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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3일과 24일 광주 서빛마루문화예술회관에서는 ‘아버지의 해방 일지’라는 제목의 공연이 있었다. 놀이패 신명이 마당극 50주년을 기념하면서 제44회 정기 공연으로 올린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소설가 정지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마당극 형식을 취한 무대극으로 만들어졌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다. 아버지가 죽었다. 이렇게 말하는 화자는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한민국에서 몹시 힘들게 살아내야 했던 외동딸이다. 즉 ‘아버지의 해방 일지’는 지난한 한국 근현대사에서 방점을 찍은 좌우 사상의 충돌과 투쟁을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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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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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집을 비운 사이’. 제27회 ‘광주연극제’ 참가작으로 상무지구에 있는 ‘기분 좋은 극장’에서 9월 27일부터 10월 2일까지 공연한 작품이다. 서술어로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이 여지가 많은 제목을 들으면 대부분 세 가지 정도에 집중할 것이다. 하나는 시간이다. 네가(내가) 집을 비운 그 시간. 두 번째는 장소다. 집이라는 장소. 마지막은 사건이다. 내가(네가) 잠시 비운 그 시간에 내(네) 집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일까. 이 세 가지가 뇌리를 점령하면 대개는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가득차게 마련이다. 그리고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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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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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광주 소극장 축제’의 일환으로 지난 5일부터 6일 양일간 극장 ‘통’에서 극단 ‘유피씨어터’가 ‘스위트룸 719’라는 공연을 올렸다. ‘스위트룸 719’는 미국의 극작가 닐 사이먼(1927-2018)의 ‘플라자 스위트(Plaza Suite)’가 원작이다. 뉴욕에 있는 플라자 호텔 스위트룸 719호에서 벌어지는 일을 옴니버스식으로 꾸민 작품인데, 이 작품에는 장소가 같다는 공통점 말고는 관련이 없는 세 가지 에피소드가 병렬 배치된다. 첫 번째는 결혼 25주년을 맞은 여자가 신혼 첫날밤을 보냈던 호텔 방에서 남편과 근사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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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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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극배우협회 광주광역시지회가 열여덟번 째 정기 공연으로 스페인 작가 알레한드로 카소나(1903~1965)의 ‘나무는 서서 죽는다’를 무대에 올렸다. 작품은 지난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에 걸쳐 ‘미로극장’에서 공연됐다. 배우들은 광주시에서 배우 활동을 하는 이들이 모였고, 연출은 서울에서 내려온 연극인이 맡았다고 한다. 20년 전에 하나뿐인 손자와 의절하게 된 할아버지가 있다. 그는 손자를 그리워하고 걱정하는 아내를 위해 거짓 편지를 써 왔다. 가짜 편지에서 손자는 대학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도 가진 데다 결혼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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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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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빛고을문화회관에서는 극단 ‘수수파보리’의 ‘통속 소설이 머 어때서?!’라는 연극이 있었다. 1930년대 통속 소설 작가로 이름을 날렸던 김말봉(1901~1961)을 소재로 취한 연극이었다. 이 작품은 30편이 넘는 그녀의 신문소설 중 세 개를 뽑아 연극으로 짧게 압축하여 보여주면서 김말봉을 얘기하는 방식을 택했다. 김말봉은 가끔 등장하고, 그녀의 작품과 그녀의 삶에 관해 설명을 붙이는 해설자 두 명이 나온다.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로 이루어진 이 해설자 두 명은 만담을 잘하는 변사를 연상시켰다. 이 두 배우의 역할이 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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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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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극장 ‘통’에서 전남대학교 극문화 연구회(이하 전대 극회)가 제124회 정기 공연을 올렸다. 제목은 ‘아라뱃길 살인사건’. 2020년 5월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있는 아라뱃길의 수로에서는 훼손된 사람의 신체가 떠올랐다. 연이어 계양산에서도 훼손된 신체 일부가 발견됐다. 이 사건은 아직 미제로 남아 있는데, 극단 ‘배우들’에서 이 사건을 모티브로 연극 작업을 했다. 제목은 ‘어서 와요. 이곳으로’이다. 2020년 제3회 창작극 페스티벌, ‘초연입니다’에서 공연됐다. 전대 극회는 제목을 바꾸고, 원 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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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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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6일부터 8일까지 금남로에 있는 소극장 ‘공연 일번지’에서는 ‘문화예술공방 바람꽃’의 10주년 기념 공연이 있었다. 오세혁 극작가의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널 지켜줄 거야 친구야’라는 긴 제목의 희곡을 ‘세상 친구’라는 제목으로 한종신이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렸다. 바람꽃은 2022년 ‘제36회 광주연극제’에서 오세혁의 원래 희곡 제목으로 이 작품을 출품한 적이 있었기에 똑같은 작품을 다시 올리는 것인지 아닌지가 일단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희곡만 같을 뿐, 다른 작품이었다. 