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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 병영(兵營)면은 한때 잘나가던 군사도시였다. 병마절도사가 주둔했으니 지금으로 말하자면 호남지역 육군 사령부로 볼 수 있다. 인구 2만 명에 육박했던 까닭에 ‘북에는 개성상인 남에는 병영상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꽤 번성했다. ‘병영’이라는 지명도 왜구의 출몰을 막기 위해 조선 태종 17년(1417)에 광산현(현 광주)에 있던 군영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일반명사가 된 것이다. 병영성(兵營城)을 설성(雪城)이라고도 한다. 조선 개국공신 마천목 장군(1358~1431)이 초대 병마절도사로 부임하면서 성터를 고민하던 중 꿈에 나타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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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 전주 동남부를 에워싸고 있는 고덕산(高德山·603m)은 타임캡슐이다. 고도의 영광과 오욕의 역사를 함께 했고 외부의 침입을 막는 방어기지 역할을 했다. 조선 왕조의 뿌리인 경기전과 한옥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남고산에는 남고산성이 있다. 901년 후백제의 견훤이 도성을 쌓았다고 하여 견훤산성, 또는 남고산의 주봉인 고덕산의 이름을 따서 고덕 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전주는 백두대간을 넘어 호남의 곡창지대로 가는 관문이다. 이곳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개의 산성이 있는데 현존하는 남고산성의 형태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전주성을 지킨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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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의 ‘가지(迦智)’는 ‘모든 생명은 본래 부처다. 이것을 아는 것이 석가모니의 지혜다’”라고 보림사에 주석했던 일선(日禪) 주지는 주장한다. 해발 510m에 불과한 장흥 가지산(迦智山)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남쪽 계곡에 깊숙이 자리 잡은 보림사(寶林寺)의 위상 때문이다. 지금은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전락해 옛 영화는 간데없지만, 보림사는 8세기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된 천년 고찰로서 선종(禪宗)을 태동한 절이다. 초기 신라시대의 불교는 다섯 종파가 경전을 중요시하는 귀족불교였다. 그러나 통일신라 후기 당나라 유학파들은 참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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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전북 고창, 부안의 도자기를 빼놓고 우리나라 도자 역사를 쓸 수 없다고 말한다. 특히, 고창 화시산(火矢山·404m) 아래 운곡습지 인근에 위치한 용계리 청자 요지는 고려 초기인 11세기 전북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청자 가마터다. 이곳에서 시작한 청자 기술이 12세기경 부안으로 건너가 강진 일대의 도요지와 쌍벽을 이루는 종갓집 같은 역할을 했다. 화시산은 목포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서해안 고속도로(15번)의 고창고인돌휴게소에 바짝 붙어 있는 산으로 기름진 평야 지대를 끼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잘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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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났더니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섬이 여수 낭도(狼島)다. 낭도는 2015년 전라남도에서 시행한 ‘가고 싶은 섬’ 공모사업지 중 한 곳에 선정된 이후 사람들의 관심 속으로 들어왔다. 2020년 팔영대교를 비롯해 적금대교, 낭도대교, 둔병대교, 조화대교 등 고흥과 여수를 잇는 5개의 다리가 연결되면서 이제는 밀려드는 탐방객들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다. 낭도는 차로 들어갈 수 있는 편리한 접근성도 한몫하지만, 섬 전체가 다양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먹거리까지 삼박자가 갖추어져 있다. 낭도에 있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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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신지도 금곡마을은 조선 4대 명필로 꼽히는 원교 이광사(1705~1777)가 16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한 곳이다. 비운의 명필 이광사는 한국적인 서체의 토대가 된 ‘동국진체(東國眞體)’와 서예의 체계적인 이론서인 ‘서결(書訣)’을 쓴 인물이다. 화강암의 골기가 느껴진다는 그의 글씨는 구례 천은사 일주문,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나주 금성관, 강진 백련사 대웅보전,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완도군의 슬로건은 ‘치유’다. 청정바다가 품고 있는 자연환경과 해양문화를 토대로 ‘해양치유의 섬’, ‘해양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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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자은도(慈恩島)에 들어서면 ‘천사의 섬’이라는 글귀가 눈에 자주 보인다. 신안군에는 크고 작은 섬이 1,004개 있다. 그래서 천사의 섬이다. 총연장 7.3km의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2019년 4월에 개통되었다. 예전에 1시간 넘게 걸리던 뱃길이 자동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게 된지 오래다. 