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집애가 저렇게 드세서야…쯧쯧” “공순이 주제엽 “미스 김 커피 한 잔”…이 역시 이 땅의 딸들과 여성들이 숱하게 들어온 말들이다.
부녀, 현모양처, 신여성, 기생, 모던걸, 양공주, 공순이, 미스김….
역사연구자 이임하(39)씨가 최근 펴낸 《계집은 어떻게 여성이 되었나》(서해문집)에는 `계집’과 `여성’ 사이 그 넓은 간극을 채워온 숱한 이름들에 맞서 싸워온 근현대사속 여성들이 담겨 있다.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벽을 넘기 위해 `신여성’이 되어 싸우고, 국가가 책임져야 할 짐을 `어머니’란 이름으로 감당하고, 국가경제와 가족생계를 위해 `양공주’가 되고 또 `공순이’가 돼야 했던 여성들의 삶을 교육·성·노동의 관점에서 들여다본 것.
신사임당 내세운 `현모양처 이데올로기’ 지속
이씨가 1장 `교육을 통한 신사임당 되기’에서 문제 삼은 것은 이른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 부덕과 모성애를 강조하는 `현모양처 만들기’는 개화기 이래 오늘까지 100여 년의 여성교육사에서 변함없는 목적이다. 해방이후 대부분의 여고에서는 `생활관’ `예절관’ 등을 통해 여학생들에게 한복을 입히고 예절교육을 펴왔다. 특히 박정희 정권하에서 신사임당 이미지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심기에 적극적으로 이용됐다.
현모양처의 대척점에는 `위험한 여성’이 있었다. 2장 `사회가 만들어낸 위험한 여성’에선 신여성, 기생, 자유부인, 양공주, 영자 등이 이야기된다. 먼저 신여성을 보자. 1920년대 한 잡지 삽화에서 신여성의 외모를 두고 `구두 한 켜레=벼 두섬’이라 표현했던 것처럼, 흔히 `신여성=사치스런 여성, 방탕한 여성’으로 인식됐다. 또 김원주 나혜석 허정숙 박화성 등 신여성들의 자유분방한 연애는 끊임없이 언론에 보도됐다. 신여성들은 가족이데올로기를 해치는 위험한 여성으로 간주돼 비난과 감시의 대상이 됐다.
소설가 정비석이 신문에 연재했던 《자유부인》(1954년)이 낳은 사회적 반향도 그런 의식의 연장. 당시 자유부인은 사치와 허영에 빠져 가정을 뛰쳐나온 것으로 비난받았다. 작가 정비석은 “건전한 여성상을 그려달라”는 사회의 요구에 `자유부인가정방문기’(《여원》지 1956년 5월호)로 답했다. 여기서 자유부인 오선영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가부장에 순종하는 `교정된 자유부인’으로 등장한다.
70년대 산업화시대의 비참한 이면을 자신의 몸에 간직한 노동자이자 성매매 여성의 상징이 된 이름은 `영자’. 소설이자 영화로 관심을 모았던 `영자의 전성시대’는 가난한 농촌처녀 영자가 서울로 와 식모살이와 버스안내양을 거쳐 결국에는 창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여성 노동자들 자각에서 비롯된 제이름 찾기
3장 `울타리 밖으로 나서다’에는 여공에서 공순이로 그리고 여성노동자로 나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담겨 있다.
50~70년대에는 공지영의 소설 제목처럼 수많은 `봉순언니’들과 `공순이’들이 있었다. 당시 식모는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이 땅의 수많은 봉순언니들은 저임금과 장시간노동, 강간 희롱 등의 성폭행과 도둑누명 등에 시달렸다. `공순이’도 마찬가지였다. 50~60년대 방직공장 여공은 “송아지도 사고 밭떼기도 장만할 수 있는” 선망받는 직업이었으나 60년대 후반부터 `공순이’라는 무시와 조소가 담긴 이름으로 왜곡되기 시작했다. 이런 여성들의 역사를 새롭게 쓴 사건은 70~80년대 청계피복노조투쟁, 동일방직투쟁,YH무역폐업반대투쟁, 구로연대파업 등 여성노동자들의 자각에서 비롯된 싸움이었다.
영광이 고향인 저자 이임하씨는 민중주체 관점에서 역사대중화에 힘써온 `역사학연구소’ 소속. “결혼과 출산이 정치사와 운동사에 머물러 있던 관심을 여성문제로 돌리게 했다”며 “사회의 편견과 권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좌절과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에 펴낸 《계집은 어떻게 여성이 되었나》는 꼼꼼한 실증을 통한 역사서술을 목표로 하는 문고본 역사서 시리즈 `서해역사문고’의 첫번째 권. 2권 <농민이 난亂을 생각하다>, 3권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 등도 나와 있다. 남신희 기자 miru@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