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90년대 중반 쯤으로 기억되는데, 일본의 지방자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함이었다. 15년도 더 지났지만 일본에 대한 깊은 인상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거리의 깨끗함과 일본 국민들의 친절함, 그리고 몸에 밴 검소함이 그 것이다. 도쿄와 오사카를 오가며 1주일 정도 머무르는 동안 거리에서 휴지조각이나 담배꽁초 같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리가도 고자이마쓰(감사합니다)”가 입에 붙어 있다시피 한 일본인들의 ‘친절문화’와 도시락 하나로 아침과 점심을 때우는 ‘검소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와는 역사적으로 늘 불편하지만 참 배울 점이 많은 나라로구나.” 일본에 대해 가졌던 첫번 째 정리된 생각이었다.

 한데, 이는 얼마 못 가 본래의 ‘가깝고도 먼나라’로 바뀌고 만다. 이유야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뿌리깊은 ‘반일감정’ 때문일 게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듯 그냥 싫어지는 나라가 우리 국민이 일본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정서일 터. 때로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 나아가 꼭 이겨야만 하는 경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다른 나라는 몰라도 일본한테만큼은 꼭 이겨줬으면 하는 게 우리국민 모두의 바람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가 아닌 다른 나라와 맞붙을 땐 솔직히 “일본이 졌으면”하는 마음, 다들 한 두 번 씩 가져봤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이런 정서는 곧잘 노여움과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36년 동안 주권을 찬탈하며 우리 국민들을 고통 속에서 살게 했던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의 말 한 마디 없는 그들에 대한 너무나도 당연한 감정이다. 시도 때도 없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고,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소녀들을 강제로 부려먹고도 단돈 99엔의 배상금으로 문제를 마무리하려는 ‘뻔뻔함’에 대한 민족적 공분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처럼 우리에게 늘 아픔과 상처를 안겨온 ‘미움의 대상’이었다.

 그 일본에서 사상 초유의 비극이 일어났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진도 9.0의 초강력 지진과 쓰나미가 도호쿠(東北) 지방을 강타한 것.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죽거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사람만 해도 2만여 명이 넘는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대재앙’ 위기는 일본인들을 공포 속에서 떨게 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겪는 이 참담한 비극은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가져왔던 그들에 대한 감정을 180도 바꿔놓았다. 맹목적인 적대감과 경쟁심, 시기심과 질투…. 이런 부정적인 단어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안타까움과 불쌍함, 연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한류스타’들의 기부행렬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을 돕자”는 성금 모금운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 등엔 “간바레 니혼(힘내라 일본)”이란 응원문구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이런 호의에 일본인들도 감동하고 있다. 일본 포털 게시판에는 “한국이 일본을 이렇게 생각해주다니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는 글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 번을 계기로 한·일 두 나라 사이에 ‘해빙 무드’가 조성되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요즘 분위기로만 보면 ‘가깝도 먼 나라’가 아닌 ‘이웃사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 국민들의 밑바닥 정서에는 여전히 일본에 대한 서운함같은 게 남아 있는 것같다. 무조건적인 일본돕기에 반감을 드러내는 목소리 또한 여전하기 때문이다.

 “전 국민적으로 과거사나 독도문제는 일단 뒤로 하고 인도적으로 우정을 나누고 있는 지금, 정말 처음 있는 따뜻한 날들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번 일에 아무리 마음이 아프고 일본인들을 보듬어 드린다 해도, 이 것과는 상관없이 독도나 동해문제는 계속 치열하게 제기해나갈 것이다. 이 번 일은 휴머니즘이고 독도는 팩트이기 때문이다.”

 온몸을 던져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일에 매달리고 있는 ‘기부천사’ 가수 김장훈이 쉽게 일본돕기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그의 이 마음이야말로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갖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아닐까?

오일종<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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