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서점’ 딸 `커피유림’ 연 이유

▲ `커피 유림’의 커피를 맛보려면 3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커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유수진 씨.
▶핸드드립 커피·헌 책 `공존’ 소망

 광주 계림동 헌책방 골목 한 가운데,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법한 ‘카페’ 하나가 있다. ‘커피유림’이라는 우리말이 또렷하게 적힌 손 그림 간판부터 범상치 않아 보인다.

 ‘커피유림’의 주인 유수진(37) 씨는 바로 옆에 위치한 헌책방 ‘유림서점’ 주인부부의 딸이다. 지난 2월 유 씨는 ‘유림서점’의 창고를 커피 향 가득한 카페로 탈바꿈시켰다. 그래서일까. 오후 6시 반, 커피유림에 불이 켜지면 고소한 커피 향과 함께 오래된 책 냄새가 흘러나온다.

 한가로운 오후, 기습 방문한 커피유림에서 헌책들과 씨름 중인 유 씨를 만났다. 보통 저녁 6시 반 이후 카페 문이 열리지만 그날은 다소 이른 시각이었다. 이미 헌책방의 책들이 카페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나, 아직도 정리할 책들이 있는 듯 했다. 유 씨는 ‘커피유림’에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할 채비에 한창이다.

 

▶아버지 책방 창고를 빌리다

 

 “사실 저는 운이 좋아요.”

 헌책방을 겸해 카페를 차린 유 씨의 의중을 알고 싶었던 터에 간단명료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데, 꽃씨를 심을 땅과 태양, 물, 바람이 모두 필요한 것처럼 유 씨의 ‘커피유림’은 운까지도 맞아 떨어져 피어난 공간이다.

 “오래전부터 커피를 좋아했어요. 10년 동안 커피사랑을 이어오다 보니 저만의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헌책방 옆 창고로 남아있는 공간이 떠올랐죠. 부모님이 흔쾌히 장소를 제공해 주셨고, 저처럼 커피를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1년 전부터 계획해 차근차근 준비해 왔습니다. 바로 이 터전이 기회가 된 셈이죠. 더불어 부모님 가게의 헌책들까지 위탁판매 하게 됐네요.”

 그림을 전공하고 미술 강사로 10년을 일 해온 유 씨, 아직 하던 일이 남아 있어 ‘커피유림’에 온전히 시간을 바치지 못하지만 직장인인 남편 채수석(39) 씨와 함께 저녁이면 커피 손님들을 맞이한다. 지금은 보통 저녁 6시 반부터 11시까지 문을 열고, 하루 열 명 정도의 손님들과 만난다. 문을 연지 두 달도 안 된 ‘커피유림’이지만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커피’로 벌써 입소문을 타고 있다.

 

▶커피 기다리는 동안 추억의 책 찾기

 

 “조금 오래 기다리셔야 돼요. 한 3분 정도.”

 시간을 재는 스톱워치를 옆에 두고 손수 커피를 내릴 준비를 하는 유 씨가 다소 미안한 듯 말한다. 버튼만 누르면 커피 한 잔이 ‘뚝딱’ 나오는 세상에서 커피를 내리는 ‘3분’은 결코 짧지 않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인 커피 맛은 확실히 무언가 달라도 다르다.

 “커피가 식지 않으려면 우선 컵을 데우고 볶은 커피 가루를 끓인 물로 천천히 우려내요.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바로 이 시간 때문에 커피 맛이 제대로 우러나오죠. 그리고 이렇게나 책이 많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커피 내리는 동안 손님들은 추억의 책 찾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세요.”

 책장을 둘러보다 자신만의 추억이 깃든 헌책들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머무르는 손님들, 아예 자리를 잡고 독서삼매경에 빠진다고. 마저 읽지 못한 책들은 구입해가기도 한다. 그렇게 유 씨는 부모님의 헌책방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부모님도 그렇지만 헌책방 주인 분들 나이가 많이 드셨고, 이곳의 헌책방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저희 어머니도 ‘커피유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으세요. 평생의 절반을 바친 헌책들에 대한 애정이죠. 수시로 저희 가게에 들락날락 하시면서 많은 관심을 쏟으시는 것을 보면 그 애틋함이 더욱 느껴집니다.”

 

▶부모님 헌책방 인생을 잇다

 

 유 씨도 어머니 못지않게 ‘커피유림’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인생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핸드드립커피는 커피를 볶는 사람, 내리는 사람에 따라 맛이 확연히 달라져요. 다르기 때문에 매력이 있는거죠. 서로 다른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커피만큼 매력적이에요. 그러니 즐기지 않을 수 없네요. 제가 즐거운 만큼 누구에게나 ‘즐거운 커피유림’을 만들고 싶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우연히 메뉴판을 올려다보니 입가에 ‘스르륵’ 웃음이 번진다. ‘커피 3500원, 우유넣은 커피 4000원’이 단촐 하게 적혀있다. ‘라떼’라는 흔한 표현을 두고 ‘우유넣은’이라는 소박한 표현을 고집한 주인의 센스가 많은 손님들을 즐겁게 했으리라. ‘커피유림’의 즐거움은 핸드드립커피처럼 천천히 스며들어 퍼지는 것이었다.

 “다양한 직업,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일을 끝마치시고 이곳에 오세요. 처음에는 혼자 오시고, 둘이 오시다가 얼굴이 익으면 모두 같이 어우러져서 이야기꽃을 피우시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해요. 처음 본 사람들도 한 공간을 공유하면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커피유림’이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사랑방’ 구실을 한다고 말하는 유 씨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 설렘이 가득하다.

 ‘커피유림, 세월이 묻어있는 중고 책들과 함께 커피를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 카페 유리창에 적힌 문구다. 유 씨가 꿈꾸는 ‘커피유림’이 사람이 그리운 헌책방 골목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글·사진=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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