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중반, 남미 문단을 대표했던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절대 세상에 내놓지 말라”는 유지를 깨고 두 아들이 출간시킨 유작 <8월에 만나요>가 사후 10주기인 지난 6일 전 세계 동시 출간됐다.

 마르케스는 남미의 역사, 토착신화, 마술, 미신, 민담 등을 소설에 적용한 ‘마술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가. 황석영의 두 작품 <손님>과 <철도원 삼대>도 ‘마술적 리얼리즘’ 계열로 분류될 수 있다.

 1967년 대표작 <백년의 고독>을 발표한 마르케스는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어릴 적 들었던 외할머니 얘기에서 비롯된 이 작품은 1928년 10월 6일 외할머니 친정인 ‘시에나가’에서 실제 발생한 바나나농장 대학살이 모티브다.

 미국의 다국적 과일 회사와 보고타 주재 미 대사관이 개입하고 콜롬비아 군부가 자행한 이 참사로 파업노동자 800~3000명이 기관총을 맞고 사망했으나 최초 정부 발표는 군인 1명 포함 9명 사망이었다.

 <백년의 고독>에서 시신들은 항구까지 바나나를 운반하던 열차에 실려 바닷가에 수장됐는데 유일하게 주인공만 시체 더미 속에서 기어나와 걸어서 고향에 돌아온다. 그러나 학살 현장인 광장은 이미 정부에 의해 사라져 버렸고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 1980년 5월, 광주를 진압하고 공화국을 탈취한 신군부 반란집단도 전남도청 앞 분수대와 시계탑을 슬그머니 없애려 했다. 마지막 날 도청을 사수하다 스러져 간 시민군과 밤새 울음을 삼켰던 광주 사람들의 집단기억, 그 뿌리를 희석시키려 한 것이다.

 다행히 분수대 철거는 무산됐고 시계탑만 엉뚱한 곳으로 옮겨졌다가 지난 2015년 돌아왔다. 시계탑에선 지금도 매일 오후 5시 18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5·18 북 개입설’은 신군부가 항쟁 당시부터 흘렸던 유언비어다. 마산 3·15 시위와 부마항쟁 때도 용공 분자 배후설을 조작했던 독재 권력의 질긴 습성이다. 그들은 당연히 ‘북 개입설’을 믿지 않는다.

 1987년 6월항쟁과 현재의 6공화국은 광주민주화운동의 결과다. ‘유신과 5공 때가 좋았고 전두환은 영웅’이라고 여기는 극우 세력이 5·18을 부정하고 집요하게 흠집 내려는 것도 그래서다. 도청 분수대를 없애려 했던 시도와 본질적으로 같다.

 

 # 대통령실 황상무 수석이 지난 14일 기자들 앞에서 했다는 “(5·18 당시) 계속 해산시켜도 하룻밤 사이에 4~5번이나 다시 뭉쳤는데 훈련받은 누군가 있지 않고서야 일반 시민이 그렇게 조직될 수 없다”는 발언도 결국 ‘북 개입설’을 연상시킨다.

 황 수석은 미제 개틀링 기관총이 불을 뿜는 데도 우금치를 기어오르던 동학 농민군은 이해되는가. 경찰의 총알이 날아드는 경무대 앞으로 밀려들던 4·19 고교생들은 이해되는가.

 만약 1980년 춘천에서 시위와 무관한 여고생이 계엄군 대검에 찔리고 신혼부부 머리가 공수부대 몽둥이에 터지는 모습을 본다면 춘천고를 다니던 황상무 학생 역시 공부만 하고 있진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공포와 인내의 마지막 선을 넘어가면 목숨까지 걸고 일어서는 법이다.

 5·18 폄훼로 공천이 취소된 도태우 변호사는 탄핵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변호했고 소설가 이문열이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신평 변호사 등도 아끼는 인물이다. 일개 정치 지망생이 아니다.

 이처럼 ‘5·18 북 개입설’은 아직도 보수층 일각에서 음습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5·18의 전국화, 세계화’는 몇 걸음 더 가야만 한다. ‘5·18 공법단체’를 둘러싼 잡음이 안쓰럽고 한가해 보이는 이유다.

 P.S. : 도 변호사 건은 국민의힘 내부적으론 박은식 비대위원이 해결의 단초를 열었다. 광주 동남을에 출마하는 그는 왜 여당에도 광주·전남을 대변하는 인물이 있어야 하는 지 잘 보여줬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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