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출간된 《내 마음속 사진첩에서 꺼낸 이 한 장의 사진》(샘터)은 빛바랜 흑백사진들에 얽힌 지난 시절의 사연 한자락씩을 엮어낸 책이다. 공선옥 이청준 박완서 안도현 박범신 이호철 등 29명의 소설갇시인들이 각각 `찰나의 화석’ `인생의 기록’이 될만한 사진과 글을 실었다.
공선옥은 `1969년을 견디고 있는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유년의 사진을 공개했다. `산다는 것은 결국 견디는 것’임을 훗날 알게 될 일곱 살짜리 여자애가 동생과 함께 논밭을 배경으로 서있는 사진이다. 그저 심상한 사진같지만 이 속에도 가족사는 깃들어 있다.
<사진속에 어머니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 내 기억속에 어머니는 사진사 옆에 서서 `아버지 없이 크는 짠한 엄마 새끼들’을 바라보고 계신다>고 작가는 말한다. 식구들 먹여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일찾아 객지로 떠돌았던 것. 그래서 이 사진에서 작가는 아버지가 부재했던 유년과 그 시절의 가난을 떠올린다.
안도현은 `빤쓰’만 입고 세발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유일한 나의 누드’라며 공개했다. 배경의 골목길에 대해 그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어머니 대신에 나를 키운 골목길’이라고 헌사를 바치고 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작가 이만교가 `내 인생의 사진’으로 뽑은 것은 성당사택앞에서 찍은 단체사진이다. <그네들의 선량한 표정들, 소박한 차림새들, 약간 부끄러운 듯 낯선 듯 렌즈를 쳐다보고 있는 눈빛들…그러니까 산업화, 도시화, 자본주의, 욕망, 돈이나 권력, 처세나 생존따위와는 무관한 사람들>이라고 그는 그 시절의 이웃들을 떠올린다.
《길 위의 집》의 작가 이혜경이 내놓은 사진은 국민학교 졸업사진. 독자들은 그냥 지나칠 법 하지만, 사진의 주인공인 그는 알고 있다. 선생님의 구두코에도 아이들의 운동화에도 진흙이 묻어있다는 것을.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것. 그래서 `자신의 사진’이라면 사소한 구석에까지 의미의 살이 두툼할 것이다. 사진속에는 `상장이 공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게 궁핍했던 70년대초 소읍에서 살았던 아이들과 담임선생님이 있다.
이호철의 사진에선 `들뜬 두마음’이라고 박힌 글자가 무엇보다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변치 않는 우정’이니 `사랑의 맹서’니 하는 말들을 사진속에 `영원히 박아두고’ 마음속에 다짐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가 이 구절을 두고 `제법이군’ 이라 칭찬했던 것은 `아버지에게서 글쓰는 일로 칭찬 비슷한 소리를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작가는 추억하고 있다.
사진이 흔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카메라폰도 있고 디지털 카메라도 있고 폴라로이드 사진기도 있다. 그러나 그 넘쳐나는 사진만큼 `마음속에 깊이 담아두고 싶은 사진’이 꼭 풍부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내게 `한 장의 사진’은 무엇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것, 지나온 삶의 장면을 떠올려보게 되는 것. 이 책이 지닌 힘이다. 기실 그 힘은 이 책속의 글이나 사진에서 나오는 힘이라기보다는 우리들 각자가 지닌 `추억’의 힘이다.
추억은 늘 그렇게 강력하다. 음식을 소재로 앞서 출간된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한길사)처럼 `추억+유명작가’란 다소 안이한 기획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들을 읽게 되는 이유다.
남신희 기자 miru@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