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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탄핵과 개헌까지 가능한 200석.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그보다 불과 8석 모자란 의석을 범야권에 몰아 줬다. 8석은 의원 정수(300석) 기준 2.6%다.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그간의 국정 기조를 바꾸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내놓은 윤 대통령의 총선 관련 발언은 뜻밖이었다. 근본적 반성과 전환을 기대한 여론과 달리 부분적 보완에 그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올바른 국정 방향을 잡고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자찬도 빼놓지 않았다. 어떤 친윤 의원은 소셜미디어에 “지난 총선에
여의도 포커스
김대원 기자
2024.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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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당 서정주는 시 ‘자화상’에서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를 당한 건 팔 할이 ‘용산’때문이었다”는 탄식이 여권 내에서도 나온다. 문자 그대로 역사적 패배였다. 4년 전 총선이야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사태 한 가운데 있었다. 당시엔 여당인 민주당을 밀어주자는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변명거리도 마땅치 않다. 분명 한달 전만 해도 국민의힘 과반수 전망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 지지층이 받은 충격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의 노무현 후보 당선에 버금가는 듯하다
여의도 포커스
김대원 기자
2024.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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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렌의 애가’를 출간한 이화여전 졸업생 모윤숙. 그녀의 자서전 ‘회상의 창가에서’(1968)는 해방공간 미시사를 담고있다. 1947년 12월 15일 눈 오는 밤, 김활란 박순천 모윤숙 등 영어 잘하고 전문학교 이상을 나온 신여성 그룹이 창덕궁 인정전에서 ‘기생에게 외국 손님을 시중들게 하지 말자’는 결의를 한다. 이른바 ‘낙랑클럽’의 모태다. 모윤숙은 해방 후 이승만 노선에 선다. ‘미소공위’가 결렬되자 UN은 ‘한국위원단’을 파견했다. 단장은 인도 대표 메논. 모윤숙은 타고르에 대한 대화를 시작으로 그와 가까워진다.
여의도 포커스
김대원 기자
2024.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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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0 총선이 끝나면 아마도 이번 선거 최대 변수로 조국혁신당이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창당 직후 가시화 된 지지율 급상승은 1985년 2·12 총선 직전 김영삼과 김대중이 손잡고 만든 ‘선명 야당’ 신한민주당 돌풍을 연상케 한다. 2심 유죄 선고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조국 대표, 그 ‘사법리스크’마저 돌파해 버린 동력에 정가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아무리 변화무쌍한 한국 정치지만 가히 역대급 다이내믹이 아닐 수 없다. ‘지민비조가 아니라 비조지민’이란 말이 나온지도 좀 됐다. 민주당 지역구 후보를 찍으러 투표장에 나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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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기자
2024.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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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정국의 키워드 중 하나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간 신경전이 심상치 않다. 이른바 ‘윤-한 갈등’은 총선 후 범여권 권력 지형과 차기 대권 레이스에 직결되는 문제로 그 결과에 따라 한 위원장의 정치적 미래도 좌우된다. 여권 전체를 공황 속으로 몰아넣었던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1차 윤-한 갈등. 비록 약속 대련 형식으로 마무리됐으나 ‘실전’이었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사퇴를 원했고 총선 참패를 우려한 주변의 권유를 받아들여 이를 거둬들였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비례대표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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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기자
2024.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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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중반, 남미 문단을 대표했던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절대 세상에 내놓지 말라”는 유지를 깨고 두 아들이 출간시킨 유작 가 사후 10주기인 지난 6일 전 세계 동시 출간됐다. 마르케스는 남미의 역사, 토착신화, 마술, 미신, 민담 등을 소설에 적용한 ‘마술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가. 황석영의 두 작품 과 도 ‘마술적 리얼리즘’ 계열로 분류될 수 있다. 1967년 대표작 을 발표한 마르케스는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어릴 적 들었던 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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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기자
2024.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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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대구 중·남구 총선 후보로 확정된 도태우 변호사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 개입설을 주장하고 신군부 민간인 학살을 사실상 부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탄핵 심판 사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변호한 경력이 있다. 도 변호사는 2019년 2월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5·18이 북한과 무관하면 검증에 당당해야 한다’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해당 영상에서 그는 “(5·18 민주화운동) 거기에는 북한 개입 여부가 문제 된다는 것이 사실은 상식”이라고 밝혔다. 도 변호사는 같은 해 1월 공개강좌에서도 “체제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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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기자
