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퀴어 동사무소 에세이]
성소수자는 여기에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연재는 광주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조명합니다.
연재의 타이틀인 ‘퀴어 동사무소’는 퀴어 시민이 지역사회에서 ‘보이는 존재’로 자리 잡고, 목소리를 내며, 서로를 기록하고 돌보는 공공 공간을 상상하는 의미입니다. 성소수자들은 단순한 정체성 이상의 존재이며, 다양한 차별과 연대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이 에세이들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또 누군가에겐 이해와 변화의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나는 ‘꼬리’라는 활동명으로 광주광역시의 이곳저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평범한 시민이다. 평소에는 마인크래프트 세상에서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 때 가장 편안한 내향인인데 또 심심한건 못 참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광주퀴어문화축제를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재준비모임 회의에 참여하면서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게 되었다.
나는 ‘운동’이나 ‘투쟁’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아와서 아직 이 활동이 그냥 재밌는 일이 아니라 사회운동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실감이 나는 일을 겪었다.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감히) 참석하러 온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내쫓는 일이었다. 연대 요청 글이 단체 대화방에 올라왔고 마침 집이 국립묘지와 가깝기도 해서 가볍게 버스를 타고 모이기로 약속한 민주의 문 앞으로 갔다. 그런데 경찰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알고 보니 그 날 대선 주자들과 국회의원들도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SNS에 올린 연대 요청 글을 보고 옹기종기 모인 무지개피플들 앞을 가로막은 경찰들을 보면서 전에 못 느꼈던 살벌함을 느꼈다. 솔직히 이거 잘못되면 그날 오후를 경찰서에서 보내게 될 것 같아 좀 무서웠다. 그 와중에 주차장 쪽에는 경찰들이 몸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는데 그 너머에는 서울에서 오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분들이 계셨다. 나는 저 분들이 뉴스에서 말하는 ‘전장연’이란 것도 몰랐는데, 그냥 무엇 때문에 저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가려야 하는지 그것도 5월 18일에 그래야 하는지 너무 부끄러웠다. ‘높으신 분’들을 위한 심기 경호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행히 시민들의 항의와 민주의 문 안쪽에 있던 이태원 유가족분들, 그리고 5·18 유공자분들의 연대로 안창호 씨는 민주의 문을 넘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감사하게도 샌드위치와 비건김밥을 나눠주셔서 샌드위치를 얻어 먹었다. 시민단체 같은 곳은 가끔 서명운동 하거나 후원 할때나 나와 접점이 있는 줄 알았는데 먹을 걸 얻어먹게 되어 매우 멋쩍었다.
혐오하고 차별하는 마음이란 뭘까? 나의 중국어 선생님은 20년 전 한국에 유학을 와서 정착한 중국인이다. 처음 이 분을 뵈었을 때 나는 ‘한국에서 20년을 살았으면 한국인 아니냐’고 농담을 했다. 그런데 선생님의 표정이 그닥 좋지 않아 보였다.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타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의 소셜미디어 글을 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 말은 칭찬이 아니라고. 칭찬인것 같지만 사실 내가 너를 특별히 인정해 주겠단 시혜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 그 나라 사람 같단 말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다고. 나는 사실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란 뜻에서 그 말을 한 것이었지만, 미처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보진 못했던 것이다.
혐오와 차별이란 결국 무례함에 대한 이야기같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에서 나오는 결과니까 말이다. 그런데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니까 실수할 때도 있는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내 행동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부터 혐오와 차별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안창호 씨처럼 국가인권위의 위원장이나 맡는 사람이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행보를 보이는 건 이해가 안 된다.
나는 10년차 마인크래프트 뉴비로서 퀴어와 앨라이들을 위한 마인크래프트 서버를 열어보고 싶다. 비록 마인크래프트의 창시자 노치는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포함한 여러가지 혐오발언을 트위터에서 남발해 제작사가 부랴부랴 그의 흔적을 게임에서 지웠지만 무슨 상관인가, 노치가 신도 아니고….
그런데 마인크래프트가 뭔지 이름만 들어본 분들도 많으실 것 같아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일종의 사이버 레고 같은 게임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네모 블럭들로 이루어진 지구의 8배 정도 크기를 가진 세계에 떨어지는데, 자연을 탐험하고 멋진 집을 짓고 밤마다 나타나는 좀비들과 싸우며 살아남는 그런 게임이다. 일단은 그렇다.
근데 왜 굳이 퀴어와 앨라이를 위한 서버를 만들고 싶냐면… 일단은 친목 목적이 크다. 그냥 이 게임을 좋아하는 퀴어와 앨라이들이 모여 즐겁게 게임을 하는 것. 물론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갈등은 생기지만 그냥 이 공간에선 적어도 당신이 어떤 정체성을 가졌단 이유만으로 모욕당하거나 죽임당하지 않는단 약속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또 한편으로는 인류가 가지고 있는 신경학적 다름을 결함이 아닌 다양성으로 받아들이자는 취지의 신경다양성 운동에 관심을 두고 관련 서적을 읽고 커뮤니티 활동도 하고 있다.
주로 관심 있는 분야는 ADHD와 자폐스펙트럼. 이유는 일단 내가 ADHD 당사자여서 그렇고 자폐스펙트럼의 경우는… 자폐와 ADHD는 겹치는 증상들이 꽤 있다. 감각 과민이나 과몰입, 혹은 분위기를 읽는 것이 어렵다던가.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르긴 한데, 어느 정도는 자폐인의 사고방식이 비자폐인의 사고방식보다 더 나에게 맞는 것 같다.
퀴어와 신경다양인의 경험은 어느 면에서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일단 둘 다 인구 구성상 소수자에 속하고, 자신의 다름으로 인해서 차별과 소외를 경험하기도 한다.
내가 활동했던 ADHD 커뮤니티에서 당사자들이 자신의 진단명을 주변인들과 가족에게 밝힐지 말지 고민하는 글들을 보면서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란 생각을 했다. 심지어 두 집단 모두 커밍아웃은 신중해야 한단 의견이 대다수라는 것도 똑같았다.
신경다양성에 관심을 두는 것과 같은 맥락도 있고 이제 점점 여기 저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이다 보니 ‘아픈 몸’을 다루는 것에 대한 이야기와 장애학에도 조금씩 관심을 두려고 하는데… 일단 마인크래프트를 줄여야 뭔가 될 것 같다.
글=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