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가 넘은 시각, 동구 동 연바람소극장 안. 여배우가 계단에서 서서히 걸어내려 온다. 연인을 잃은 배우의 시선은 상실감을 담고 있다. 대사를 하며 손동작을 하는 배우에게 연출자가 날카롭게 지적한다. “말을 하다보니 감정이 복받쳐서 자기도 모르게 손이 나가는 거야. 다시~.” 몇 번의 연습 끝에 여배우는 연출자의 의도를 감지한다.
이날 오후 5시에 올렸던 <꿈, 어떤 맑은 날>에서 부족했던 점을 하나씩 되짚어보고 있던 연출자 오성환(42)씨. 극단 `푸른연극마을’ 대표이자 연출자인 그는 벌써 몇날째 날을 새고 있어 초췌한 기색이었다. 30일까지 소극장 연바람에서 광주민중항쟁 24주년 기념공연 <꿈, 어떤 맑은 날>을 공연한다. 평일 오후 7시30분, 주말 오후 5시.
그는 “이번에는 `안하고’ 싶었습니다. 오월을 얘기한다는 게 갈수록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고요”라며 “하지만 오월을 겪은 사람으로서, 피할 수 없기에 다시 극을 준비했습니다”고 말한다.
지난 96년부터 꾸준히 오월극을 올려왔다. 올 공연도 악전고투 속에 준비했다. 하지만 의례화·박제화돼 가는 5·18이 아닌, 진정한 오월 정신을 무대에서 풀어내고 싶은 그에게 오월극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 작업이다.
“10년, 20년이 지난 뒤에 바라보는 오월은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늘 변하지 않는 정신과 마음’은 있겠죠. 시간이 흘러도 유효한 생명력을 작품속에 불어넣고 싶습니다.”
일상에 젖은 관객들이 공연을 본 후 오월 광주공동체를 떠올리며 다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었으면 한다는 게 연출 의도. 그런 이유에서일까. 이번 연극엔 관객이 직접 무대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4부로 구성된 작품 중 3부에 등장하는 최두석의 시 `서호빈’, 임동확의 `묘비명’ 등을 낭송할 배역을 관객의 몫으로 비워 뒀다.
고 2때 5·18을 겪은 그는 그 기억들을 한 때 시로 풀어냈다. 시를 잘 쓰기 위해 제대 후 들어간 연극판이 이제는 그의 직업이 돼버렸다.
지난 10여 년동안 열악한 지역 연극판에서 극단 `푸른연극마을’을 꾸준히 지켜온 그는 “내가 인복이 많습니다. 이렇게 연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연극 한 길을 가는 든든한 마누라(아내 이당금씨도 연극인이다), 식구같은 단원들을 만난 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연극열정이 주변 사람들을 `감염’시키기에 가능한 복이었을 터. 정현주 기자 ibox@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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