2024.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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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15대 총선에서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는 지역구 66석과 전국구 13석 등 모두 79석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 집권당인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은 139석을 차지했고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이 50석이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7년, 김대중은 김종필과 손잡고 건국 이후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IMF’라는 미증유의 국난 속에서 DJ의 ‘준비된 대통령’ 구호가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이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정동영 의장이 이끈 열린우리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 덕에 152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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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기자
2024.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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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김대중과 김영삼이 야당을 이끌던 시절, 공천 결과는 거의 토요일 퇴근 무렵 발표됐다.(당시 직장인들은 토요일 오전까지 근무) 곧이어 탈락자들이 빈 당사로 들이닥쳐 유리창을 깨고 집기를 부수며 격렬하게 항의하곤 했다. 그때는 이른바 ‘제왕적 총재’가 공천 전권을 휘둘렀으나 비주류에도 대략 40% 정도를 안배, 세력 간 견제와 균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계파가 유지되려면 정치자금이 필요했고, ‘금권정치’에 대한 폐해가 누적되자 이를 개선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고조됐다. 정치권에 ‘시스템 공천’이 조금씩 자리잡힌 배경이다. # 민주
여의도 포커스
김대원 기자
2024.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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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13대 총선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 정국을 등장시켰고 곧바로 12·12사건과 80년 광주항쟁의 진상규명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1987년 6월항쟁으로 탄생한 6공화국의 기원이 바로 5·18의 투쟁과 희생이었기에 너무도 당연한 국민적 열망이었다. 이에 국회는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위’를 가동했다. 광주 청문회가 시작되자 그간 폭동, 유언비어, 간첩 등으로 호명됐던 80년 5월의 실상이 공중파를 통해 처음 생중계됐고 시청자들은 그 충격적 실체를 접하고 경악했다. 당시 정상용·김영진 등 광주·전남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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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기자
2024.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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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로부터 장수(將帥)는 용장(勇將), 지장(智將), 맹장(猛將), 덕장(德將) 그리고 운장(運將) 등으로 분류됐다. 용장은 힘이 세고 용감하며, 지장은 지혜로 적과 싸운다. 맹장은 힘도 세고 지혜도 갖추고 있는 장수를 말하며, 덕장은 무예가 출중하고 지혜도 있는데다 부하를 통솔하는 힘이 뛰어난 장수를 말한다. 그러나 용장이나 지장 맹장 덕장보다 더 막강한 장수가 있으니 바로 운장(運將)이다. 운장의 개념은 병서에선 언급되지 않으나 유럽이나 일본에선 실제로 주요 전쟁에 운이 따르는 장군을 선발했다고 한다. 개인적 느낌이지만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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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기자
2024.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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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한 ‘풍수’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겐 껄끄럽고 부담스러웠다. 조선과 만주를 ‘영원한 천황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선 철도와 도로를 건설해야만 했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천둥소리와 시커먼 연기를 뿜어대는 ‘쇠 마차’가 조상님의 안식을 방해한다고 여겼다. 헌병과 순사들의 감시 속에 ‘지맥’이 잘리고 조상 묘가 파헤쳐지자 곳곳에서 격렬한 반발이 일었다. 특히 전주와 공주의 양반들은 선영 근처에 철길이 지나는 것을 목숨 걸고 막았다. 이리와 대전이라는 신도시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조선총독부는 전래의 풍수를 ‘미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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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기자
2024.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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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훈 위원장은 지난 23일 서천 화재 현장에 도착, 약 15분 동안 윤석열 대통령을 기다렸다. 이 시간 서천은 영하 6.3도에 눈바람도 거세 한자리에 서 있기도 어려운 날씨였다는 전언이다. 윤 대통령은 어깨를 툭 치며 친근감을 표했고 한 위원장은 허리를 90도 가깝게 깊이 숙여 인사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갈등은 봉합 수순으로 들어갔으나 미증유의 이번 파동에서 튕겨져 나온 정치적 부담과 법적 시비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일각에서 제기된 ‘약속대련’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이유다. 유승민 이준석 나경원 김기현... 이번엔 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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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기자
