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퀴어 동사무소 에세이]

 성소수자는 여기에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연재는 광주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조명합니다.

 연재의 타이틀인 ‘퀴어 동사무소’는 퀴어 시민이 지역사회에서 ‘보이는 존재’로 자리 잡고, 목소리를 내며, 서로를 기록하고 돌보는 공공 공간을 상상하는 의미입니다. 성소수자들은 단순한 정체성 이상의 존재이며, 다양한 차별과 연대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이 에세이들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또 누군가에겐 이해와 변화의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큰 나무 한 그루’보다 ‘넓은 숲’을 꿈꾸며. 픽사베이 이미지.

 안녕하세요. 오픈리(공개적으로) 퀴어(성소수자) 당사자인 활동가이자, 딱 잘라 무슨 활동가라 말하기 애매한 연대 활동가이며, 주로 전남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한솔’이라고 합니다.

 이번 글은 제가 평소에 쓰던 글과는 조금 다르게, 약간은 주저리주저리 써보고자 합니다. 좀 더 인간미 있어 보이고 싶어서일까요?

 삶은 단 하나의 이름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본인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직책이나 별명이 있으신가요? 그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저조차 제 성별을 “애매한 그 어딘가”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누군가는 저를 “위원장” “조직부장” 혹은 “동지” “쌤”, “단장”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한솔”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이 호칭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한솔”이라는 이름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직책이 필요하지 않고, 어디에 소속될 필요도 없으며, 나이도 중요하지 않은, 가장 평등하고 편안한 호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에게 퀴어운동이란 무엇일까요?

 해야만 했던 것?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뚜렷한 운동? 혹은 나의 삶을 가장 깊이 뒤흔든 속성?

 어쩌면, 내 삶이라는 마당에 처음부터 당연히 있었던 커다란 무화과나무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활동이라는 것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당사자일수록 더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사자가 아니어도 활동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럴 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시혜적인 태도를 경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바라는 어떤 것을 위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활동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활동 동력이 뭐야?”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권력을 추구하지도 않고, 활동이 돈이 되는 것도 아니며, 뚜렷한 목표 하나를 좇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연대 발언을 할 때면 마치 모든 운동이 내 주요 활동 영역인 것처럼 발언하곤 했습니다. (연대 발언이란 그런 거니까요.)

 그래서인지, 제 활동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두 번째로 많이 들은 말은 “여기서도 보네요”였습니다.

 차도 없이 시외버스를 타고 연대 현장을 다니며, 늘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돈을 쓰는 삶을 살다 보니 자연스레 듣게 된 말이었습니다.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아주 단순합니다.

 “저를 필요로 한다고 요청했으니까요.”

 나 혹은 누군가가 연대를 요청했다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저는 그 활동에 동의한다면 객관적인 이유 같은 건 따로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연대하다 보면, 언젠가 제가 필요할 때 도움을 받게 되리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묻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않는 걸 보면, 지칠 때 없어요?”

 어떻게 아예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지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요.

 계속해서 다른 무언가를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평등한 세상이 오지 않겠습니까?

 ‘절망’이라는 말은 ‘끊을 절(絶)’과 ‘바랄 망(望)’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희망하기에 절망도 존재하는 거죠.

 만약 제 활동에 뚜렷한 목표 하나만 있었다면, 그 목표에 가까워지지 못할 때마다 절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큰 나무 한 그루’보다 ‘넓은 숲’을 꿈꾸었기에, 때로 나무가 쓰러져도 아쉬움 정도로 지나치며 계속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주로 퀴어운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연대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씁니다.

 “계속해 나가다 보면, 평등한 세상이 오지 않겠습니까.”

 글=한솔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