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서울 여행에 나선 중증장애인 장익선 씨가 인공호흡기 거치대를 위해 맞춤 제작한 와상용 수동 휠체어를 타고 동반한 활동보조인 두 명과 청계천을 둘러보고 있다.<장익선 씨 제공>
-장익선 씨 "움직일 수 있는 신체는 없지만…
-의미 있는 일로 인생 채우고 싶어”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시간이 중요하지만, 저 같은 근육장애인에게 시간은 더 빨리 가거든요.”

 근육장애인 장익선 씨는 신체 중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이 거의 없다. 장 씨가 예상하는 수명은 길어봐야 40년. 하지만 스물아홉 그는 절망 속에서 생을 할애하는 대신, 하고 싶은 일들을 이뤄가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삶의 의미를 더해줄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그 중 하나가 ‘서울 사는 친구들 만나러 가기’다. 광주시의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24시간 지원’ 서비스를 이용해 지난 12일부터 1박2일의 서울 일정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장 씨를 20일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장 씨는 호흡을 돕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대화 중간 중간 숨을 고르거나 가래를 뱉어내야 했지만, 이는 장 씨가 여행의 기억을 전하는 데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장 씨는 누운 상태로 눈을 맞추고 차분히 대화를 이어가다 설명에 도움을 줄 자료가 있다 싶으면, 한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작동해 SNS에서 사진 등을 전송해 주었다.

 

 63빌딩-광화문-서울시청까지 

 “근육장애인 친구들과는 보통 SNS를 통해 소통을 하는데, 대부분 서울에 살고 있어요.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밥도 먹고 싶었거든요. 서울에 올라가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친구들을 만난 거예요.”

 장 씨는 근육장애인들의 청년모임인 `청년 디딤돌’의 회장을 맡았을 만큼 사교적이고 사람들을 좋아한다. 이번 여행의 첫 일정도 친구들과 함께였다. SNS 단체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누던 근육장애인 친구 3명이 장 씨를 보러 용산역으로 찾아와 주었다.

 “채팅방에서 거의 매일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어요. 같이 밥도 먹었고요. 선뜻 시간을 내준 친구들에게 정말 고마워요.”

 6개월 만에 얼굴을 마주한 친구들과의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장 씨는 또 다른 지인을 만나기 전 서울의 명소인 63빌딩에 들렀다. 장 씨와 동행한 활동보조인들의 의견을 참고해 아쿠아리움 등을 보기 위해서였다.

 “물개가 기억에 남아요. 생긴 게 귀엽기도 했고, 활발하게 헤엄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자유롭게 유영을 하더라고요.”

 물개처럼 자유롭지 못하지만, 보고 싶은 사람을 보러 갈 수 있으니 장 씨에게 물개는 부러운 대상이 아닐 터. 장 씨는 63빌딩에서 나와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형” 이범구 씨 집으로 이동했다. 하룻밤 이 씨 집에서 머물기로 한 것이다. 이동은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그를 이끌어” 

 “범구 형은 저랑 많이 닮았어요.”

 이 씨 역시 장 씨처럼 근육장애인 활동가로 지난 12월 한 달간 서울시에 `24시간 활동보조’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이 씨는 24시간 지원을 받게 됐지만, 겨울 추위를 온 몸으로 견디다 폐렴을 앓게 됐다.

 초중증장애라는 커다란 짐을 안고 있으면서도 희망을 품고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 씨와 이 씨, 둘은 많이 닮아 보였다.

 다음 날 장 씨의 일정은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서울 중심가에서 이어졌다. 한국근육장애인협회 광주지회 부회장이기도 한 장 씨는 서울협회 사무실을 찾았는데, 마침 사무실이 인사동에 있었던 것. 장 씨는 협회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인사동 쌈지길 투어에 나섰다.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런 구경거리들을 보러 다닌 적이 없어서 두 눈이 정말 즐거웠어요. 그런데 하필 그곳이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더라고요“ 동행한 형들도 솔로여서 다 같이 입을 모아 말했어요. `아이고, 의미 없다’며.”

 장 씨와 지인들은 쌈지길에서 벗어나 드넓은 광화문광장으로 직행, 티브이에서만 보던 세종대왕 동상의 내부에 들어가 차를 마시고, 이어 청계천과 서울시청까지 들렀다. 다소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셈이 됐지만, 장 씨의 서울여행은 대만족.

 “지인들 덕분에 서울여행을 알차게 마칠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멀리 살고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게 가장 좋았고요. 평소에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갈 일이 없는데, 사람구경을 해서 좋았어요.”

 

“집에나 있지!” 우리사회 불편한 시선들 

 장 씨가 여행을 결심한 데에는 여행에 대한 갈증도 있었지만,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사람과 사람 사이 오감으로 대면하는 자리에서는 온라인상에서는 다 충족되지 않는 끈끈한 유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먼저 다가가고 이야기하는 성격이에요. 그런데 그런 기회가 적다보니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해요.”

 근육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SNS 상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공유하는 까닭도 사람들 속에서 평등한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에 대한, 특히 중증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하죠. 호흡 보조기구를 달고 있다고 해서 큰 병을 앓고 있는 `환자’로 보고, `집에나 있지 왜 나왔냐’는 말과 시선을 던지는 분들이 많아요. 장애를 갖고 있어도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은 한 인간일 뿐인데 말이에요.”

 장 씨는 또 다시 여행할 기회가 되면 제주도를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돌보면서 생계를 이어가느라 여행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한 부모님과 바닷바람을 쐬고 싶다고. 그가 꿈꿔온 버킷리스트가 어느덧 추억으로 물들어 가는 중이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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