2024.01.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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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표의 피습 사태와 이낙연 전 대표의 탈당 및 신당 창당 등으로 야권이 뒤숭숭한 가운데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각종 정치개혁 공약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한 위원장은 지난 16일 “총선 이후 여당이 내놓을 ‘1호 법안’은 현재 300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250명으로 축소하는 개정안”이라고 발표했다. 국회의원 정원 축소는 정치개혁의 오랜 단골 메뉴다. 유권자들의 불신을 받는 한국 정치 탓으로 이에 대한 여론은 항상 긍정적으로 나오긴 하나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정치혐오에 기댄 포퓰리즘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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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기자
2024.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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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금의 국민의힘이 민주적 정당인지를 묻습니다. 제 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그래서 저는 국민께 표를 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초선·서울 송파갑)이 지난 8일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유는 ‘우리 당이 바로 서기를 간절히 기원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탈당을 하거나 ‘이준석 신당’ 등에 합류하는 일은 없다면서도 “우리 당이 보수주의 정당인데 여기서 더 우경화되면 사실은 남아 있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다”며 여운을 남겼다. 김 의원은 “전체적인 질서를 위해 개인이 어느 정도 희생될 수 있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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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기자
2024.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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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테러 이후 원인을 둘러싼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지난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커터칼 테러를 비롯,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13대 대통령 선거 때도 각 후보 진영은 테러 방지책에 골몰했었다.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단일 장소에 최대의 인파가 모인 정치집회는 아마도 1987년 12월 13일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개최된 평민당 김대중 후보의 유세였을 것이다. 최대 150만으로 추산된 그날 집회가 끝난 후, 상당수 참석자들은 김 후보의 무개차를 따라 노량진과 제1한강교를 건넜다.
여의도 포커스
김대원 기자
2024.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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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대표가 모여 3.1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은 세종로에 있던 최초의 궁중요리 전문점인 명월관의 종로 분점이었다. 태화관 터는 원래 매국노 이완용의 별장 자리였으니 역사적 아이러니다. 1925년 4월 17일 제1차 조선공산당이 극비리에 결성된 장소도 당시 장안 최고 청요리집인 아서원이었다. 또 자유당 2인자였던 이기붕이 해방 전 국일관에서 4년 정도 지배인을 지내는 등 정치인과 고급 사교장의 인연은 의외로 두텁다. 남산 자락의 ‘외교구락부’도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양식당이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직선제가 도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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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기자
2024.01.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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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원들은 임기 4년을 전 후반기로 나눠 두 곳의 상임위에서 활동한다. 한 상임위에서 2년간 직을 수행하는 동안 상임위 회의와 국정감사, 예결산 심사, 정책토론회, 세미나, 소속 기관 및 유관단체 행사, 민원인 면담 등을 마주하게 된다. 평균적 학력에 회의장에서 졸지만 않으면 최소한 본인 상임위와 관련된 복잡한 현안과 다양한 해결 방안에 대해선 어느덧 전문가로 변신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임기 중 두 곳의 상임위를 경험하게 되니, 3~4선 중진 반열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국정 전반을 꿰뚫게 된다. 이렇게 10~20년간
여의도 포커스
김대원 기자
2023.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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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12.12 군사반란에서 기원한 5공화국이 1981년 출범했고 1987년 6월항쟁으로 성립된 6공화국은 이번 윤석열 정권까지 벌써 8기를 맞고 있다. 이 두 공화국 42년간 창당된 숱한 신당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케이스는 1985년 2·12 총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김영삼과 김대중이 손 잡고 만든 신민당을 들 수 있다. 김영삼은 1983년 광주항쟁 3주기를 맞아 시작된 23일간의 단식으로 전두환 정권을 긴장시켰고 미국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이 이를 적극 지지하면서 1980년 양김 분열은 극적으로 봉합됐다. 두 야당
여의도 포커스
김대원 기자
2023.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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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로부터 국회와 평민당 출입을 명 받은 1988년, 증권거래소 뒤 여의도백화점에 있던 평민당사를 찾아가니 장영달 부대변인이 출입 신청을 받고 있었다. 그리곤 기자실에 가서 광주일보 김여송, 동아일보 이낙연 기자에게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했다. 며칠 출입하면서 당 분위기를 보니 ‘주류 언론’에 시달리던 김대중 총재에게 두 선배는 일개 기자들이 아니었다. 김 총재는 이런저런 행사장에서 두 선배를 마주치면 자신의 승용차 옆자리에 태우고 출발하곤 했다. 차 안에서 김 총재는 아마도 가감 없는 민심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특히 이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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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기자
2023.12.1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