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의 말을 참고하기는 하겠지만, 배꽃이 표현되는 식으로, 직접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30일, 배나무를 가꾸는 시골농부 권호상(나주시 봉황면)씨와 현대미술 작가 전수천(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가 조선대 미술대 앞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서 나눈 대화 내용의 일부.
농부와 작가는 오는 9월10∼11월13일 열리는 제5회 광주비엔날레에 내놓을 `작품’을 함께 구상하고 있는 중이다.
각 분야의 보통 사람들과 미술작가를 한 쌍으로 묶어 작품을 생산해 내게끔 하는 것이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 성격. 이른바 `참여관객제’다. 현대미술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혀보겠다는 발상. 70여명의 작가들 중 60여 명이 미리 지정된 짝과 함께 작업한다. 예컨대 고은 시인과 박불똥 작가, 부산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과 `환경을 생각하는 미술인 모임’, 순천여고생 이정은양과 그룹 `SAA(현장과 작가들)’ 등이 서로 만나 대화하면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권호상-전수천’ 짝 또한 이들과 마찬가지.
“오염돼 가고 있는 사회와 지구환경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했으면 좋겠다.”
“권 선생과 같은 생각이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이미지로 만드느냐 하는 건데….”
이들은 지난 4월18일 권씨의 배 농장에서 만난 이후 두 번째로 얼굴을 마주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유기농 채소로 상을 차려 점심을 함께 먹고 뽕 열매와 배를 섞어 만든 `오디술’을 나눠 마신 것이 전부였다. 작품에 관해서는 이날의 대화가 처음. 그래서인지 약간의 긴장감이 맴돌았다. 둘의 대화는 마치 `탐색전’을 벌이는 권투 선수들과 같이 짧고 예리했다.
권씨는 거듭 환경문제를 이야기하며 “예술가들이 환경문제에 관한 홍보대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전씨는 “권 선생 발언에 동감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대화는 계속돼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일방적으로 말하는 과정을 계속할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대화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침투할 것이다. 합의점을 찾아가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지는 않겠다”고 답했다.
권씨도 조금 길게 말했다.
“나는 예술을 모른다. 깡통 하나 걸어 놓고 `예술이다’고 하면, 내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예술가가 그런다고 하니까, `그런갑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지금 예술가에게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모르더라도 계속 말할 생각이다. 환경문제, 그리고 비엔날레의 성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전 선생에게 계속 말할 내용이다.”
이번 만남은 비엔날레 사무국이 주선했다. 앞으로는 둘이 `알아서’ 계속 대화할 생각이다. 배나무를 손질하거나 작품을 구상하다가도 생각나면 아무 때고 전화해서 이야기하자고 약속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함께 취해보기도 하고, 싸울 일이 생기면 싸우자고 합의했을 정도로 둘의 열정은 대단하다. 나올 작품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정우 기자 arrt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