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동 나인갤러리에서 26∼5월5일 `일상-공간 속으로’전을 열고 있는 화가 주재현씨. 작가가 작업을 재미있게 해서인지 보는 이의 마음도 편하다. 만화주인공 같기도 하고, 이집트 벽화에서 본 것도 같은, 그렇게 아주 익숙한 그림들이 캔버스 안을 채우고 있다. 색종이 한 장 정도 크기의 금·은박 재료들이 한 점의 그림을 안은 채 격자처럼 캔버스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서로 다른 그림들이 별 다른 이유 없이 공존하면서 빚어내는 느낌은 편안함이다.
“우리가 다 아는 것들이거든요. 시골 가는 길, 논, 밭, 나무, 건물, 숲, 사람… 앙코르 유적이나 만리장성, 피사의 사탑 같은 다른 나라 이미지도 있지만, 그것 역시 우리가 다 알고 있죠.”
편안함의 실체가 `익숙해서’라는 설명이다. 전시회의 제목이 `일상’으로 시작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하지만 이미지의 편안함과는 다르게 주씨가 사용하고 있는 기법은 생소하다.
“금·은박을 배경으로 활용한 작품은 있었어도,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금·은박이 전면에 드러나는 사례는 아직까지 없었죠.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는 강박을 털어 내고 조금 편안하게 `느낌’에 열중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예술가가 `편안함’을 말하다니, 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조선대에서 한국화 학부과정을 마치고 일본 동경예술대 대학원으로 공부자리를 옮긴 주씨는 `문화재보존 수복기술’을 전공했다.
자신이 했던 공부에 대해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한 작가는 “기가 질릴 정도로 꼼꼼하고 처절하게 공부했는데, 막상 한국에 오니 써먹을 데가 없더군요. 금·은박 재료 다루는 법이 일본서 가져온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껄껄껄 웃는다.
“화가는 벤처사업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작·홍보·판매를 혼자서 다 해야 하거든요. 잘 그리든 못 그리든, 그건 나중 문제고, 그림에만 열중할 수 있는, 그런 세월 좀 살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는 앞으로 두 가지 과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조금 평면적인 지금의 작업을 입체화시키는 것이고, 또 다른 것은 하나의 캔버스 안에 작은 스토리를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그림이 주는 느낌을 두텁게 하고, 인물과 풍경 등 그림 속 소재를 살아 움직이게 해보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갤러리 벽면에 걸린 얼굴, 풍경, 건물들이 볼록 튀어나오는 상상을 해봤다. 말 풍선을 넣으면 어떨까도 생각해봤지만,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수밖에. 그 최종 형상은 작가 자신도 모른다.
“어쨌든 일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편안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내 주변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면 되는 일이죠.”
이정우 기자 arrt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