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순의 호남의 명산] 전주 고덕산(603m)
문화유적 즐비 노천박물관, 억경대 조망 일품

남고산성.
남고산성.

 천년고도 전주 동남부를 에워싸고 있는 고덕산(高德山·603m)은 타임캡슐이다. 고도의 영광과 오욕의 역사를 함께 했고 외부의 침입을 막는 방어기지 역할을 했다. 조선 왕조의 뿌리인 경기전과 한옥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남고산에는 남고산성이 있다. 901년 후백제의 견훤이 도성을 쌓았다고 하여 견훤산성, 또는 남고산의 주봉인 고덕산의 이름을 따서 고덕 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전주는 백두대간을 넘어 호남의 곡창지대로 가는 관문이다. 이곳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개의 산성이 있는데 현존하는 남고산성의 형태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전주성을 지킨 이정란이 쌓았다고 한다. 남북에 지휘소인 장대가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 문이 있다.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씩 포루가 있다.

 남고산(南固山·273.7m) 은 도시에 바짝 붙어있는 담장과 같다. 날카로운 석영암질의 규암절벽이 천혜의 요새 역할을 하고 그 위에 남고산성을 쌓았다. 이곳에는 천경대, 억경대, 만경대 3개의 봉우리가 있다. 세 곳의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억경대는 시야가 가장 멀리까지 보인다. 전주시내 전경과 평야지대, 익산 미륵산을 비롯한 금강정맥의 칠백이고지, 호남정맥 연석산까지 거침없는 조망이다. 만경대 남쪽바위에는 포은 정몽주가 ‘만경대’라고 쓴 글씨와 함께 기울어 가는 고려를 걱정하며 지었다는 우국시가 있다.

남고산 서문.
남고산 서문.

 만경대 암벽 정몽주 쓴 우국시

 이성계 장군이 1380년 왜군을 상대로 운봉 황산대첩에서 승리한 후 전주 오목대에서 자축연을 하며 대풍가(大風歌)를 불렀다. 대풍가는 대륙을 통일한 한 고조 유방이 불렀다는 노래로 자기의 웅대한 포부와 야망을 드러내는 노래다. 자축연에 참가한 포은 정몽주는 고려의 국운을 한탄하면서 그 심경을 만경대 남쪽 바위 표면에 칠언율시로 새겼다. 암각 글씨는 오랜 세월 풍화로 인해 희미한 형태만 보인다.

 고덕산을 감싸고 있는 사고사찰(四固寺刹) 유적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후백제의 견훤이 전주로 도읍을 정한 뒤 동서남북에 불교적 신앙으로 왕도를 지키려 했다. 이때 지은 네 개의 사찰이 사고사찰이다. 4대 비보사찰은 승암산 자락에 동고사(東固寺), 남고산 자락에 남고사(南固寺), 황방산 자락에 서고사(西固寺), 호암산 자락에 북고사(北固寺·현 진북사)다. 추가적으로 동쪽 승암산에 있는 견훤 왕궁지를 방어하기 위한 동고산성, 황방산에는 서부 지역 방어를 목적으로 한 서고산성이 있다.

숲 등산로.
숲 등산로.

 고덕산은 도심에 가까이 있어 등산로가 매우 다양하고 산행과 동시에 역사 탐방을 겸할 수 있을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생활권 등산로답게 길은 매우 양호하다. 다만, 갈림길 이정표에서 방향 표시가 혼동되어 주의해야 한다. 역사 유적탐방을 목적으로 전주교육대학교 뒤쪽에서 남고산을 오르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남고산성길과 남고사를 중심으로 이정란 장군을 모신 충경사, 조계종 초대 종정 효봉스님이 경치에 반해 이름을 지었다는 삼경사(三景寺), 삼국지의 관우를 모신 관성묘가 있다. 특히 충경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이정란의 공적을 기려 세운 사당이다. 전북특별자치도를 방어하는 제35보병사단의 부대명도 충경부대다.

고덕산 정상.
고덕산 정상.

