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의 무대읽기] 연극 ‘돌아오는 길’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 스스로 되찾는 과정

연극 '돌아오는 길'
연극 '돌아오는 길'

 3월 5일(화)부터 3월 9일(토)까지 빛고을시민문화관 대극장에서는 ‘제38회 광주연극제’가 열렸다. ‘광주연극제’는 ‘대한민국연극제’의 예선전 성격을 띠고 있다. 올해로 제42회를 맞은 ‘대한민국연극제’는 이번에는 경기도 용인시에서 개최된다. 6월 28일부터 7월 25일까지 열리며, 16개 광역시·도에서 경연을 거쳐 올라온 대상 작품들이 경합을 벌인다.

 ‘제38회 광주연극제’의 첫날 작품은 극단 ‘아트컴퍼니 원’의 ‘돌아오는 길’(연출 원광연)이었다. 제목에서 벌써 고난이 느껴진달까. 무슨 사정으로 낯선 장소에 가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고난과 시련을 다 겪은 후 이제 돌아오는 일에 관한 이야기일 것 같은 느낌과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는 길’은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다.

 위안부 이야기는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이 되고 나서도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극에서도 나오지만, 위안부로 끌려갔던 당사자도, 그 가족도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길 원치 않았다. 특히 가해국인 일본은 위안부의 존재를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진심 어린 사과나 배상도 나 몰라라 하는 상태다. 하지만 어린 소녀였던 그들이 시간이 흘러서 할머니가 되어 용기를 내어 자신의 존재를 알린 후부터는 연극이나 영화, 뮤지컬 같은 예술 장르에서 위안부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고, 이제는 모두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돌아오는 길’의 배경이 된 곳은 인도네시아 숨바섬에 있었던 위안소다. 기차역에 있다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서 일본 군인의 성노리개가 된 소녀부터 일을 하면 돈도 주고 학교도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서 온 소녀까지 당시 조선의 각지에서 끌려 온 소녀들이 날마다 일본 군인의 정액받이를 하며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어린 소녀 중에서 전쟁이 끝난 후 집에 온 사람은 단 한 명이다.

 그 생존자는 ‘춘자’라는 이름의 소녀인데, 고통으로 점철된 삶일지언정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집에 돌아왔지만, 이름과 신분을 바꾸고 가족과 집을 떠나 생활해야 한다. 그것을 권하는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아버지다. 춘자의 아버지는 먼 친척 중에서 일찍이 명을 달리한 황길자의 이름을 돈과 함께 딸에게 건넨다. 춘자는 동생들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긴 세월을 춘자는 황길자로 살아간다.

 황길자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살아가지만, 일제강점기에 징용되었던 노동자 115구의 유해가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날 참지 못하고 행사장에 나간다. 그리고 외친다. 인도네시아 숨바섬에 같이 있었던 그들, 힘들고 처참한 삶을 같이 했던 친구들도 데려와 달라고. 이 사건은 한 방송국 기자의 눈에 뜨이고 그는 황길자를 인터뷰하여 작품을 만들 생각으로 황길자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기자는 메인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에 이 소재를 한껏 이용하려 한다.

연극 '돌아오는 길'
연극 '돌아오는 길'

 그래서 ‘돌아오는 길’의 무대는 이분화되어 있다. 황길자와 기자가 나누는 현재가 있고, 숨바섬에서 흐르는 과거의 이야기가 있다. 무대 장치도 이원화돼 있다. 무대 앞면에는 길자의 집을 나타내는 단 두 개가 설치되어 있고, 길자와 기자의 시간은 여기에서 흐른다. 그 뒤로는 숨바섬의 위안소다. 어린 소녀들의 과거 시간은 그곳에서 흐른다. 과거 이야기가 중점인 ‘돌아오는 길’ 류의 서사에서는 어찌 보면 이런 플래시백(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에 끼어드는 것) 기법이 불가항력적일 수도 있는데, 너무 상투적으로 느껴진다는 관객도 있어서 과거사를 다루는 극을 쓰는 작가가 치열하게 고민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시간을 나타내는 무대 앞쪽에는 황길자의 집을 나타내는 단 두 개 말고도 큰 단 한 개가 오른쪽에 있었는데, 연극이 끝나가도록 그 단이 사용되지 않아서 궁금증이 크게 일었다. 그 단은 춘자가 고국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와 상봉하는 부산항으로 이용되었다. 춘자(과거)가 황길자가 되는 순간(아직 과거)이 무대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단 위에서 벌어지고, 그 일은 바로 그 왼쪽에 위치한 황길자의 현재로 이어진다. 그 현재에서 춘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자신은 황길자가 아니고 황춘자라고.

 ‘돌아오는 길’은 이름을 잃어버린 춘자가 다시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되찾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기자 오남수 역시도 속칭 대박을 터뜨리려는 천박한 자본주의식 욕망을 가진 사람에서 한 인간의 아픈 역사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정직하게 기록하고 기억하는 진정한 기자로 태어나는 변화를 겪는다. 두 인물 모두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돌고 돌아서 말이다.

 한 20대 초반의 관객은 위안부에 대해 자신도 잘 모르는데, 정말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돌아오는 길’에서 묘사한 어린 위안부들의 삶이 너무 일상적이었다고 평했다. 숨바섬의 위안소에서 벌어지는 일화들이 무작정 평화롭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그런 처절함만 있는 건 아니어서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연출은 위안부를 떠올리면 흔히 하기 쉬운 상상은 배제하고, 그들이 겪은 고통과 아픔을 바탕으로 한 후에 그들이 ‘돌아오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얼마나 끈질기게 참고 견뎠는지에 집중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은 이번 광주연극제에서 ‘예술상’을 수상했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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