제목도 네 글자로 줄였고, 연출과 캐스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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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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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6일부터 27일까지 광주 극단 ‘토박이’ 전용 ‘민들레 소극장’에서 굿판 하나가 벌어졌다. 1993년부터 마당극 배우로 활동해 온 지정남이 ‘지정남의 환생굿’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했다. 지정남은 극에서 혼자 여러 역을 해내는데, 극 안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이 무대를 위해 극작, 기획, 연출까지 맡았다. 초짜 무당 고만자에게 굿 의뢰가 들어온다. 오뚜기 밥집 주인 김윤희는 미화원으로 일하다가 화장실에서 죽은 변미화를 환생굿으로 불러내달라고 한다. 극은 스승에게 인정받는 당골이 되고 싶은 고만자가 생애 첫 굿판을 시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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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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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0일과 31일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1에서는 남성 창극 ‘살로메’의 공연이 있었다. ‘살로메’는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의 작품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성서에 짧게 언급된 살로메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1막의 짧은 희곡으로 극화했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원한 유대 공주 살로메의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마르코 복음에 실려 있다. 성서에 기록된 이야기는 유대의 왕 헤로데가 의붓딸인 살로메의 청으로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 준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사실 요한의 목을 원한 것은 살로메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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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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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2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는 ‘사난 살주’라는 조금 특이한 제목의 공연이 한차례 있었다. ‘사난 살주’는 제주도 방언이다. ‘살아 있으니 살아간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살아 있으니’ 앞에는 ‘죽지 못해서’라는 의미가 첨언되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차마) 죽지는 못하고 살아 있으니 살아가는’ 삶에 ‘사난 살주’라는 네 음절에 포함된 절망과 고통이 느껴진다. 대체 어떤 삶이길래 죽지 못해서 살아간다는 말인가. ‘사난 살주’는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두 개의 장으로 나눠져 있는데 1부는 ‘억장’, 2부는 ‘감천’이었다.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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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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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5일과 26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2에서는 뮤지컬 한 편이 올라갔다.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이라는 극이다. 2009년에 토니상과 퓰리처상(드라마 부문)을 석권한 작품이었다. 토니상에서는 무려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고, 그중 3개 부문(음악상·편곡상·여우주연상)에서 수상했다.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의 주인공 다이애나는 아들과 딸, 그리고 다정다감한 남편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다. 다이애나는 아들을 무척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딸과는 갈등이 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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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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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2일부터 25일까지 소극장 ‘공연 일번지’에서는 아주 유쾌한 연극 한 편이 올라갔다. ‘연극문화공동체 DIC’의 ‘질투’라는 공연이었다. ‘질투’에는 연배가 좀 있는 등장인물이 셋 나온다. 잠깐 등장하는 ‘손님’역의 배우까지 하면 총 네 명의 등장인물이 있지만, 말 그대로 ‘손님’은 짧게 등장했다가 퇴장하고 연극은 그 세 명의 배우만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완규는 이혼하면서 전 재산을 부인에게 거의 다 주다시피 한 60대 중반의 사내다. 그는 화분 사업을 하는데, 사무실로 쓰는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한다.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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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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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4월 초파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다. 가끔 삶이 힘들 때, 부처님에게 귀의하면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부처님은 타 종교의 신들과는 좀 다르다. 그분께 무조건 의탁하는 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아닌 것 같은 것이다. 부처님은 원래 한 왕국의 태자였다. 세속의 부귀와 영광은 다 누릴 수 있는 자리를 마다하고 그는 왜 험난한 고행의 길을 선택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 ‘붓다’가 되었을까? 아마 나처럼 붓다의 삶에 의문을 가진 비신자나, 이미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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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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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부터 21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제프 소벨(Geoff Sobelle)의 ‘Food’라는 작품의 공연이 있었다. 