 아름드리 솔향 진한 다양한 산행코스

 순수산행을 목적으로 한다면 고덕생활축구장에서 출발해 남고산, 또는 학산으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덕산엔 자태가 아름다운 명품소나무가 많다. 고덕산 정상까지는 약 1시간 30분가량 지긋하게 오르막이다. 전체적으로 굴참나무와 소나무에 가려서 시야는 막혀있다. 정상은 농구장처럼 넓고 헬기 착륙장이 있다. 무성한 잡목으로 인해 조망이 아쉽다. 오히려 북쪽 데크계단에서 탁 트인 전망이 기다리고 있다. 서쪽으로 모악산(795m)을 비롯해 북쪽으로는 미륵산(429m), 종남산(608m), 연석산(928m) 동쪽으로 마이산(686m), 성수산(876m) 까지도 보인다.

고덕산장 초입.
고덕산장 초입.

 남고산으로 가는 길에 ‘고덕산장’ 이정표 두 곳을 만난다. 첫 번째 이정표로 내려가면 지방도로 공사 현장과 만나므로 피하고, 두 번째 이정표는 고덕산을 오르는 최단거리 구간이다. 10분 거리에 ‘학산’ 이정표가 보인다. 풍수하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고덕산과 남고산으로 흘러내린 산자락이 학이 날개를 편 형국이기에 학산鶴山(360m)으로 부른다고 한다. 고덕산 능선 기준으로 오른쪽은 동서학동(東捿鶴洞), 왼쪽은 서서학동서(西捿鶴洞)으로 불린다. 일제강점기에는 서정(曙町)이라 불렀지만 광복 이후 서학동(捿鶴洞)을 동서로 나누어 부르고 있다. 학의 둥지를 닮았다는 학소암까지 연계 산행 가능하다.

조망바위.
조망바위.

 보광제 1.1km 이정표 갈림길에서 남고산을 가려면 오른쪽으로 꺽어야 한다. 왼쪽은 학산으로 빠지는 길이다. 오솔길 수준의 편안한 숲길 중간에 아기고래 모양의 바위를 지나면, 도보 여행객들을 위한 ‘도란도란 시나브로길’ 이정표가 있다. 왼쪽은 천경대, 심경사로 내려가게 되고, 오른쪽은 관성묘와 북장대, 억경대로 올라간다. 어느 쪽이나 기다란 성벽을 따라간다. 성벽을 걷는 것도 상당한 체력이 소모되지만, 달그락거리는 돌들이 고정이 되지 않아서 미끄럼에 주의해야 한다.

 남고산 정상인 북장대에 올라서면, 전주천 건너편 승암산에 붉은색 건물이 도드라져 보인다. 천주교 성지인 치명자산이다. 치명자산은 ‘목숨을 바친자’라는 뜻으로 유항검을 비롯한 일곱 분의 순교자들이 묻힌 전주의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중 하나다. 정면으로 보이는 전주 한옥촌은 전주 사람들의 자존심이 담겨있다. 1930년대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자 이에 대항해 자발적으로 몰려들면서 교동, 풍남동이 한옥촌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교동, 풍남동은 조선 왕실의 본향이다. 그 중앙에 자리잡은 경기전(慶基殿)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을 되뇌어 본다.

전주 고덕산 개념도.
전주 고덕산 개념도.

 ▲산행 길잡이

 고덕생활축구장-산불감시초소-남평문씨묘-고덕산-고덕산장 이정표-학산 이정표-보광재 이정표-고래바위-시나브로길 이정표-천경대-성벽길-삼경사-산성천 마실길-충경사(10km 5시간)

 ▲맛집(063)

 고덕생활축구장 옆에 있는 호림이네(285-4007)는 다슬기돌솥밥으로 유명하다. 전주향토전통음식점으로 지정될 만큼 고풍스러운 전통 한옥 외관을 하고 있다. 주인 김영순 씨는 전통다슬기명장으로 인정받은 명인이다. 담백한 밑반찬들은 약선음식을 먹는 것 같다. 다슬기돌솥밥 2만 원, 다슬기탕 2만 원, 묵은지닭볶음탕 8만 원.

 글·사진= 김희순 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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