습니다. 위쪽 세계는 장교/간수들로, 아래쪽 세계는 ‘반’ 중심의 죄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힘을 중시하기에 힘을 가진 놈이 법과 제도를 마음껏 이용합니다. 아래쪽 세계 또한 “절대적인 힘”을 가진 ‘반장’과 ‘반원들’로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강제 노동수용소는 ‘중층화된 이중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반’에서는 동료를 ‘고발’하여 위쪽 세계로 빌붙으려는 죄수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힘을 가진 장교/간수들이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규칙과 ‘반’을 만들었던 것처럼, 고발 또한 통치 수단입니다. 고발되면, 오늘 아침 슈호프처럼 몸이 아파 잠자리에서 미적대다 불심검문이라도 걸리면, ‘영창’에 가야합니다. 영하 3~40도를 오르내리는 수용소의 한 쪽 건물, 온통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데다 음식도 주지 않는 ‘영창’에서 며칠을 보내면 반죽음 상태가 되거나 죽어서야 나옵니다. 이처럼 ‘폭력’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지배하는 건 ‘밀림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슈호프의 옛날 반장이었던 쿠조민의 말을 통해 수용소에는 다른 법칙도 있다고 합니다.

“이봐, 이곳에는 법칙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밀림의 법칙이라는 거야. 그러나 이곳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지. 수용소 안에서 죽어 가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남의 빈 그릇을 핥는 놈들이고, 맨날 의무실에 갈 궁리나 하는 놈들, 그리고 정보부원들을 찾아다니는 놈들이야.”

밀림의 법칙(제1법칙)이 지배하는 수용소이지만, “그러나”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때문에 밀림의 법칙만으로 이곳에서 지내려고 하면 안 된다는, 제2법칙도 지키라는, 일종의 경고입니다. 그 경고가 무섭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지요. 제1법칙이 지배하기에 죄수들끼리 서로 죽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죄수들 사이에서 제2법칙도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남의 빈 그릇을 핥는 놈들”. 힘든 노동 뒤 제공되는 식사가 스프 한 접시와 빵 한 조각이기 때문에 죄수들은 늘 굶주려 있는 상태입니다. 때문에 옆의 동료가 스프를 접시 바닥까지 싹싹 떠먹지 않은 걸 보게 되면, 양해를 구하고 그 접시를 가지고 와서 혀로 핥아먹습니다. 이런 놈들은 죽습니다. 왜?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둘째, “맨날 의무실에 갈 궁리나 하는 놈들”. 강제노동은 ‘반’ 단위로 진행되고 작업할당량은 반 숫자를 고려합니다.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빠지게 되면 그 일을 반원들이 떠맡아야 합니다. 때문에 의무실에 갈 궁리나 하는 놈들은 반원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한 몸 편의를 도모하는 이기적인 놈들입니다.

셋째, “정보부원들을 찾아다니는 놈들”. 반 내부에서 불순한 생각이나 발언, 조직 등을 하는 동료를 정보보원들에게 팔아 넘겨 강제노동에서 열외가 되거나 좋은 보직을 얻게 됩니다. 슈호프의 제104반에서는 병결로 빠진 판델레프가 예시로 나옵니다. 반원들은 판델레프를 “개자식”이라고 욕합니다.

위험의 외주화 여전
위험의 외주화 여전

강제 노동수용소로 들여다 본 우리 사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루 작업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규칙을 어기면 배급량을 줄이거나 아예 영창으로 보내 굶겨 죽이는 강제 노동수용소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하루하루 힘들게 노동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려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외벌이든, 맞벌이든 분명 월급은 들어오는데 대출금 이자 감당하기에 벅차 또 다시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은 벌었지만, 한 달 수입과 지출을 대조해 보면 마이너스라서 계속해서 빚을 내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2019년 통계로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7,481,000명입니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36.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증가하고 있지만, 2019년에는 70여만 명으로 그 증가폭이 큽니다. 이들은 각종 분야에서 파견노동자, 용역노동자, 특수형태노동자, 가정내 노동자, 일일노동자, 시간제노동자, 한시적노동자 형태로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취약근로자’로 분류된 무기계약노동자를 포함시키면 그 규모는 훨씬 늘어납니다(e-나라지표, 통계청).

이들 중 최저임금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최저임금 노동자 중 80%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조사를 통해 확인되듯이, 최저임금은 ‘알바 임금’이 아닌 ‘생존 임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최저임금 노동자 80%, 가족 생계 책임졌다, 한겨레, 2018. 1.31.). 그러나 최저임금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없기에 초과근무와 야근 등의 노동을 하기도 합니다.

택배노동자를 예시로 들면, 이들은 주당 평균 71.3시간에 달하는 노동을 하는데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정하는 과로사 인정 기준(직전 3개월 주 60시간 이상 노동 혹은 직전 1개월 주 64시간 이상 노동)을 훌쩍 뛰어 넘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택배노동자들은 월수입에서 대리점에 내는 수수료, 차량 관리비, 운송장, 테이프 등 소모품 경비 등을 제하면, 결국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택배노동자, 주 71시간 일하고 점심시간은 고작 12분, 프레시안, 2020. 9.10.).

고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광주에서 김재순 노동자가 사망하는 등 만신창이로 통과된 법 때문에 ‘위험의 외주화’ 노동과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2019년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9년 산재 사망자 수는 855명입니다(2019년 산재 사고 사망자 지난해에 비해 116명(△11.9%) 감소, 고용노동부 2020. 1. 9). 여전히 “촛불정권에서도 위험의 외주화와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고 있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목소리가 높습니다(“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은 산재 현장”, 교수신문, 2020.12.21.).

