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역사 이래로 이름의 문화가 가장 풍요로운 시대는 요즘이 아닌가 싶다.
“와치독님!” “가을하늘님!” “나그네님!”….
인터넷을 이용해본 적 없는 이들이 듣는다면 “에엥?” 하고 돌아볼 호칭들이 온라인을 넘어서 일상공간에서도 종종 통용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붙여져버린 이름에 만족치 않고, `칼 있으마’ `살아만 있자’ `바람난 여자’ 등등 스스로 이름을 부여하고 그 이름으로 교류를 하는 시대, 이름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렇게 스스로가 붙인 이름 그 자체가 타자에게 보내는 하나의 신호, 자신을 알리는 미디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닉네임을 정할 때도 고민 고민을 한다. 한번만 들어도 기억에 남을 것, 개성이 잘 드러날 것, 이미지 부각을 잘 시킬 것 등등 고려할 사항도 가지가지다. 문제는 새로운 시대의 미디어 그 첫 상징이자 기호인 직접 붙인 이 이름들이 종종 멸시를 당한다는 데 있다.
스스로가 붙인 이름들을 `익명’ 혹은 `본명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가명’쯤으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버상의 표현의 권리나 자유에 관한 문제도 익명성을 무책임성으로만 연결지어 파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닉네임이 `익명’이나 `가명’으로 쓰이면 어떠랴. 정작 중요한 것은 마을의 사랑방도 대가족제도도 해체되어버린 시대에, 사이버 사랑방의 역할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어린놈이 무슨 말을 해?” “선배에게?” “배운 것도 없으면서…” “니가 언제부터?” 등등 얽히고 설킨 말 못할 관계들을 넘어서는 그 어떤 힘과 자유로움이 스스로가 붙인 이 이름들 속에서 나올지도 모를 일 아닌가.
김인정 <방송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