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영화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가 온다. 그는 죽었다. 대신 `회고전’이라는 형식을 빌어 영화만 온다.
오는 5월6∼9일 나흘 동안 시네씨티 극장에서 7편의 흑백영화가 상영된다. <주정뱅이 천사> <천국과 지옥> <거미집의 성> <숨은 요새의 세 악인> <이키루> <들개> <7인의 사무라이> 등. 놓치면 후회할, 지금이 아니면 언제 볼지 알 수 없는, 그런 영화들이다.
국내에서 개봉된 구로사와의 영화는 <라쇼몽>과 <카게무샤> 두 편. 이 중 <카게무샤>만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구로사와의 영화를 두고 어떤 `영화광’이 열렬히 찬사를 보냈다면, 그는 진짜배기 영화광이거나 허풍쟁이,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을 터다. 우리들의 `영화광’은 우리말 자막도 없는 해적판을 보았거나, 두 편의 개봉작만을 보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말하자면 구로사와의 영화는 언제나 소문으로만 이야기되었다. 영화평론, 영화서적, 또는 EBS <시네마천국>처럼 영화가 아니라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어떤 메신저를 통해 구로사와는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회고전의 의미는, 그래서 결코 가볍지 않다. 상영될 영화는 적어도 `일본 영화의 거장에 관한 소문’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고, 구로사와를 흠모했던 누군가에게는 `전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볼 수 있는 가슴 벅찬 의식(儀式)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장될 수도 있다.
가까운 비디오 대여점에서 <카게무샤>를 빌려본다면, 금싸라기같은 시간을 구로사와에게 할애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기준이 될 수 있겠다.그림자 무사(影武士)라는 뜻을 가진 <카게무샤>는 일본 막부시대를 배경 삼아 `진짜를 대신해 연출된 가짜 무사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행세해버리는’ 아이러니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미-일 합작영화 <도라 도라 도라>의 중도하차와 <우루스 데질라>의 실패로 실의에 빠져 자살까지 시도했던 구로사와를 다시 영화계로 불러들인 작품이다.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흠모했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등이 거액의 할리우드 제작비를 끌어 들여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다.
이런 연유로 <카게무샤>에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구로사와의 재능과 철학과 영혼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담겼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할리우드 영화 <황야의 7인> <황야의 무법자> <라스트맨 스탠딩>을 보는 것도 회고전을 위한 `예습’이 될 수 있겠다. 모두 구로사와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영화들이다. 회고전의 편당 값은 5000원. 광주시네마떼끄 `영화로 세상보기’가 준비했다. 자세한 내용은 광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www.giff.org 참조.
이정우 기자 arrt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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