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달아 발생한 성범죄에 대한 분노는 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를 넘어 물리적 거세도 시행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몹쓸 짓을 다시는 못하도록 불능으로 만들어버리자는 것이다. 잔혹한 범행의 죄 값을 치르게 하자는 심정은 인지상정이겠으나, 성범죄가 근절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재범률은 낮아질 수도 있겠지만 다른 초범들이 나타나는 것은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문제를 약물주사를 통해 근절하겠다는 관점이 한계적이다. 화학적 거세 주장은 성범죄를 비정상적 개인의 일탈행동, 어쩌다 발생한 피해자의 불행한 사건으로 본다. 이는 성폭력에 대한 일반적 통념을 반영하고 있다. 성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가 술에 많이 취해서 그런 것 이라거나, 사실은 좋아하는데 표현이 적절하지 못했다거나, 원래 변태 같은 자였다는 등의 해석이 줄을 잇는 경우가 보통이다. 성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고 개인들 간의 갈등이나 변태나 저지르는 행동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최근 발생한 성범죄에 대해서도 동일한 시각의 접근을 확인할 수 있다. 성범죄자들이 아동포르노를 즐겨 봤다거나, 게임에 중독되었다거나, 대인관계가 단절되었다는 등의 비정상적인 특징을 범행의 원인으로 연결 짓는 방식이다.

 그러나 성폭력 통계를 보더라도 낯선 변태에 의해 발생하는 것보다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성인여성의 성폭력 가해자는 직장 내 동료나 상사의 경우가 가장 많고 아동의 경우에는 친족에 의한 건수가 많다. 성폭력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일상에서 가까운 사람에 의해 빈번하게 발생하는 폭력이다.

 이 같은 이유는 성폭력이 여성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고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맥락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남성중심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의 결과물인 것이다. 단적으로 대중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노출한 여성의 이미지나 섹시함을 강조하는 광고, 대규모로 존재하는 성산업 등이 사회가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화에 익숙해진 남성들이 일방적으로 성욕을 표출하면서 성폭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사회구조를 문제 삼지 않고, 성범죄는 비정상적인 개인들을 통제한다고 해서 근절되지 않는다. 

 그 동안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꾸준히 강화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성범죄는 줄어들지 않았다. 화학적 거세 주장과 같이 처벌에 중점을 두는 대처방식은, 성범죄의 원인이 비정상적 개인에 있다고 전제하여 사회구조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상대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범죄에 대한 분노의 마음은 처벌 강화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범죄가 사회적 산물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야기하는 남성 중심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를 바꾸는 노력이다.


이유미 <노동자운동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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