또한 10인 미만 소상공인 종사자 수는 6,365,000명으로 전체 노동자 중 36.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8년 폐업한 사업자 수는 900,551명입니다. 하루에 2,400명 이상이 폐업 신고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면 신규사업자 수는 1,315,164명입니다(국세통계연보, 국세청). 그런데 2020년 통계청,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0년 3월 말 기준 가구당 평균 부채는 8256만원입니다(가구당 빚 8250만원…30대 자영업자 부채 증가, 디지털타임스, 2020.12.17.). 결국, 빚을 빚으로 갚거나 빚을 내서 신규 창업을 하고 있는 거로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2020년 대한민국 가계부채는 1600조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파업 집회를 하고 있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사진출처=참세상.
파업 집회를 하고 있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사진출처=참세상.

방치된 죽음 또는 죽음에 익숙한 사회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어머니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결국 어머니의 주검 옆을 지키게 됩니다. 하지만 먹을 것도 떨어지고, 전기마저 끊겨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자 아들은 지하철역에서 자면서 구걸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사회복지사가 아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경찰과 함께 집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일명 “방배동 모자의 비극”으로 알려진 사건입니다(사망 5개월 만에 발견된 엄마, 노숙자가 된 아들 … 방배동 모자의 비극, 한국일보, 2020.12.14.).

2014년에는 송파구 성북동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두 딸이 경제적 빈곤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2019년에는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탈북민인 어머니와 그의 6살 난 아들이 아사한 지 두 달이 지나서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같은 해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는 생활고 때문에 3명의 가족과 딸 친구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였습니다.

4년 연속 감소세를 보여 1만 2400여명까지 줄어들던 자살자 수가 2018년 13,200여명, 2019년 13,367명으로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9년 자살자 중 3564명(38%)이 자살충동의 원인으로 경제생활문제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하루에 10여 명이 생활고 때문에 자살하는 셈입니다(자살 사망자 4명 중 1명은 생활고 비관, 열린 라디오 YTN, 2020.12.19.).

강제 노동수용소는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습니다. 힘을 가진 장교와 간수들이 죄수들의 작업할당량을 조정하여 건설 공사에서 계획량 초과로 발생한 이익을 독점하고, 죄수들에게는 200g짜리 빵 한 조각을 보너스로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강제 노동수용소는 이익을 위해 착취의 대상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눈 밖에만 나지 않으면 죄수들을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현실에서 삶을 도모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노숙자로 나서 구걸하는 삶이라면, 결코 수용소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 이것이 현실에 대한 풍자가 아닌, 엄연한 “진짜 현실”이라는 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슈호프, 그러나 우리는

슈호프는 강제 노동수용소의 현실 속에서도 오늘 보낸 하루가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라고 돌아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자유권과 평등권이 기본권으로 보장된 헌법을 가지고 있는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죽음으로 내 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청소노동자들의 대량해고 또한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2020년 11월 30일 여의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집단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대부분 60세가 넘은 노동자들이라 해고 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게 됩니다. 때문에 이들은 12월 16일 전면파업에 돌입하면서 “해고 되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현재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집단해고 위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80여 명 전면파업, 프레시안, 2020.12.16., 청소노동자는 파리목숨입니까… 우리를 벼랑으로 그만 몰아요, 서울신문, 2020.12.20.).

이 땅에는 여전히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킬 수조차 없게 하는 법과 제도, 관행, 시스템에 맞서 오늘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싸움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선택한 길이겠지요. 살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써, 그 길에 올랐을 것입니다. ‘관계’로 이어져 있는 우리들이기에 그들을 삶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손길을 내밀어야겠습니다. 이 추운 겨울 더욱 단단해진 연대의 손길이 부디 그들을 다시 따뜻한 ‘삶의 길’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백청일


참고문헌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벤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1998.
e-나라통계, 통계청(검색일: 2020.12.21.).
국세통계연보, 국세청(검색일: 2020.12.21.).
가구당 빚 8250만원…30대 자영업자 부채 증가, 디지털타임스, 2020.12.17.,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20121702100858065005&ref=naver(검색일: 2020.12.21.)
사망 5개월 만에 발견된 엄마, 노숙자가 된 아들 … 방배동 모자의 비극, 한국일보.2020.12.14.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21305500004395(검색일: 2020.12.18.).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네이버 지식백과, 노벨문학상 작가 열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3682&cid=58814&categoryId=58829(검색일: 2020.12.20.).
자살 사망자 4명 중 1명은 생활고 비관, 열린 라디오 YTN, 2020.12.19. 
https://www.ytn.co.kr/_ln/0102_202012210848211188(검색일: 2020.12.21.).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은 산재 현장”, 교수신문, 2020.12.21.
http://www.kyosu.net(검색일: 2020.12.21.).
집단해고 위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80여 명 전면파업, 프레시안, 2020.12.16.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21614090397485?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검색일: 2020.12.21.).
청소노동자는 파리목숨입니까… 우리를 벼랑으로 그만 몰아요, 서울신문, 2020.12.20.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1221017004&wlog_tag3=naver(검색일: 2020.12.21.)
최저임금 노동자 80%, 가족 생계 책임졌다, 한겨레, 2018. 1.31.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30144.html(검색일: 2020.12.21.).
택배노동자, 주 71시간 일하고 점심시간은 고작 12분, 프레시안, 2020. 9.10.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1013551947472(검색일: 2020.12.21.).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