웨이터 복장의 외국인이 아주 큰 식탁에서 관객일 것 같은 사람들과 섞여 있는 모습의 포스터만으로도 재미있어 보였고 흥미가 돋았다. 무얼 하는지는 몰라도 30여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큰 식탁 자리는 이미 매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흥미로웠고, 잘 보고 싶어서 되도록 식탁 가까운 자리로 예매했다. 참고로 식탁 자리가 제일 비싸고 식탁에서 멀어질수록 티켓비는 저렴해진다. 극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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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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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광주 연극제’(3월 5~9일)의 네 번째 작품은 극단 ‘시민’의 ‘갈매기’였다. ‘갈매기’는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작품이다. 극단 ‘시민’은 작년에 있었던 ‘제37회 광주 연극제’에서도 체호프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작년에 올라갔던 작품은 ‘세 자매’였다. ‘갈매기’는 1896년 10월에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대실패로 끝났다. 실망한 체호프는 다시는 희곡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체호프의 천재적 극작성을 알아본 네미로비치 단첸코가 체호프를 설득한다. 또, 단첸코는 작품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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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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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광주 연극제’ 두 번째 작품은 극단 ‘까치놀’의 ‘이장(移葬)’이었다. 묘를 옮긴다는 의미의 ‘이장(移葬)’은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박근형의 작품이다. ‘이장(移葬)’은 2023년에 ‘제17회 차범석 연극상’을 받았다. 이번 극단 ‘까치놀’의 ‘이장(移葬)’은 이영민 씨가 연출을 맡았다. 무대에는 바깥과 내부를 가르는 기둥(골조)이 몇 개 있다. 오른쪽에는 벽이 세워져 있다. 무대 중앙에 단이 하나 있고, 거기에 나이 든 엄마가 누워 있다. 이 단출한 무대 장치는 의외로 작품을 잘 설명해준다. 사실적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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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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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화)부터 3월 9일(토)까지 빛고을시민문화관 대극장에서는 ‘제38회 광주연극제’가 열렸다. ‘광주연극제’는 ‘대한민국연극제’의 예선전 성격을 띠고 있다. 올해로 제42회를 맞은 ‘대한민국연극제’는 이번에는 경기도 용인시에서 개최된다. 6월 28일부터 7월 25일까지 열리며, 16개 광역시·도에서 경연을 거쳐 올라온 대상 작품들이 경합을 벌인다. ‘제38회 광주연극제’의 첫날 작품은 극단 ‘아트컴퍼니 원’의 ‘돌아오는 길’(연출 원광연)이었다. 제목에서 벌써 고난이 느껴진달까. 무슨 사정으로 낯선 장소에 가게 되었는지는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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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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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3일부터 24일 이틀간 ‘민들레 소극장’에서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작품이 무대에 올라갔다. ‘전남대학교 극문화연구회’(이하 전대극회)의 제123회 정기 공연이었다. 원작은 권호웅의 ‘낙하산’이라는 작품인데, 전대극회 소속 대학생들은 제목을 ‘판도라의 상자’라고 바꾸고, 약간의 각색을 가했다. 권호웅의 ‘낙하산’은 1999년이 시간적 배경이다. 즉, 대한민국에 1997년부터 시작되었던 외환 위기(일명 IMF)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유례없는 국가부도의 날을 견디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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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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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2일부터 14일까지 ‘시어터 연바람’에서는 극단 ‘밝은밤’이 창작 뮤지컬 ‘연애를 잃다’를 올렸다. 광주에서 뮤지컬이라니, 그것도 창작 뮤지컬이라니 신선했다. ‘연애를 잃다’라는 제목도 신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극단 ‘밝은밤’의 주요 구성원이 젊은 연극인으로 되어 있다더니 요즘 젊은 세대는 연애를 잃어버린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법 호기심이 일었다. 약간의 우려도 있긴 했다. 극단 ‘푸른연극마을’의 전용 극장인 ‘시어터 연바람’이 지하에 있는 작은 극장임을 알기에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뮤지컬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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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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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푸른연극마을’은 2024년 새해 첫 연극으로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Florian Zeller)의 ‘더 파더(The Father)’를 택했다. 1월 17일부터 ‘연바람 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플로리앙 젤레르는 현대 프랑스 희곡 작가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이고, 그의 ‘The Father’는 프랑스의 몰리에르상과 미국 토니상을 비롯하여 각국에서 연극에 관련한 여러 상을 받았다. 젤레르는 ‘The Father’를 직접 각색하고 연출하여 영화로도 만들었는데, 제93회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앤서니 홉킨스)과 각색상을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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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2024.01.3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