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의 노래 <우리들의 죽음>에 등장하는 텔레비전은 `우리집 우리 동네’를 다루지 않는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 풍경이 나오지 않는 이 텔레비전이 내보내는 화면은 `남의 나라 세상’이다.
영상운동의 핵심 영역으로 부각되고 있는 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는 우리집 우리 동네 이야기를 텔레비전에 내보내자는 시도다. 우리말로 바꾸면 `시민이 직접 제작한 영상물을 공적 채널을 통해 방송하기’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퍼블릭액세스’(이하 시민참여방송)는 또한 지난 2000년 개정방송법안에 포함되어 이미 법제화된 개념이기도 하다.
법에 따르면, 시민 영역에서 요구할 경우 한국방송공사(KBS, 서울)와 지역종합유선방송사업자(이하 지역유선)는 각각 `한달에 100분 이상’ `일주일에 30분 이상’의 시민참여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한다.
지역유선 활용해 시민 제작물 방영 가능
실제로 KBS는 지난 2001년 5월 `호주제 폐지, 평등가족으로 가는 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시민참여방송’을 실현해 오고 있다. 매주 금요일 밤 11시35분~12시 KBS 1TV에서 방영되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열린채널’>이 그것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영상을 기록한 `소파개정 촛불시위’ `부안 핵폐기장 사태’ 등이 `열린채널’을 통해 방영됐다.
하지만 이 채널은 이미 `선수’들의 목표물이 돼버려 어지간한 `작품’으로는 여의도 근처에도 가기 힘든 실정.약 6개월 정도의 상영분이 항시 대기 중인 게 `열린채널’의 처지다. 장비와 전문성 면에서 취약한 개인, 그리고 `작은 이야기’의 경우 참여가 쉽지 않은 것이다.
지역유선을 통해 `시민참여방송’을 실현해 보자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역유선사업체인 광주중앙방송 JBC(채널 5)가 지난해 7월과 9월에 각각 방영한 `공직자비리, 어떻게 할 것인가?’ `2003광주국제영화제, 무엇을 남겼나?’라는 주제의 토론 프로그램이 한 사례. 문화연대, 경실련, 참여자치21 등 시민단체가 조직한 토론을 JBC가 촬영해 `이슈! 광주·전남’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했다. `시민참여방송’과 정확히 일치하는 제작형태는 아니지만, 준비된 프로그램만 있다면 방송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당시 토론회를 연출했던 JBC 최용석 피디는 “프로그램이 준비만 된다면 최대한 방영하겠다는 것이 회사 입장이다”며 “JBC는 컨텐츠를 얻고, 지역의 개인과 단체들은 채널을 얻을 수 있는 윈-윈 게임이다”고 강조했다.
JBC는 지난해와 올해 초 세번에 걸쳐 시민 상대 영상제작 강좌활동을 펼친 광주영상미디어센터(소장 고광연)의 프로그램을 공급받아 이번주부터 일주일에 두 편씩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시민영화극장’을 방영할 예정이다. 당장은 `외주제작’ 형태지만, 홍보를 강화하는 등 차츰 인지도를 높여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겠다는 방침이다.
고가 방송장비 `공적 자산’ 확보 필요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유선을 통해 영상물을 방송할 경우 `방송 채택료’는 최고 50만원. 최고 1000만원에 달하는 KBS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금액이다. KBS든 지역유선이든 전액 방송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지급하는 채택료여서 `형평성’ 문제가 진작에 제기됐다. 그동안의 꾸준한 문제제기에 힘입어 17대 국회에서 관련법이 정비돼 채택료 편차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개인들이 구입하기 어려운 고가의 방송 관련 장비를 `공적 자산’으로 확보하고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지금까지 영상 교육은 지역 영상운동가와 민언련 등의 단체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돼 왔다. 광주에서 영상 편집 및 교육이 가능한 장비를 갖춘 곳은 방송국, 대학, 그리고 (재)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영상예술센터가 있다. 이 중 영상예술센터가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적 자산’이다. 하지만 진흥원의 자체 영상사업을 위해 마련된 장비들이어서 시민들의 수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까닭에 문광부가 2003~2004년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공미디어센터’ 설립이 `시민참여방송’의 도약대로 기대되고 있다. 시민들이 `몸’만 가지고 오더라도 교육·촬영·편집 등 영상제작 전과정을 체험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이 `공공미디어센터’의 설립 취지다. 다만 이제 막 관련법령을 마련하는 단계여서 실효를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더디지만, 여건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영상운동가들의 판단이다. 그래서 `문제는 컨텐츠다’는 주장이 거듭 제기되고 있다. 채널과 장비 등 방송을 가능케 하는 인프라가 하나둘 마련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사람’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광주영상미디어센터 고광연 소장은 “취미활동을 넘어서 이제는 좀 더 체계적으로 영상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양질의 영상컨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시민참여 방송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arrt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