천사대교는 우리나라에서 건설된 교량 중 영종대교, 인천대교, 서해대교에 이어 4번째로 긴 해상교량이다. 천사대교를 건너면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4개의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하나의 섬이 되었고, 최근에 장산도와 자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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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우이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있는 27개의 우이군도를 거느린 여왕이다. 여왕의 섬은 바람과 안개가 지키고 있어서 하늘이 허락해야 만날 수 있다. 거친 바닷길을 마다하지 않고 우이도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섬 속에 사막이 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국적인 풍경의 우이도 모래언덕은 자연이 만든 경이로운 기적이며, 살아있는 생물이다. 0.01mm보다 더 작은 알갱이들이 수만 년 동안 파도와 바람에 밀리면서 모래성을 만들었다. 해변에서 보이는 높이 80m 가로 100m의 모래언덕은 일부에 불과하다. 진짜는 해류를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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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평야는 전라북도의 서반부를 차지하는 드넓은 평야다. 두승산(斗升山·444m)은 호남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았다. 높이는 비록 낮지만 부안의 변산, 고창의 방장산과 함께 삼신산이라 불렸다는 호남의 명산이다. 고려초 이곳 지명인 영주(瀛州)를 붙여 영주산이라 불렸지만 언제인가부터 곡창지대와 무관하지 않게 쌀 한 말(斗) 한 되(升)를 뜻하는 두승산이라 불리고 있다. 두승산에는 병풍능선이 눈길을 끈다. 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병풍능선은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고려시대 때 축조된 포곡형 두승산 성터가 입석리에 남아있다.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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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개신교 역사는 조선 후기 개화기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다. 선교사들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겼다. 그들은 신앙인이지만 교사, 의사였고 때로는 임금이나 대신들의 정치적 자문을 하는 외교관 역할도 했다. 개화기 조선의 정치, 경제, 외교, 교육, 의료의 발전은 물론 일반 백성들의 계몽에도 앞장섰다. 한센병 환자, 장애인, 여성 인권, 민족의 자주 독립의지를 심어주는 등 사회 전반에 등불 같은 존재였다. 호남지역에 개신교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들의 헌신과 봉사에 기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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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군 백운면은 전국에서 외지고 궁벽진 곳들 중의 한 곳이다. 겹겹이 산과 골이 높고 깊다. 진안군 전체 면적의 80%는 덕태산(德泰山 1113m), 선각산(仙角山 1141m), 구봉산(九峯山 1002m) 등 산림으로 이루어진 고원지대다. 덕태산과 선각산은 심마니들이 약초산행 일번지로 꼽을 정도로 자생하는 약용식물과 토종약초의 천국이다. 야생삼(산삼), 구리대, 생강나무, 토사자, 천마, 으름열매, 놋젓가락나물, 독활, 산다래, 꽃향유, 하수오, 천궁 등 헤아릴 수 없다. 두 산은 형제처럼 보이지만 덕태산과 선각산 경계를 가르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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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는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섬이다. 이곳의 땅과 산, 바다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기대어 살아왔다. 때로는 영광의 순간도 있고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소용돌이도 있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영웅의 이야기만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비록 이름 없는 골짜기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태산만큼 의미가 있는 곳일 수도 있다. 진도 선황산을 찾는다면 삼별초에 대한 이해가 먼저다. 선황산을 중심으로 용장산성을 쌓고 죽음으로 저항했던 시대적 배경과 정신을 알아가는 것도 산꾼으로서의 올바른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삼별초, 끈질긴 저항의 역사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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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살지 않는 우리나라에도 용맹한 사자 한 마리가 있다. 전남 장흥과 보성에 걸쳐있는 사자산(獅子山)이다. 이름에 걸맞게 제왕의 위엄이 깃든 범상치 않은 산세다. 커다란 수사자 한 마리가 읍내를 지키고 있는 듯한 당당한 자태로 앉았다. 파라오를 지키는 스핑크스 같다. 사자산은 머리와 꼬리가 있는 산이다. 장흥읍 쪽의 봉우리를 사자의 머리인 두봉(570m)으로, 직선으로 2km인 등줄기 끝을 꼬리인 미봉(667.5m)으로 부른다. 미봉이 실질적인 정상이며 호남정맥과 만나는 지점이다. 사자를 닮았다는 이름과 달리 부드러운 능선을 가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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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지도(智島)는 병어와 민어로 유명한 고장이다. 해마다 6월에는 병어축제, 8월에는 민어축제가 열린다. 병어와 민어는 지도와 임자도, 낙월도 인근 모래 지층에서 많이 잡힌다. 1974년 무안군과 지도읍을 연결하는 연륙교가 놓이면서 육지화되었다. 