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의 무대읽기] 연극 ‘The Father'
알츠하이머 걸린 노인의 마지막 시간 그린 심리극

연극 'TheFather'
연극 'TheFather'

 극단 ‘푸른연극마을’은 2024년 새해 첫 연극으로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Florian Zeller)의 ‘더 파더(The Father)’를 택했다. 1월 17일부터 ‘연바람 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플로리앙 젤레르는 현대 프랑스 희곡 작가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이고, 그의 ‘The Father’는 프랑스의 몰리에르상과 미국 토니상을 비롯하여 각국에서 연극에 관련한 여러 상을 받았다.

 젤레르는 ‘The Father’를 직접 각색하고 연출하여 영화로도 만들었는데, 제93회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앤서니 홉킨스)과 각색상을 받았다. 이뿐 아니라 유수한 영화제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영화 ‘The Father’가 워낙 유명하고 주인공 역을 맡았던 배우 앤서니 홉킨스의 연기가 훌륭해서 연극 무대를 보러 가기 망설여질 정도였지만, 소극장에서 이루어지는 ‘The Father’는 처음이고 무엇보다 극단 ‘푸른연극마을’이 창단 30주년 기념작으로 올린다는 것을 알고는 가지 않을 수 없었다.

 ‘The Father’의 배경은 파리다. 80세 노인 앙드레(오성완 분)는 몸이 불편하여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딸 안느(이당금 분)가 아버지를 만나러 주기적으로 온다. 그런데 갑자기 딸이 파리를 떠나겠다고 한다. 그리고 앙드레가 본인의 아파트라고 생각한 곳이 사실은 사위인 피에르(김영균 분)의 아파트라고 한다. 다른 장면에서는 다른 남자(김도현 분)가 자기를 피에르라고 주장한다. 앙드레는 기억을 이루는 두 중추인 시간과 공간에서 혼란을 겪는다. 사실 이곳은 어디이며, 딸과 사위는 정말 내 가족이 맞는가.

 연극 ‘The Father’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년 남자의 마지막 시간을 그 남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미스터리하게 꾸민 심리극 형식을 취하고 있다. 관객은 앙드레가 있는 공간과 시간을 앙드레의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기에, 그의 혼돈까지 같이 느낀다. 그래서인지 피에르라고 나왔던 배우가 아닌 다른 배우가 자기를 피에르라고 주장하는 장면에서 어떤 관객은 자신이 느끼는 심한 혼란을 직설적인 감탄사 형태로 내뱉기도 했다.

연극 'TheFather'
연극 'TheFather'

 ‘The Father’는 공간이 몹시 중요한 요소인 연극인데, ‘푸른연극마을’은 광주의 서양화가 한희원 씨와 함께 무대를 꾸몄다. 또 앙드레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작곡가 이상록 씨가 참여했고, 이상록은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다. 모노톤의 무대와 한희원이 직접 그린 그림 세 점, 그리고 라이브로 연주되는 피아노 선율이 익숙했던 공간과 시간을 잃어가는 한 알츠하이머 환자의 심리와 앙상블을 이룬다.

 이 작품의 백미(白眉)는 주인공 아버지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다. 이번 ‘푸른연극마을’의 ‘The Father’에서 아버지 역을 한 배우 오성완은 본인만의 ‘아버지’를 구축해냈다. 한국에서는 국립극단이 2016년에 이 작품을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올렸고, 그때 배우 박근형이 당시 76세의 나이로 아버지 역을 했다. 오성완은 박근형과 앤서니 홉킨스보다 훨씬 더 적은 나이임에도 80세 고령의 알츠하이머 환자 역을 그만의 방식으로 제대로 해내었다.

 모든 미스터리가 풀리는 마지막 부분에서, 엄마를 절규하며 울던 그가 웅크린 채 침대에 누울 때, 관객은 그를 관통하여 스러져가는 모든 시간과 공간, 그의 삶에, 결국은 한 인간의 삶,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삶에 연민과 사랑을 느낀다.

 극단 ‘푸른연극마을’이 창단 30주년 기념작으로 선정한 ‘더 파더(The Father)’는 오는 2월 3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딸 역으로 나오는 이당금 씨가 연출을 맡았는데, 중요한 배역을 연기하면서 연출까지 어떻게 했을까 싶은 우려가 있었다. 연극을 보고 나니 극단 ‘푸른연극마을’의 전 구성원과 외부 스태프들이 최선을 다해 연출을 보위했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