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은 성별·종교·장애·나이·사회적 신분·출신지역·출신 국가·출신 민족·용모 등 신체조건·혼인 여부·임신/출산·가족형태·상황·인종·피부색·양심과 사상·정치적 의견·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성적지향·성별정체성·학력·병력 등 헌법과 법률이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작년 12월 서울 시민인권헌장 공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그 문제의 조항이다. 이 자리에 동성애 반대 단체들, 특정 기독교 단체들이 ‘동성애 OUT’, ‘에이즈 OUT’, ‘동성애는 죄악이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왔다. 시민인권헌장의 조항 중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라는 내용이 “동성애를 합법화시키며 동성애를 조장하는 의도로 적힌 것 아니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서울인권헌장을 난장판 만든 사회

 이번 서울 시민인권헌장을 계기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단체들의 온갖 이목이 이 인권에 쏠린 모양이다. 한참 전인 2012년 5월에 제정되었던 광주시인권헌장·광주학생인권조례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던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내용을 삭제하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 “차별할 권리를 차별하지 말라”라며 무산되었던 차별금지법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특정 기독교 단체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동성애는 에이즈를 전염시키는 것이고, 혹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확산시킨다는 생각에 신랄한 비난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말이다. 물론 동성애를 반대하는 세력의 중심에는 기독교 단체들이 이런 사회적 차별을 유지시키는데 한몫하고 있긴 하지만, 문제는 이런 단체들 뿐 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은연중에 이 차별의 고리들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전남대학교에 성소수자 동아리 ‘Lights on me’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설동아리임에도 불구하고 과분할 정도로 많은 관심 속에 이들은 조용히 활동을 유지해 나가는 듯하다. 전남대학교 커뮤니티에서 이 동아리의 존재는 학우들에게 동성애 ‘찬반’ 토론의 장을 마련해주었다. 차라리 “동성애가 역겹다”, “동성애를 하느니 토를 먹는 게 낫겠다”와 같이 노골적이고 혐오어린 비난뿐이라면 무시하고 말았을 테다. 그러나 안타까웠던 것은 “동성애를 인정하고 이해한다” 혹은 “동성애는 이성애와 다를 것 없다” 등의 생각들이었다.



양극으로 가를 수 없는 성정체성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성적지향이나 성정체성은 선택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여러 학계에서도 이 가설이 우세하고 있다고 한다.) 덧붙이면 인간은 양극으로 가를 수 없는 개개인 고유의 성정체성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애와 동성애 중 하나의 선택지를 골라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한 예를 들어 말하자면 A라는 사람은 동성애적 기질은 10%, 이성애적 기질을 90% 갖고 태어나고, B라는 사람은 동성애적 기질은 70%, 이성애적 기질을 30% 갖고 태어난다. 이를 A는 이성애자이고, B는 동성애자라고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것은 매우 억지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흔히 동성애라고 분류되는 개개인의 성적 지향에 ‘인정’, 혹은 ‘관대’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우리가 “이성애를 인정하자.”, 혹은 “눈이 내리는 것을 인정하자.”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이는 인정하거나 동정하는 문제를 훨씬 뛰어 넘는 매우 자연적인 존재이다.

 또한 동성애에 빈번하게 노출되면 동성애자가 된다는 동성애 반대 단체의 주장 역시도 성적지향 혹은 성정체성은 선택이 아니라 선천적이라는 주장으로 타파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이성애자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동성애자들은 손쉽게 이성애자로 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다는 말 아닌가? 차별받는 삶이 보장된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는 것을 굳이 선택할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성소수자는 다르다’에서 출발

 2015년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물론 과거에 비하면 성소수자에 대한 논의가 훨씬 활발히 제약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벽장을 뛰쳐나와 자신들을 드러내는 성소수자들도 훨씬 많아졌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가 아닌 척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의 다름을 감추고 주류 세력들이 주장하는 “올바르고 건전한” 것과 같아 보이려고, 심지어 같아지려고 노력한다. 이런 사회가 정녕 올바르고 건전한 사회일까? 그 누구도 정확히 모르는 이 “올바르고 건전함”은 오히려 차별을 용인하는 사회를 만든다.

 이제 성소수자들이 이성애자들과 다르지 않은 인간이며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지겨울 지경이다. 차이를 기반으로 한 이성애자와 성소수자 간의 권력관계를 해소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모든 문제를 덮어버리는 이런 담론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 이 ‘차이’에 집중할 때이다. 성소수자는 당연히 다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단지 그 ‘다름’이라는 것이 차별과 폭력의 기제가 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진짜 올바른 사회는 누구와도 똑같을 수 없는, 너무나도 다른 우리들이 같아지라고 억압받지 않고, 그리고 다름을 감추지 않고 단지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아닐까?

김동영 <전남대 용봉교지편집위원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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