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드림 취재기·뒷얘기] 대광여고 외고 추진, 뒤집은 한방
이홍하의 다된 밥에 코 빠뜨리다
올해 창간 20주년 특집 중 하나로 광주드림은 역대 취재기·뒷얘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그때’ 광주드림에 실려 지역사회 큰 파장을 일으켰던 기사들이 어떻게 작성됐는지 이면을 알려주는 읽을 거리입니다. 독자들에게 제공된 정제된 기록으로서 기사가 아닌 ‘비사’라 할 수 있는 정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한 편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해당 기자들이 감당한 수고의 일단도 느껴볼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취재기자 관점에서 정리한 기록은 2018년 본보가 출간한 ‘호랑이똥은 멧돼지를 쫓았을까-광주드림 취재기’ 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대광여자고등학교를 외국어고등학교로 전환하려는 홍복학원의 시도는 거의 성공한 듯 했다. 2010년 9월, 당시 추석 연휴가 끝나고 맞은 금요일이었다. 광주시교육청은 ‘광주광역시 특수목적고등학교 지정·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를 개최해 대광여고의 외고 전환을 승인했다.
전교조 등 교육단체들은 “날치기 통과”라며 반발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교육부 장관의 인가만 남은 상황.
당시 상황을 취재해온 홍성장 기자는 뭔가 반전이 절실했다. “어찌됐든 서두르는 느낌인데, 막아야 하는데”라는.
9월 말, “뭐가 없을까”하는 생각하던 홍 기자는 운영위 심의 자료를 들춰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광주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서정성 광주시의원의 도움으로 관련 자료를 입수했다.
이중 홍 기자가 중점적으로 들여다본 것은 ‘수익용 기본재산’이었다.
보통 학교를 만들 때 수익용 기본재산이라는 걸 운영 법인에서 내게 돼 있다. 그 자산을 바탕으로 수익을 마련해 대광여고를 외고로 바꿔 운영하겠다는 게 홍복학원의 기본 계획이었다.
“예를 들어 수익용 기본재산에서 나오는 수익이 1억 원이다고 합시다. 이걸 어떻게 쓰겠다고 예상된 대차대조표가 신청서에도 포함돼 있는 거죠.”
자료를 들여다보니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당시 대광여고 법정부담금 납부율이 2%에 불과했는데, 모 법인인 홍복학원이 낸 신청서에는 ‘대광외고’의 법정부담금 납부가 100%로 문제될 게 없다고 나와 있었던 것이다.
홍복학원의 수익용 기본자산이 크게 늘어난 탓이었다. 홍복학원은 이를 통해 매년 1억8089만 원의 수익을 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의심스러웠다. 자료를 계속 살펴보니, 외고 전환 후 감정평가 기준액으로 36억1787만 원에 달하는 토지를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내놓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도저히 의심을 거둘 수 없던 홍 기자는 그 토지를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 땅일까?”
부동산 주소지를 확인하고, 직접 가봤다. “이럴 수가.” 그 땅은 완전히 ‘맹지’였다. 광산구 외곽에 있는 곳이었는데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만 달랑 있었다.
주변도 숲처럼 풀과 나무만 울창했다. “여기서 어떻게 수입이 날 수 있나? 도저히 말이 안 된다.”
기본재산의 이자수익으로 법정부담금을 100% 내겠다는 홍복학원의 약속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이 자체로도 홍복학원의 외고 전환 계획은 하자 투성이었다.
그런데 취재를 더 해보니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해당 부지는 이미 홍복학원이 가지고 있던 땅이었던 것.
학교 법인은 본인들이 가진 재산이 늘어나면 신고를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홍복학원은 이 땅을 신고하지 않고 숨겨 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래놓고 외고 전환하면서 이걸 새로운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내놓겠다고 그럴싸하게 서류를 꾸몄던 것이다.
그간 홍복학원은 열악한 재정구조를 이유로 자신들이 내야 할 법정부담금도 광주시교육청에 떠넘겨왔던 터다.
이렇듯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광주시교육청도, 시의회도 그 어떤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는 것도 의아했다.
홍복학원이 제출한 자료를 형식적으로 처리했을 뿐 누구도 이를 검증하지 않고 외고 전환 절차를 진행한 것이다.
이쯤 되니 “외고 전환을 용인해선 안 된다”는 의욕이 타올랐다.
특히나 홍복학원과 설립자 이홍하 씨는 ‘사학비리’의 원흉으로 지목돼 있던 터. 이들이 외고를 운영토록 내버려둬선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외고가 비리 사학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홍 기자는 그해 10월 취재한 내용들을 기획 보도하기 시작했다.
홍복학원의 ‘법정부담금 완납’이 가능할지에 대한 문제 제기로 시작해 이홍하 씨가 ‘학교로 돈을 벌어 학교를 늘리는 방식’을 꼬집었다. 이는 수업료, 교비 등 불법 전용이라는 비리로 가능한 것이라고 고발했다.
교사들 인터뷰를 통해 대광여고의 비민주적이고 투명하지 못한 학교 운영의 문제도 기사화했다. 대법원 판례를 통해 홍복학원의 문어발식 확장의 불법 소지도 따졌다.
보도의 후폭풍은 대단했다.
광주드림이 지적한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외고 전환을 인준해선 안 된다”는 여론에 힘이 실렸다.
마침 보도가 나간 이후 광주시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국회의원들이 광주드림 기사를 바탕으로 ‘폭탄 질의’를 쏟아부었다.
한참 전 ‘서류’를 넘겨받았지만 교육부는 어떤 결정도 쉽게 할 수 없었다.
이러던 찰나 교육감 첫 주민 직선으로 당선된 장휘국 광주교육감이 취임 후 대광여고의 외고 전환 문제에 결단을 내렸다.
교육부에 외고 지정을 위한 협의신청을 철회했고, 교육부 장관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관련 행정행위가 종료됐다.
그리고 2010년 12월8일, 장 교육감은 ‘외고 전환 불가’를 홍복학원에 통보했다.
80~90% 정도로 끝났다고 생각했던 홍복학원의 외고 전환 시도는 이렇게 물거품이 됐다.
“광주드림이 모두가 내딛지 않은 한 걸음을 더 내딛은 결과”였다. 이 보도로 홍 기자는 그해 광주전남민언련의 민주언론상을 받았다.
이홍하 씨에게 문제 제기를 하다 대광여고에서 쫓겨난 교사들 모임에서 홍 기자를 초청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해당기사]광주 대광여고 외고 전환 이것이 문제다 <상> ‘법정부담금 완납’ 약속 지켜질까(2010. 10. 11)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