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근거’. 10∼18일 열리고 있는 `2004 오월전’의 주제이다.
(사)광주민예총 미술위원회 소속 작가인 허재훈·정희승씨가 기획을 맡았다. 두 사람은 곽영화 김대성 나은지 이혜숙 조나윤 조정태씨 등 6명의 작가들을 약 6개월 동안 격려하고 재촉해 작품완성을 도왔다. 그 결실이 `5·18기념문화관 전시실’에 걸리거나 설치돼 있다.
오월전이 `대외적 발언’에서 `자기 길’을 찾아가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지난해 오월전 `나는 너다’에서부터. 이번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작품들은 전시 주제에 종속되지 않고 뚜렷하게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오월전이 열린 이래 최초의 `외지인’ 참여작가인 곽영화(경북 울산)씨의 그림들은 한결같이 무속화에 연결돼 있다. 진짜 `굿’이 그런 것처럼 무속화풍의 그림을 통해 죽은 자를 위로하고 산 자의 마음을 달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전시장 오른쪽 벽면 절반을 가득 채운 김대성씨의 두상(頭像)들은 하나같이 편안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무표정의 얼굴을 하고 있다. 세상의 숱한 `몰상식’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현대인들의 표정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나은지씨는 지구를 닮은 다섯 개의 눈동자를 만든 다음 그 동공 속에 새싹, 파도, 가시에 걸린 마른 넝쿨 따위를 넣었다. “마음의 눈을 통하여 나에게 내재된 `잠재의식’의 문을 두드려 보았다”는 작품이다.
이혜숙씨는 세상의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홀로 회색빛을 띠고 있는 `나’를 그렸다. 홀로 화장을 지우는 거울 앞에서까지도 그는 회색이다. 작가는 “모든 일의 시작은 자신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된다”고 그림 속 `회색’을 풀이했다.
조나윤씨는 아이들 손바닥만한 토우들 100여점을 전시장 바닥에 배치하고 여러 가닥의 새끼줄을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렸다. 그 형상은 명확하지 않지만, 조명이 연출하는 그림자는 토우들을 쓸쓸하게 만든다. “외롭고 아프다”고 말하는 작가의 표상으로 보인다.
유명한 영화포스터나 사진 자료의 패러디 기법을 활용해 현 시국과 전두환·노태우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 조정태씨의 작품은 이번 오월전에서 가장 `이질적’이다. 아마도 십여년, 아니 오년 전으로만 세월을 거스른다면 가장 `오월전다운’ 작품일 수도 있었겠다.
내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오월전의 이 같은 흐름에 대해 곽영화씨는 “현실과의 직접적인 대면에서 이제 근원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또 그래야 한다는 예술가들의 판단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술평론가 이세길씨는 “미술어법에 좀더 충실해졌고, 다양한 장르의 여러 작가들을 포용해 내는 품새를 갖춘 것”이라고 호평하면서도 “아쉬운 점은 예전에 비해 조금 왜소한 느낌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재훈씨는 “갤러리와 거리가 갖고 있는 장단점을 메워 나가는 게 오월전의 과제 중 하나”라면서 “그게 가능할 수 있는 토대와 경험이 쌓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지난 1989년 남봉갤러리에서 창립전을 연 이래 16번째 오월전이다. 이후 오월전은 1991∼99년 아홉해 동안 금남로, 망월동 등 거리에서 30∼40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열리다가 2000년부터 실내 갤러리로 장소가 옮겨졌다. 그리고 지난해 전시회부터 5∼6명의 작가들이 수개월 동안 전시를 준비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번 오월전의 주제 `희망의 근거’에 대해 묻자 정희승씨는 “그림 자체가 오월이나 희망을 직접화법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변화하고 실험하면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오월전의 모습에서 광주미술의 희망을 본다”며 “자기 분야의 희망이 곧 오월의 희망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arrt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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