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30일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개막
세계·삶·모빌리티·미래 네 가지 관점 살펴
어떠한 디자인은 다른 이를 살피고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탄생한다.
미국의 주방용품 브랜드 옥소(OXO)의 굿그립(Good Grips) 감자칼은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고안한 제품이었다. 미끄러지기 쉬운 금속 재질의 가늘고 긴 손잡이 대신 고무 재질의 굵은 손잡이로 만들어 조금 더 편안하고, 힘을 덜 들이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한 것이다.
이번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는 ‘잘 깎이는’ 감자칼 보다 ‘잘 잡을 수 있는’ 감자칼을 고안한 것과 같이 ‘도구’가 아닌 ‘사람’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을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다.
최수신 2025 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은 “포용이 없어지고 있는 사회다. 디자인이 가져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한다”며 “디자인이 예쁜 물건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차이에 관계 없이 모두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광주라는 도시에서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너라는 세계: 디자인은 어떻게 인간을 끌어안는가’(You, the World: How Design Embraces Humanity)가 오는 8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65일간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개최한다.
개막까지 두 달여를 남겨둔 가운데 18일 광주를 찾아 기자들과 만난 최 감독은 이번 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인 ‘포용 디자인’의 의의를 강조하며 전시관에서 선보일 주요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 디자인비엔날레는 디자인이 우리 주변의 존재를 생생하게 인식하는 방식이자 서로 다른 존재들을 안아주는 방법론임을 말하고자 한다.
“모든 사람이 편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포용 디자인으로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너’라는 세계이자 무한한 세계의 만남과 공존이라는 것을 제시할 것”이라는 것이 최 감독의 설명이다.
그는 또한 “유럽, 미국 등지에서 태동하고 발전해 온 유니버설 디자인과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개념을 더욱 확장해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역할로서의 디자인을 보여주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세계·삶·모빌리티·미래 네 가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1전시관 ‘포용디자인과 세계(Inclusive World)’에서는 세계 각국의 포용디자인 발전과 영향, 디자인 대학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볼 수 있다.
영국 왕립예술대학원 헬렌 함린 센터 작품 ‘롤레이터(Rollater)’는 전동 스쿠터에 밸런스 보드의 요소를 결합해 기존 보행 보조기기의 기능은 강화하면서도 다양한 연령층의 사용이 가능하게 만들어 사용자에 국한되지 않는 범용적인 활용을 촉진한다.
2전시관 ‘포용 디자인과 삶(Inclusive life)’은 일상의 차이를 변화시키고 연결하는 디자인을 보여준다.
앞서 소개한 스마트 디자인의 ‘옥소 굿그립 감자칼’을 비롯해 LG전자·아모레퍼시픽·나이키 등 다채로운 브랜드가 참여해 시각적인 디자인 제품뿐만 아니라 환경과 공공디자인까지 포괄하는 포용디자인이 적용된 삶의 모습을 펼쳐보일 예정이다.
3전시관 ‘포용디자인과 모빌리티(Inclusive Mobility)’는 이동약자를 넘어서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는 모빌리티의 확장을 제시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볼륨스퀘어: 특수 재난 대응 모바일 팝업 병원’은 전쟁, 홍수, 화산 폭발 등 갑작스러운 특수 재난 상황에서 절실한 의료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설계한 이동형 팝업 병원으로 노약자, 장애인, 감염자 등 모두가 안전하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4전시관 ‘포용디자인과 미래(Inclusive Future)’는 인공지능 기술과 디자인이 만드는 미래에 다양한 포용적 가능성의 시각화를 다채롭게 풀어낸다.
다니 클로드의 ‘세 번째 엄지손가락(Third Thumb)’은 손에 추가로 장착하는 로봇 보조 엄지손가락으로 사용자의 새끼손가락 아래에 부착하고 발가락의 움직임으로 작동하는 센서를 통해 제어할 수 있다. 장애를 있는 사람을 포함, 모든 사람에게 인체의 기능을 확장하는 장치로 설계됐다.
또한 주제를 되새기는 심포지엄과 실질적인 적용을 가늠하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도 선보인다. 8월 30일 포용디자인 전문가, 디자이너, 정책 입안자,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국제 심포지엄이 열릴 예정이며 ‘광주 포용디자인 매니페스토’ 선언을 통해 포용 디자인의 가치를 알리고자 한다.
광주 도시철도에 실제 포용 디자인을 적용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호남·제주 지역 대학생들이 참여하며 광주의 첫 관문인 광주송정역 지하철 역사에 노약자와 장애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직관적이고 효율적으로 지하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적용할 예정이다.
현재 현장 리서치를 마치고 콘셉트 도출과 디자인 시안을 완성했으며, 디자인비엔날레 개막 기간 동안 30~40%의 리모델링을 완료한 송정역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프로젝트 결과물은 3전시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최태옥 코디네이터는 “송정역의 리모델링이 예정돼 있었는데 포용 디자인의 관점으로 다시 디자인하게 됐다”며 “유명인이나 단순히 예쁜 디자인에 편승하지 않고 ‘광주란 무엇인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유시연 기자 youn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