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만 그러할까. 거슬러 올라가 4·19도, 제주4·3도, 갑오농민전쟁도 그렇고 모든 역사가 그렇다.
최근 나온 《기억투쟁과 문화운동의 전개》(역사비평사)는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절박한 몸짓으로서의 문화운동을 조명한 책. 전남대 5·18연구소와 제주 4·3연구소 등 양 지역의 연구자들이 함께 연대한 책이라는 점도 의미있다.
지난 98년 제주에서 열린 동아시아 평화인권국제학술회의를 통해 두 사건을 짓눌러온 `국가폭력’이란 공통개념을 새삼 확인한 것이 연구의 출발점. 국가권력은 4·3에 대해선 냉전 이데올로기를, 5·18에 대해선 지역주의를 부추기며 `망각’을 의도했다. 그러나 은폐와 억압이 가해질수록 역사적 경험의 진실을 올바르게 간직하고 전파하려는 기억투쟁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그리고 그 기억투쟁으로서의 문화운동은 우리 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역할과 비중을 차지했다. 예컨대 `님을 위한 행진곡’이나 `광주출전가’ 같은 노래들, 수많은 판화와 걸개그림들이 80년 이후 민주화운동의 저항적 에너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냈듯이 말이다.
이 책에서 양 지역의 연구자들은 “무엇이 죽었던 항쟁을 되살렸는가,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재생시킬 수 있었는갚라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문화적 재현’을 꼼꼼이 들여다보고 있다.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방송 영화를 망라해 4·3과 5·18 문화운동 관련 글 14편 수록.
김영범씨는 <4·3문화운동 서설>에서 4·3문화운동을 “국가의 공식적, 관제적 기억으로부터 대항기억으로 가는 과정이자 묻혀졌던 역사적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규정한다.
강창일·현혜경씨는 <기억투쟁과 4·3위령의례>에서 추모제·위령제로부터 위령공원 조성까지의 기억투쟁을 통해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의례는 과거의 사건만을 회상, 반추하는 것으로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고 현실의 문제와 결합될 때 생동적이다”고 말한다. 또 위령공원 등과 관련해선 “시간에 대한 기억은 끊임없이 공간에 대한 기억으로 진출을 시도하며 원초적 사건에 대한 기억은 공간속에 투영될 때 보다 연속성을 갖게 되나, 위령공원 등 공간적 재현은 국가,정치인, 직접적 피해자 집단, 저항공동체 등 다양한 세력들의 정치 사회적 갈등과 타협의 산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5·18 신묘역 등 광주에서 행해진 공간적 기념사업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억투쟁 역시 지속적인 성찰의 대상이 돼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강현아씨는 <5월연극운동의 변화양상과 그 특징>에서 오월연극을 네 단계로 나누어 보고 있다. 즉 상징과 우회를 통한 재현(80~86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재현(87~95), 주변적 소재로서의 재현(96~99), 내용적 형식적 다양화를 통한 재현(2000~) 등. 이는 다른 문화예술장르에도 들어맞는다.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애도와 추모, 진실의 폭로 등을 벗어나 `광주문제의 지속성’을 보여주려 노력해온 게 문화운동의 흐름. 정근식씨도 문화운동은 “민주화의 진행과 더불어 달라진 삶의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는 방식의 변화와 실험을 요구받고 있다”고 말한다.
나간채씨는 이 책의 출간과 관련 “문화연구나 문화운동에 대한 관심은 정치투쟁으로부터의 퇴행이 아니라, 부활의 에너지 생산을 위한 계속된 싸움의 새로운 형태일 것”이라고 의미부여한다.
남신희 기자 miru@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