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읽기] 극단 Y 연극 ‘늦은 행복’
노년의 삶 통해 들여다본 인간의 존엄성

연극 ‘늦은 행복’.
연극 ‘늦은 행복’.

 붉게 물든 단풍 사이로 가을 바람이 살며시 스치는 어느 공원, 노부인과 노신사가 천천히 걸어 나와 마주한다.

 둘은 마치 처음 만난 사이처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러나 관객은 곧 알게 된다.

 이 둘은 수십 년을 함께한 부부이며, 아내는 치매로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남편은 암에 걸린 몸을 숨기며 매일같이 그녀를 찾아온다는 사실을.

 극단 Y가 선보인 연극 ‘늦은 행복’은 2024년 일본 오사카 한일연극제 초청작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광주 동구 미로극장2관에서 공연됐다.

 이번 공연은 2025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선정작으로, 초고령화 사회 속 노인의 삶을 섬세하고도 진지하게 조명한다.

 연극 ‘늦은 행복’은 어느 공원에서 노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전개된다.

 붉게 물든 나무 두 그루와 벤치 하나, 무대는 간결하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감정의 밀도는 매우 짙고 무겁다.

 치매에 걸린 노부인은 매일 공원에서 ‘처음 본 신사’와 설레는 대화를 나눈다.

 노신사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매일같이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두 사람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이루고 싶었던 꿈 등 잔잔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그간 알지 못했던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과거를 떠올리며 회한에 잠기기도 한다.

 잔잔하면서도 따스함이 오가는 대화가 이어지다 자식에 대한 이야기로 갈등에 치닫고 만다.

 노부인은 많은 것들을 잊기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도 “결혼해서 첫 아이를 가졌을 땐 너무 기뻐서 울었어요. 둘째 아이가 태어나던 날은 너무 좋아서 웃었고요”라며 자식들에 관한 것은 잊고 싶진 않다고 말한다.

 그 말에 표정이 굳은 노신사는 “자식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를 고마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아요”라며 자신에게도, 아내에게도 아픈 말을 내뱉는다.

 자식들이 있으나 기대지 못하고, 나이 든 부모의 삶은 더욱 고립되는 현실.

 치매와 암이라는 질병으로 홀로 남겨진 그들의 삶과 외로움이 대화 속에 녹아들어 관객의 가슴을 무겁게 누른다.

 “사람은 자기 자신이 제일 먼저여야 해요.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노신사는 아내가 자식들 보다 스스로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담하고도 애절하게 전한다.

 연극은 현재 한국 사회가 맞이하고 있는 초고령화 시대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질병에 걸려 외면 당하는 노부모, 돌봄 없이 무너지고 마는 인간의 존엄성.

 우리 모두가 겪고 있고, 겪을 수 있는 문제를 너무 무겁지 않은 대화를 통해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삶의 끝자락에서 뒤늦게 깨달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부부는 그렇게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서로를 바라보고, 다시금 설렘을 느끼며, 창 밖 너머 핀 들꽃, 붉게 물든 석양 등 매일의 풍경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며 ‘늦은’ 행복을 찾아나간다.

 연극의 끝 무렵. 하늘엔 석양이 지고 공원엔 가로등 불빛이 들어오자 두 사람은 “내일이란 건 언제나 온다”며 다시 만나 차 한 잔을 나눌 것을 약속한다.

 두 사람이 그리는 ‘내일’이라는 희망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며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되새기게 한다.

 이날 노신사 역을 맡은 박규상 배우는 “이 연극을 통해 결국 전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다”며 “갈수록 고령화되지만 노인이 천시받고 있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늦은 행복’을 찾아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고 전했다.

 유시연 기자 youn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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