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투쟁’이란 말은 광주민중항쟁 24주기를 맞는 2004년의 5월에 더할 수 없이 의미심장하고 유효하다. 모든 `투쟁’ 중 가장 힘겨운 투쟁은 `시간’과 `망각’에 맞선 투쟁일 것이기 때문이다.
5·18만 그러할까. 거슬러 올라가 4·19도, 제주4·3도, 갑오농민전쟁도 그렇고 모든 역사가 그렇다.
최근 나온 《기억투쟁과 문화운동의 전개》(역사비평사)는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절박한 몸짓으로서의 문화운동을 조명한 책. 전남대 5·18연구소와 제주 4·3연구소 등 양 지역의 연구자들이 함께 연대한 책이라는 점도 의미있다.
지난 98년 제주에서 열린 동아시아 평화인권국제학술회의를 통해 두 사건을 짓눌러온 `국가폭력’이란 공통개념을 새삼 확인한 것이 연구의 출발점. 국가권력은 4·3에 대해선 냉전 이데올로기를, 5·18에 대해선 지역주의를 부추기며 `망각’을 의도했다. 그러나 은폐와 억압이 가해질수록 역사적 경험의 진실을 올바르게 간직하고 전파하려는 기억투쟁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그리고 그 기억투쟁으로서의 문화운동은 우리 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역할과 비중을 차지했다. 예컨대 `님을 위한 행진곡’이나 `광주출전가’ 같은 노래들, 수많은 판화와 걸개그림들이 80년 이후 민주화운동의 저항적 에너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냈듯이 말이다.
이 책에서 양 지역의 연구자들은 “무엇이 죽었던 항쟁을 되살렸는가,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재생시킬 수 있었는갚라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문화적 재현’을 꼼꼼이 들여다보고 있다.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방송 영화를 망라해 4·3과 5·18 문화운동 관련 글 14편 수록.
김영범씨는 <4·3문화운동 서설>에서 4·3문화운동을 “국가의 공식적, 관제적 기억으로부터 대항기억으로 가는 과정이자 묻혀졌던 역사적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규정한다.
강창일·현혜경씨는 <기억투쟁과 4·3위령의례>에서 추모제·위령제로부터 위령공원 조성까지의 기억투쟁을 통해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의례는 과거의 사건만을 회상, 반추하는 것으로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고 현실의 문제와 결합될 때 생동적이다”고 말한다. 또 위령공원 등과 관련해선 “시간에 대한 기억은 끊임없이 공간에 대한 기억으로 진출을 시도하며 원초적 사건에 대한 기억은 공간속에 투영될 때 보다 연속성을 갖게 되나, 위령공원 등 공간적 재현은 국가,정치인, 직접적 피해자 집단, 저항공동체 등 다양한 세력들의 정치 사회적 갈등과 타협의 산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5·18 신묘역 등 광주에서 행해진 공간적 기념사업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억투쟁 역시 지속적인 성찰의 대상이 돼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강현아씨는 <5월연극운동의 변화양상과 그 특징>에서 오월연극을 네 단계로 나누어 보고 있다. 즉 상징과 우회를 통한 재현(80~86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재현(87~95), 주변적 소재로서의 재현(96~99), 내용적 형식적 다양화를 통한 재현(2000~) 등. 이는 다른 문화예술장르에도 들어맞는다.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애도와 추모, 진실의 폭로 등을 벗어나 `광주문제의 지속성’을 보여주려 노력해온 게 문화운동의 흐름. 정근식씨도 문화운동은 “민주화의 진행과 더불어 달라진 삶의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는 방식의 변화와 실험을 요구받고 있다”고 말한다.
나간채씨는 이 책의 출간과 관련 “문화연구나 문화운동에 대한 관심은 정치투쟁으로부터의 퇴행이 아니라, 부활의 에너지 생산을 위한 계속된 싸움의 새로운 형태일 것”이라고 의미부여한다.
남신희 기자 miru@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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