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렌즈·녹음기 동원 미행·채증
대기업의 법질서 유린 엄중 처벌해야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은 굶주린 어린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19년의 옥살이를 한다. 보통 엄정한 법질서 수립이란, 장발장의 행동을 유발한 사회를 성찰하기보다 가차 없이 법을 적용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우 법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통치를 위한 도구가 되기 쉽다. 가진 것이 많은 자들은 절박하게 법의 경계를 넘나들 일이 별로 없는 반면, 장발장처럼 없는 자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불법으로 간주되어 처벌된다.

 하지만 법질서를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자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노동자들을 막무가내로 쥐어짜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질서를 정립했다면 어땠을까. 한마디로 장발장이 빵을 훔칠 만큼 절박한 상황으로 몰리지 않도록 법질서를 세우는 방향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자들의 횡포로 인해 아등바등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면 장발장은 빵을 훔치지도 억울한 옥살이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법질서 확립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선인의 법질서는 누구를 위해서 어떤 식으로 집행될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이마트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고, 노조에 동조하는 직원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시도가 발각되었다. 노동조합 대응 문서가 폭로된 것이다. 이마트에서 벌어진 직원 사찰에 대한 박근혜 당선인의 대응은 그녀의 법질서가 누구를 위한 것이지 판가름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막무가내로 쥐어짜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노동자들 스스로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돈 있는 자들을 위한 질서 세우기가 아니라, 당선인의 약속대로 국민행복시대를 열기위한 법질서 세우기라면 이마트의 노동조합 활동 방해에 대한 엄정한 조치가 필요하다.

 이마트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살피면 주도면밀함에 감탄(?)하게 된다. 지난해 11월 이마트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하자, 동인천 지점에서 일하던 노조위원장을 하루아침에 광주로 전근시켰다. 그리고 곧 노조위원장이 해고되었는데, 이에 대한 동정여론이 우려되어 사측은 몇몇 관리자들에게 ‘잘릴만한 짓해서 잘렸다는 입소문을 내라’는 지침을 내려 휴게실 등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여론을 몰아갔다. 직원들을 한데 모아놓고 공지하듯이 전달하면 반발감이 생길까봐 휴게실 등에서 자연스럽게 여론을 형성하라고 할 정도로 지침이 세심하다.

 이뿐이 아니다. 노조 설립흐름이 확대될 것을 두려워한 이마트는 직원들의 주민번호와 같은 개인 신상정보를 활용해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홈페이지에 가입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노조에 관심을 가지거나 관계가 있는 직원을 색출해서 퇴사를 유도하기 위함이다. 홈페이지에 가입된 직원들은 자발적 퇴사를 유도하기 위해 일이 힘든 부서로 배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그리고 경기도의 이마트 협력업체에서 전태일평전이 발견되자, 불온서적 소지자를 색출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또한 이마트는 이 같은 일사불란한 지침을 넘어 망원 카메라와 녹음기 등의 장비를 동원하여 의심되는 직원을 미행하고 채증 하라고 지시한 문서가 계속 드러나는 상황이다.

 가히 사설정보기관을 방불케 하는 이마트의 직원사찰은 노조설립 방해로 악명을 떨치는 삼성의 노무관리와 매우 유사하다. 삼성이 노조를 설립하려는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심지어 납치에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마트를 경영하는 이명희 회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여동생이다. 남매가 소름끼치게 유사한 무노조 정책을 고수하고 있음을 이번 이마트 직원사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기업이 버젓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작태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모범이 되어야 할 대기업이 앞장서서 법질서를 흔드는 행위에 대해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국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기업들이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무시하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누가 법을 준수하려 할 것인가. 만약 당선인이 이번 일을 눈감아 솜방망이 처분을 내린다면, 당선인의 법질서란 가진 자들을 비호하기 위한 것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쥐어짜서 탐욕을 채우려는 것을 제한기는커녕 그들에게 무제한적인 자유를 주면서, 이러한 질서를 방해하는 자들에게 몽둥이를 가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질서는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국 가진 자들만의 질서를 견디지 못해 분노한 장발장과 같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선인은 레미제라블에서처럼 분노한 시민들의 노래에 포위될 일을 자초할 것인지 대기업의 횡포를 엄단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유미<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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