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는 여기에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연재는 광주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조명합니다.
연재의 타이틀인 ‘퀴어 동사무소’는 퀴어 시민이 지역사회에서 ‘보이는 존재’로 자리 잡고, 목소리를 내며, 서로를 기록하고 돌보는 공공 공간을 상상하는 의미입니다. 성소수자들은 단순한 정체성 이상의 존재이며, 다양한 차별과 연대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이 에세이들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또 누군가에겐 이해와 변화의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나는 종종 친구들과 이런 농담을 한다.
"진짜 퀴어 아닌 사람들한테서 무지개 뺏어버려야 돼. 무지개 사용 금지시켜야 돼!"
그러면 친구들이 소리높여 웃는다.
2018년이 다 끝나가는 시기에 나는 광주에 돌아왔다. 온곳에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서 가는 길마다 놀랐고 좋아하던 장소들이 다 사라져서 이곳이 고향임에도 낯선 도시에 온 것 같았다. 가장 특징적이라고 생각한 일은 이것이다.
‘쿤스트라운지(카페)가 사라지고 무지개맥주가 생겼네? 와, 드디어 광주에도 퀴어 바가?’
반가워하며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보니 퀴어는 무슨. 그냥 흔한 맥주집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퀴어한테 퀴어만 보이지.’ 그리고 좀 심술이 났다. ‘퀴어 아닌 사람들한테서 무지개 압수하고 싶다!’ 무지개맥주는 코로나19 시기에 폐업했다.
무지개 깃발(pride flag)은 1978년에 예술가이며 성소수자인권운동가이며 동성애자인 길버트 베이커가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위해 디자인했다. 몇 번의 변천사를 겪었고, 현재의 무지개 깃발은 더욱 다양한 정체성을 포용하기 위해 최근에 사진과 같이 변경되었다.
6월은 pride month, 자긍심의 달이다. 성소수자의 자긍심의 달이다. 왜 6월이고 왜 자긍심이냐면, 6월에 미국에서 스톤월 항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고대의 그리스에서는 성인 남성과 미성년인 소년이 성행위를 했다. 이것은 추문이 아니라 일종의 교육이었다. 고대 그리스 뿐 아니라 이후에도 동성간의 사랑이나 섹스는 금기는 아니었고, 18세기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도 단지 누가 누구와 잤다더라는 스캔들일 뿐이었다. 동성애가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금기시된 때는 오스카 와일드의 시대였다. 그 19세기의 영국에서 동성애가 법원에서 불법 판결을 받았다(또 영국이야! 세상의 모든 이상한 일에는 영국이 있다!).
1969년 미국 뉴욕에서 경찰이 풍기문란 동성애자 모임 어쩌고라는 내용의 신고를 받고 단속을 위해 스톤월 인이라는 술집에 들이닥쳤다. 이 일은 그간 성소수자들이 불법적 존재라는 낙인을 지우고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해 해온 노력에 기름을 부었다. 사람들은 저항했고 점점 더 모여들어 시위를 일으켰으며, ‘동성애자 해방 전선’이 결성되었다. 이후 1970년 6월에 최초의 퀴어퍼레이드가 열렸고 해가 갈 수록 더 많은 주에서 퀴어퍼레이드를 열었다.
퀴어문화축제는 이 사건을 기념하여 보통 6월에 열린다. 축제의 이름을 하고 있으나 본질은 여전히 시위다. 이렇게 많은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지지자들이 존재함을 알리고 권리를 짓밟지 말라고 요구하는 행사이다. 나는 2009년에 처음으로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다. 행진하는 동안 3층에 있던 카페에서 직원들과 손님들이 손을 흔들어주거나, 길 가던 사람들이 더위를 식혀주려 환히 웃으며 물을 뿌려주던 것이 기억난다. 학교에서 매일 교과서에 죽고 싶다고 쓰던 나는 처음으로 성소수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영해준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나는 그날, 서울에서 열린 그 제10회 퀴어문화축제 덕분에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퀴어퍼레이드는 ‘퀴어 대명절’이기도 하다. 6월이 가까워지면 친구들은 ‘너 설에 시골 가?’하고 묻듯 ‘너 (서울)퀴퍼 갈 거야?’ 하고 묻는다. 몇 년을 못 본 성소수자 친구들과 지인들이 다 모이는 날, 그날 우리는 너 다행히 살아있구나 확인하고 서로의 자연사를 빌어준다(50%가 넘는 성소수자들이 자살충동을 느끼고, 약 25%는 자살시도 경험을 갖고 있다).
여름은 생명력의 계절. 뱀은 활기를 띠고 식물은 미친 듯이 쑥쑥 자라대고 나비는 커다랗게 태어나고 열매는 쩍쩍 익어간다. 우리는 스톤월 항쟁이 왜 하필 유월이어서 더워 죽는 퀴퍼를 하게 됐느냐고 불평하며 웃지만, 그래도 유월에 항쟁이 있었다는 것,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 시기에 퀴어퍼레이드를 한다는 것에 어떤 미신적인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기도 하다.
석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