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립미술관 ‘공명-기억과 연결된 현재’전
5·18과 2024년 거리의 기억 음악·미술로 연결
“호출부호 HLKG518, 시간을 잇는 소리, 여기는 라디오 광주.”
붉은 빛이 감도는 전시장에 들어서면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 ‘가상’ 라디오는 1980년 5월 18일에 송출된 라디오 주파수를 수신한다. 작은 소반이 놓인 방 안에서 과거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우리는 피로 물들었던 광주와 오늘의 날들을 떠올린다.
광주시립미술관은 2025 민주인권평화전 ‘공명-기억과 연결된 현재’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5·18민중항쟁 45주년을 맞는 올해 1980년과 2024년 두 번의 계엄을 마주한 시민들의 과거 기억과 현재의 경험을 소재로 두 계엄이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공명하고 있는지 탐색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언급된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이 핵심 주제로 작용한다. 다채로운 음악과 미술 작품을 통해 인간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합리와 희망의 공존에 대해 탐구한다.
전시는 80년대 민중가요 불법음반의 효시로 통하는 노래굿 ‘공장의 불빛’으로 시작한다. 이어 1980년대 노래의 사회적 의미와 변화를 다룬 아카이브전이 펼쳐지고 전시장 곳곳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 ‘오월의 노래’, ‘광주출전가’, ‘그날이 오면’ 등 총 20여 곡의 1980년대 노래가 울려 퍼진다.
다음 파트에선 음악을 소재로 한 아카이브에 이어 사운드아트-미디어아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총 5점의 사운드아트-미디어아트 작품은 1980년 5·18과 2024년 계엄이라는 사건을 다양한 소리와 조형적인 화면들을 매개로 펼쳐낸다. 권혜원, 성기완, 신도원, 양민하, 임용현 5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이들은 두 계엄의 시간과 감각을 환기시키며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권혜원 작가는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사람들의 움직임, 그리고 시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현장의 노랫소리들을 하나의 음악극처럼 구성한 ‘바리케이드에서 만나요’ 작품을 선보이며, 성기완 작가는 ‘라디오 광주’라는 가상의 비밀 라디오를 통해 과거의 역사와 대화하도록 한다.
신도원 작가의 ‘너-기억의 투영’ 작품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의 정신, 상처, 저항의 역사를 현대적인 시각언어와 기술로 새롭게 재해석한 미디어아트 설치 작품이다. 양민하 작가는 AI가 재해석한 역사 이미지와 텍스트 기반의 시 작품 ‘그대와 그대의 대화’를 선보이며, 임용현 작가는 관객의 목소리를 빛으로 전환하는 인터랙티브 설치물 ‘발화의 등대’를 선보인다.
마지막 전시장에 들어서면 2024년 12월 거리 모습이 펼쳐지는 듯하다. 시민들이 함께 부르던 민중가요, 개사곡, 외국곡, K-POP까지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들이 펼쳐지고 집회 현장에서 쓰였던 실제 손피켓과 깃발 등이 전시됐다. 1980년에서 2024년까지 뚜벅뚜벅 걸어 도착한 듯한 감상을 준다.
23일 전시실에서 만난 60대 관람객 김모 씨는 “고향이 광주라 5·18이 가슴에 남아있는데 전시를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며 “집회 현장에서 나왔던 노래와 풍경을 보니 얼마 되지 않은 일인데 우리가 또 한 번 이렇게 역사적인 발자취를 남겼구나 생각이 들었다. 승리의 기쁨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명-기억과 연결된 현재’ 전시는 지난 18일 개최했으며 오는 8월 17일까지 본관 제1~2전시실에서 관람할 수 있다.
유시연 기자 youn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