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산 아래 본량동을 찾았다. 수년 간 광주를 중심으로 지역 현장을 답사해온 ‘잇다’가 하고 있는 모임에서 년간 주제로 정한 ‘도시의 혈’ 답사의 196회차 마무리 답사길이었다.

 토요일 아침, 오랜만에 눈이 온 뒤라 들판을 쓸고 온 바람결이 품은 한기가 만만치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마을의 원형질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그 자취를 전하고 있는 본량동 답사길은, 최근 본량동을 샅샅이 훑어봤던 상상창작소 봄 김정현씨의 길라잡이로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주민센터에서 모여 능동 산음마을의 당산과 연자방아를 보고, 탑동마을의 절터와 솔숲, 평택임씨 제실인 봉산재를 둘러보았다. 이어 용진동천 용진정사에서 후석 오준선 선생의 자취를 찾아보고, 명곡동천 명곡마을에서 마을숲, 돌담길을 거닐어 보고, 석문동천 산자락 길을 더듬어 올라 빙설당에 들러 한말 의병장 전해석의 흐트러짐이 없었던 결기와 굳건하셨던 의기를 다시금 돌아보았다.
 
▲본량동 답사 제대로 하려면 2박3일

 본량동 답사는 제대로 하려면 2박3일 정도가 필요하다는 길라잡이의 말이 맞았다. 하루에 둘러보기에는 턱이 없는 시간이었다. 다시 한 번 더, 참가자들은 쉬엄쉬엄 걸으면서 재답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가 둘러본 마을 말고도 길라잡이가 추천한 마을들은 공동체의 자취들이 넘쳐났다.

 남동마을의 만취정, 남동영당, 동호사, 송천 양응정묘와 본촌마을의 당산나무와 들돌과 호은정, 상흑·하흑 마을의 마을모정과 저수지와 율수재, 매동마을의 매동사, 입석마을의 입석, 본량초교의 나무들, 황산마을의 입석과 당산나무, 북성마을의 창녕조씨삼강지려, 가마마을의 옛 마을창고와 오성술 의병장의 순절비, 양곡마을의 국가대표 탁구선수였던 김택수의 기념물, 신촌마을의 당산나무와 대동사, 그리고 오래된 우물과 충현각, 월산마을의 동인약방, 원당마을의 오자치 원당영각, 그리고 오성술, 오상열 의병장, 작림 금곡마을과 금동마을의 당산나무와 입석 등 본량동은 품속이 참 넓고도 깊었다. 광주에서 공동체에 관심 있는 이라면, 그 원형질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볼 만 해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한 마음을 내어 찾아올 연구자들에게 비쳐질 본량동의 터가 품고 있는 무늬의 보배로운 가치는 무궁무진할 것 같았다. 각각의 마을이 간직한 이야기들을 미처 다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접고, 답사 동안 꽁꽁 얼었던 몸을 녹이며 청국장 먹으면서 했던 연찬회 자리에서 참석자들이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했던 소회들을 내놓았다.

 본량동은 3개의 동천이 있는 지역이다. 용진동천(聳珍洞天), 명곡동천(明谷洞天), 석문동천(石門洞天) 등 용진산과 기름진 들판과 황룡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산골짜기 마을이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 한 곳이었다는 반증이 아니었을까.
 
▲용진동천·명곡동천·석문동천…

 결국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하늘과 사람과 산과 들과 냇물들이 활짝 열려서 조화롭게 통하는 삶의 터전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고, 그런 자긍심이 ‘동천’이라 한 그 바탕이었지 않겠느냐는 깊은 대화들이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예산이 더해지고 있는 광주의 도시재생 관련 사업들도, 옛 사람들의 혜안을 찾아볼 필요도 있겠다는 이야기도 보태졌다. 결국 자기 안의 자긍심이 없으면 알맹이 없는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이 될 수도 있을 거란 말씀들에 모두들 수긍했다.

 우리 안의 환한 햇살과 청량한 바람과 넉넉한 인심이 살아있는 명당도 스스로 중심이 되는 철학과 자긍심이 없다면 한 세대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고, 지속가능하지 못한 흉물스런 쓰레기 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하여 들판의 곡식도, 사람들도 모두 다 편안하던 그 마을들이 도시 안에서 이그러지고 찌그러진 삶을 살아내느라 왜곡이 되었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 원점이 본량동이 아닐까 싶다는 이야기에 공감했다.

 소우주라고 하는 인간처럼, 마을과 도시도 눈과 코와 귀와 입을 대입하여 박토에 터를 내렸어도 비보막이를 통해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동천’을 구현하려 애쓰셨던 옛 어르신들의 슬기를 배워야 될 때이다. 눈도 귀도 코도 입도 없이 살아왔던 도시에 다시 이목구비를 찾아주는 멀리보고 길게 보는 도시의 회복의 큰 그림이 광주에서 그려졌으면 좋겠다.

 올해는 지역을 잘 이끌 리더들을 잘 뽑아야 한다. 광주를 이끌어 보겠다는 이들의 출사표 속에 무엇이 보이나 잘 살펴보고, 혹여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된 공약에 대해 시민들은 머슴들의 주인으로서 제 몫을 다해야 한다. 이는 단지 도시재생만이 아니다.

 당대의 시민들과 미래세대들이 살아야 될 광주는, 닥쳐올 여러 가지 위기를 견뎌낼 시스템을 차근차근 갖춰나가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도시가 될 것이다.
 
▲끊임없이 반복을 통한 실천

 현장에서 이런저런 다양한 고민들이 펼쳐지고 수렴되는 ‘미래를 위한 발걸음-잇다’ 답사모임은 참 귀한 인문학적 교육의 장이다. 이 모임에서 대장님으로 불리고 계신 모닥 최봉익 선생님이 새벽잠을 물리며 새겨 와서 매번 답사 참여자들에게 돌리신 판화를 다시 펴 본다.

 당신의 말씀대로 인문학적인 공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긍심과 정(正), 반(反), 합(合)과 계(計), 실(實), 평(評). 다시 정, 반, 합과 계, 실, 평…. 끊임없는 반복을 통한 실천이 동반해야 진정 광주스러운 해법과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살만한, 살고 싶은 지속가능한 공동체는, 당신이 새겨서 전해주셨던 판화 속의 ‘목계지덕(木鷄之德)의 묵묵한 실행력이 함께해야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이루어지리라.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자.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 할 줄도 알고, 호랑이처럼 용맹스워라. 이것이 목계지덕의 삶이니라.”

 이번에는 이런 뜻에 공감하고 당당하게 실현할 후덕하고 뚝심 있는 도시의 리더를 잘 골라 보자. 그래야 광주가 시민들 속에 희망이 살아있는 도시, 청량한 바람길과 맑은 물길이 돌고 햇살이 가득 넘치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김경일<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총장>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