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공룡’ 맞서 단합해 싸운 지역 상인들
골목상권선 `서로 가해자·피해자’된 현실 직면

▲ 북구 매곡동의 한 주택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지역 중소형 할인마트가 마주보고 있다.
 지역 상권 내부의 갈등이 곪아가고 있다. 같은 지역 상인이지만, 서로 경쟁을 해 강자가 약자를 굴복시키는 구조다. 그 안에서 크고 시설 좋은 마트가 작은 마트를 밀어내면, 그 자리에 더 크고, 가격이 싼 할인마트가 들어서 또 누군가는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럼에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누구도 지역 상권 내부의 상생 방안을 찾자고 얘기하지 못했다.‘대형마트·SSM(기업형 슈퍼마켓)’을 막아야 한다는 더 시급한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계속 외면할 수 없는 것도 현실. 최근 “모두가 다 잘 살기 위해선 대기업 규제에 앞서 지역 상인들부터 상생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기업 대형유통업체의 무분별한 입점이 지역 상권을 위협하고 있다지만, 지역 내부에도 상생을 위협하는 요소는 많다. 지역 기반 프랜차이즈 중소형 할인마트가 우후죽순 개장하면서 지역 상인들이 ‘제 살 깍아먹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본보는 최근 주택과 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는 북구 우산동 일대를 둘러봤다. 반경 1km 안에 ‘가격 파괴 최저 할인점’이라 자부하는 중소형 할인마트(대규모 점포 기준인 3000㎡ 미만)가 10곳이 넘었다. 이 중에는 농협 하나로마트 외에 한두레·텃밭·웰빙 등 지역의 체인 할인점도 있고, 중소기업청에서 운영하는 ‘나들가게’도 있었다.

 물론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슈퍼도 있다. 이 슈퍼 주인 국모 씨는 “8년 전 슈퍼를 열었을 땐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주변에 큰 할인마트가 13개가 넘는다”며 “우리 같은 동네 슈퍼는 하루 2만 원도 벌기 힘들다”고 말했다. 국 씨의 슈퍼에서 10m 떨어진 곳에 있는 A마트. 이곳은 중기청 ‘나들가게’로 지정된 곳이었지만, 체인형 지역 할인마트들에 밀려 영업난을 겪고 있었다. 주인 유모 씨는 “옛날엔 대형마트가 문제였는데, 이제는 SM·텃밭·영암마트 같은 (지역) 할인마트가 너무 늘어나 힘들다”며 “그런 마트가 대형마트처럼 주문 배달 서비스도 하고, 가격도 워낙 싸다보니 영세한 슈퍼는 경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유 씨의 슈퍼에서 파는 식사용 시리얼은 600g에 3800원이었지만, 50m 떨어진 곳의 한 중형 할인마트에서는 3300원에 판매했다. 유 씨는 “물건 들여올 때 도매가가 3500원인데, 그것보다 싼 것”이라며 혀를 찼다. 이어 “저 슈퍼(국 씨의 슈퍼)가 먼저 망하고, 다음엔 내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상인단체 등에 따르면, 지역 내 슈퍼는 2000여 개가 넘는다. 이 중 지역 기반 프랜차이즈 중소형마트(3000㎡ 미만)는 500여 곳이며, 이 중 중형마트(660㎡~3000㎡)는 110여 곳으로 영암마트 55곳을 포함해 텃밭 8곳, SM마트 32곳, 한두레마트 12곳, 대기업 상품공급점 9곳 등이 영업중에 있다. 소형마트(660㎡미만)는 1400여 곳이 넘는다. 이 중 일부 프랜차이즈 마트는 광주뿐 아니라 수도권에도 입점을 추진할 정도로 점포 확산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와 관련, 광주지역 한 상인단체 관계자는 “대형마트·SSM의 입점 반대를 위해 업종에 상관 없이 모두가 힘을 모으고는 있지만, 내부적으로 서로에 대한 불만이나 입장차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대형마트와 SSM이 상권을 위협한다”며 상생하자고 외치는 이들에게 전통시장 상인들과 작은 동네 슈퍼 상인들은 오히려 “난립하는 지역 중소형 할인마트가 골목상권을 위협한다”고 반격하는 셈.

 사실 지역 중소형 할인마트의 성장은 대형마트·SSM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지역 상인들은 대기업에 밀리지 않기 위해 크게 고민했고, 가격을 낮추기 위한 유통체계와 브랜드도 만들었다. 경우에 따라선 빚을 내서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매장, 인테리어, 시스템을 갖췄다. 이를 고려할 때 지역 중소형 할인마트의 성장을 무작정 비판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이 골목 상권에서 ‘작은 공룡’이 돼 더 영세한 상인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폐해다.

 하지만 누구도 이같은 문제를 당당하게 제기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상인단체의 주축이 중소형 할인마트 업주다보니 “당신 때문에 가게 문 닫은 사람이 있는데 그런 말할 입장이 되느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지역 상인들 내부의 갈등을 해결할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일부에선 “지역 프랜차이즈 중소형 할인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누군가에게 기회를 박탈할 여지가 크다”는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이야 독점하지 마라고 막을 순 있지만, 지역 상인들에게 `당신은 크면 안돼’ `영세하게만 있어’라고 할 수 있냐”는 것. “지역 중소형 할인마트를 규제하더라도 그 자리엔 다른 업종이나 다른 형태의 매장이 입점해 결국 누군가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먹이사슬구조’가 반복될 것이다”며 규제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김용재 중소상인살리기광주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10년 넘게 지역 상권 보호를 위해 활동해왔지만, 지역 내부의 상생 방안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렵고, 개인적으로 `벽에 부딪힌 느낌’까지 든다”며 “지역에서 무력하게 `자제합시다’ `서로 상생합시다’고 말은 할 수 있어도, 시장경제 논리 안에서 현실적인 해법을 찾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 문제가 과포화된 자영업시장에 모두 내몰려 생긴 것인만큼, 국가 차원의 고용시장의 안정, 질적 성장이 필요해 보인다”며 “사람들이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어쩔 수 없이 자영업시장에 밀려 들어가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일부에선 “지역 사회가 함께 내부의 상생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관련, 정현오 광주자영업연대 준비위원장은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지역 내 상생을 위한 고민을 미뤄둘 수 없는 것 같다”며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고민조차 않는다면, 그 문제는 영영 풀 수 없을지 모른다. 당장 뚜렷한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모두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글·사진=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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