지도는 예부터 군사적으로 주요한 요충지였다. 한양으로 가는 세곡선과 중국을 오가는 중요한 항로였고, 임진왜란때는 해로를 따라 한양으로 진격하는 왜군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뱃길이었다. 그런 탓에 지도에는 일찍부터 수군진이 있어 1682년(숙종8년) 수군만호진이 설치됐다. 당시 지도군의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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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팔영산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있다. 우리나라에서 흔치않게 산지가 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된 경우다. 8개 지구로 나뉘어 있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는 400여 개 섬과 여러 산이 있다. 그중 팔영산(八影山)이 가장 높다. 팔영산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에 여덟 폭 병풍을 펼쳐 놓은 모습이다. 다도해를 지키는 수문장처럼 봉우리마다 당당한 기세다. 허리를 바짝 숙이고 손발 모두 사용해야만 겨우 길을 열어준다. 우리나라에서 10대 악산에 꼽힌다. 땅보다 바위를 밟는 곳이 많은 골산이다. 팔영산은 1998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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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 군동면 화산리에 있는 화방산(花芳山 402m)은 ‘큰바위 얼굴산’으로 불린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사람 얼굴 모양의 산이다. 화방산 능선에 우뚝하게 서 있는 거대한 퇴적암 덩어리가 그 주인공이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몬스터 삼형제 같기도 하고 익살스런 말뚝이 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광대(廣大)바위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능선에 올라 옆모습을 보면 30여m의 단일 암봉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윤곽을 가진 미남 형상이다. 신비로운 미남 바위가 입소문 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등산객들이 찾아올 정도가 되었다. 화방산은 반나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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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해남의 대표적인 산이 두 개 있다. 명찰 대둔사(대흥사)를 안고 있는 두륜산(700m)과 등뼈 같은 암릉의 달마산(489m)이다. 그외엔 대체로 500고지 이하의 올망졸망한 크기의 산 들이 많다. 그중에 예부터 전통적인 명산으로 유명한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金剛山 1638m)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산이 해남에도 있다하니 호기심을 아니 가질 수 없다. 해남 금강산(金剛山 482,8m)이 대채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런 이름을 가졌을까? 더욱 당돌한 것은 좌우에 만대산(萬垈山 493m. 443m)을 두 개나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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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해변은 순천시 해룡면 와온마을에 있는 길이 3km의 해변이다. 와온해변 앞에 ‘사기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바닷물이 사기도까지 밀려가면 광활한 갯벌이 드러난다. ‘S’자형 수로에 비치는 해넘이는 서서히 황금빛으로 변하며 사기도와 봉화산 사이로 빨려 간다. 사진작가들의 탄성과 셔터가 터지는 순간이다. 환상적인 노을을 선물하는 별량면 봉화산(烽火山·235m)이다. 봉화산은 역사적,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봉화산에는 학산리 봉화대가 있다. 1942년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따르면 “산꼭대기에 9척 사각형의 고혈(古穴)이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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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산(金錢山·668m)은 쇠 금(金), 돈 전(錢) 자를 쓰는 이름값 톡톡히 하는 낙안면(樂安面)의 진산이다. 일제 강점기 때 금을 캐던 연유도 있지만, 의상대와 원효대의 기운이 좋다고 알려지면서 한때 로또 명당이라는 소문까지 났다. 산 이름은 부처의 500 제자 중 한 명인 가난한 약초꾼 금전비구(金錢比丘)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금전산은 거친 바위산이다. 하지만, 까칠해 보이는 산세와 달리 전체적으로 완만하고 능선만 올라서면 조망도 좋다. 최고의 포인트는 암릉이 뭉쳐있는 금강암(金剛庵) 일대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금강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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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고경명의 호는 제봉(霽峰)이다. 그의 호에서 비롯한 산이 두 곳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제봉산(霽峰山·165m)과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제봉산(霽峰山·328m)이다. 압촌마을은 장흥 고씨 세거지로서 고경명이 태어난 곳이다. 고경명은 1533년 출생, 1558년 문과에 장원급제해 벼슬길에 나간다. 화려한 관직을 두루 거친 후 59세인 1591년 동래부사를 끝으로 관직을 벗었다. 석천 임억령, 서하 김성원, 송강 정철, 제봉 고경명은 무등산 아래 식영정에서 교분을 나누었기에 식영정 사선(四仙·4명의 신선)이라 불렀다. 무
호남의 명산
김희순
2025.01.2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