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간이 여자의 흐느낌이 들리는 듯도 했고, 들들들 탱크 지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솜이불에 기댄 어머니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아까운 젊은 사람들 다 죽는구나, 아까운 사람들이 다 죽는구나.”
그해 5월, 열세 살 단발머리 여중생이었던 나는 남광주 시장에서 살고 있었다. 지독히도 부잡스럽던 시장통 머슴애들이 부상자들이 밀어닥친 전남대병원에 다녀와서 연신 토하고 몇 끼니씩 밥을 못 먹던 기억도 난다.
“병원 복도에 피가 두부처럼 굳어 있더라. 밟고 미끄러졌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해.”
돈 몇 푼 벌려고 종일 마늘 까고, 토란껍질도 벗기고, 리어카 끌던 가난한 노점상 아줌마들이 더운밥을 짓고 김치를 담아 시민군 트럭으로 배달을 하던 모습도 생생하다.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것은 `폭도들이 소탕됐으니 시민들은 생업에 전념해달라는 TV뉴스’를 보며 끌끌 혀를 차고 욕을 해대던 시장통 사람들의 절망스런 얼굴이다. 솜이불 속에서 숨이 막히던 그 순간, TV를 보던 아버지의 터질 듯한 눈동자.
솜이불을 거둬낸 이후, 뉴스들은 새로운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거리를 청소하는 공무원들의 모습, 오염지역을 방역하듯 소독약을 뿌리고, 바리케이트를 걷어내던 군인들의 모습. 광주의 폭도들을 소탕함으로써 혼란의 싹이 제거된 것처럼 매일 새로운 소설들을 방송은 내보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뉴스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 시절 사람들이 믿었던 것은 조작된 거짓 미디어가 아니었다. 수퍼에서 만나 주고받는 이야기, 막걸리 집에서 만나 건네받은 정보가 더 실감나는 것이었고,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이, 시장통에서 주고 받았던 뜨거운 주먹밥의 온기가 더 크고 진실된 미디어였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에 미디어가 살아있는 이유는 `크기’때문이 아니다. 와닿는 `깊이’때문일 뿐이다.
김인정〈광주MBC방송작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