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주 경현동 저수지 입구에 세워진 오유권 선생의 문학비
농촌·농민문학에 한평생을 바친 작가 오유권(1928∼1999)의 생애와 문학을 기억하기 위한 문학비가 세워졌다.
장소는 작가의 고향인 나주의 경현동저수지 입구 소공원. 29일 열린 문학비 제막식에는 그간 문학비 건립을 이끌어온 한승원·이명한씨를 비롯 광주전남소설가협회·한국농민문학회·한국문협 나주지부 소속 작가들과 신정훈 나주시장 등이 참석했다.
<영산강을 오른편에 끼고 서쪽으로 시오리를 나가면 사막재라고 하는 조그만 영이 있고 그 영 밑에 마을이 하나 있었다…>
`소설가 오유권선생 문학비’라고 새겨진 큰 돌 밑에는 작가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젊은 홀어미들>의 한 대목이 새겨졌다.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관한 글은 한승원씨가 쓰고 글씨는 김효순씨가 썼다.
영산포가 고향인 오유권은 1955년 <현대문학>에 황순원 선생 추천으로 <두 나그네> <참외>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농촌·농민현실을 파고들었던 작가다. 작품 제목만 훑어 봐도 그의 작가적 관심사는 이내 짐작된다. <옹배기> <쌀장수> <황량한 촌락> <農牛 부고장> <농지정리> <누에치는 사람들> <농지상한선> <방아골 혁명> 등.
빈농 출신인 그가 관심을 두었던 인물들은 거의 `가난한 농민들’이다. 살붙이처럼 그와 가까웠던 문단 후배 한승원씨는 “선생이나 선생의 양친께서는 가난에 쪼들리고 들볶이며 사는 게 아니고 가난 그 자체를 육신의 일부분처럼 가령 손가락이나 발가락이나 귀나 눈처럼 거느리고 가꾸어 가며 살고 있는 듯했다”고 그의 생애의 가난을 전했다. “노동하듯이 작품을 썼던 선생에게서 배운 것은 문학에 대한 치열함과 엄정함”이란 말도 덧붙였다.
문학수업을 할 때 낱말공부를 하기 위해 우리말 큰사전을 세 번씩이나 베낀 사람이라는 것은 전설처럼 전해 오는 이야기.
이명한씨는 “우리 문학지도속에 나주라는 농촌을 그려넣고 전라도농민들의 이야기를 전라도말로 풀어냈던 작갚라며 병상에서도 창작을 계속했던 남다른 문학열정을 회고했다.
잘못된 농정으로 인한 시난고난하고 사무치는 삶을 그리면서도 속물적 가치에 훼손되기 이전의 사람들, 농촌공동체의 인정을 작품 속에 불어넣었던 오유권. 농민·농촌이 문학에서도 점점 밀려나고 있는 현실은 그의 문학이 다시 기억돼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남신희 기자 miru@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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