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김준영(84·전북대 명예교수)씨가 펴낸 산문집 《울고 웃던 세상살이》(태학사)의 표지 그림 이야기다. 조선후기 화가 김득신의 <파적>이란 작품. `파적(破寂)’은 정적을 깨트린다는 의미다. 그 `파적’의 의미처럼 이 책은 고단하고 힘겨운 세상살이, 단조롭고 무미한 일상을 유쾌하게 혹은 통렬하게 `깨뜨리는’ 그 파적의 순간이라 할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울고 웃던’이란 말속에 세상살이가 모두 함축돼 있다. 무엇에 울고 무엇에 웃었는지 시대따라 변천도 극심하다.
김씨는 “근래 한 50년동안 우리들의 생활은 급격히 변했다. 요새 젊은이들은 자신의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고 어떤 일로 울고 웃었는지 짐작도 못하는 일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네 생활사와 정서가 담긴 이 책을 펴낸 이유다.
《성수패설》《어우야담》《고금소총》 등 옛 책이나 설화, 구전민요, 속담 등등을 통해 옛사람들이 무슨 일에 울고 웃으며 한 세상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시집살이와 축첩제도로 고통받은 이 나라 여인네들의 삶이 실감나게 담긴 것은 여요(女謠). 시앗(첩) 죽었다는 소식 듣고 부르는 노래를 보자.
<에라그년 잘 죽었다.…고초물로 낯씻길년, 밤송이로 등긁을년, 송곳으로 밑받칠년, 바늘방석 궁글릴년, 고기반찬 갖춘밥도 맛이 없어 못먹더니, 소금에 밥도 달디달다>
남편을 탓하기보다 첩을 탓하는 이런 노래들에선 뿌리깊은 유교적 통념의 한계가 느껴지지만 어떻든 저주도 푸념도 시원스럽고 해학적이다.
이밖에도 속요 속엔 절절하고도 빛나는 표현들이 많다. <금수강산이 아무리 좋아도 정든 임 없으면 적막강산이라>(`애원성’ 중), <천길 만길 절벽에서 떨어져도 살지만은 임 떨어지고는 못 살으리로다>(`오돌또기’ 중) 등등.
<수수밭 도조(賭租)는 내 물어줄게 구시월까지만 참아 주소>(`아리랑 타령’ 중)라는 노래는 요즘 젊은이들에겐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남녀상열지사로 망가진 수수밭 이야기다. 성내는 주인에게 땅을 이용한 대가인 도조를 물어주겠다고 달래는 노래.
구김없는 익살이 담긴 동요들도 재미있다.<방구 징구 나간다, 오가리 투가리 받쳐라, 먹을 것은 없어도 냄새나 맡아라>처럼 방귀는 가장 흔한 소재.
웃기는 이야기로는 `허풍’을 빼놓을 수 없으니, 김씨는 《성수패설》에 나오는 `대풍상봉(大風相逢)’ 이야기도 소개하고 있다. 대풍상봉이란 `큰 허풍쟁이의 만남’이란 뜻. 경상도 합천 해인사 중과 함경도 안변 석왕사 중이 각각 솥과 측간으로 `맞짱 뜨는’ 이야기다.
해인사 솥크기 자랑은 이렇다. “지난 동짓날 팥죽을 쑬 때 팥죽을 저으려고 상좌스님이 솥속에 배를 타고 들어갔었는데 아직까지는 돌아오지 않았으니 곧 돌아오겠지요.” 석왕사 중의 허풍도 지지 않는다. “내가 절을 떠날 때 절의 대사님이 대변을 보았는데 아직까지 똥이 밑에까지는 떨어지지 않았다니 곧 떨어지겠지요.”
정치판을 바라보는 데도 옛사람들의 풍자는 유효하다. 그래서 김씨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부정부패를 꼬집으며 《고금소총》의 이야기를 예로 들기도 한다. <도적 십여명이 합동으로 어느 부잣집 하나를 털었다. 돌아와 장물을 분배하다 훔쳐온 것 중에서 귀중품 몇 가지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그 중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이 “우리들 중에 틀림없이 도둑놈 하나가 끼었다”>고 하더라는 것.
김씨는 이전에도 《옛일과 견주며》 《잔잔한 웃음》등 우리 옛어른들의 해학과 익살, 풍자를 담은 책들을 펴내 왔다.
남신희 기자 miru@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