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지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독감(AI)으로 현재 약 3300만 마리 이상의 동물들이 살처분되고 직간접적인 경제적 피해도 2조 원에 달하는 등 역대 최악의 피해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동물보호연합이 근본인 대책 마련을 요구, 9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동물보호연합은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생매장' 살처분의 중단 및 살처분 방법의 공개 △'예방적' 살처분 중단 및 링(Ring)백신의 사용 △'기계적' 전파 방지 및 방역체계 강화 △농가당 사육 '총량제' 도입 △사육 농가 '거리 제한제' 도입 △겨울철 가금류 사육 '휴업보상제'(휴지기제) 도입 △'계열화' 기업의 방역책임 강화 △상시 예방 '백신' 제도의 도입 △'감금틀' 사육 폐지 및 '동물복지' 확대 실시 등 9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동물보호연합은 “아직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특히 산란계의 경우 닭들을 마대자루에 담아 산채로 땅속에 묻는 잔인하고 끔찍한 불법 '생매장'(生埋葬) 살처분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법과 매뉴얼(SOP)의 내용대로 이산화탄소(CO2)가스나 질소(N2)가스 거품 등을 이용해 '안락사' 처리할 수 있도록 전문 인력과 장비, 시설을 마련하여 실시해야 하며 지자체에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살처분하고 있는 지의 내용을 국민에게 공개하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물보호연합은 “국내에서는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발생 농가 반경 500m 심지어는 3㎞ 내의 동물들을 감염여부와 상관없이 '예방적'(豫防的)이라는 이름으로 '싹쓸이' 살처분하고 있다”면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된 해당 농가만이 살처분의 대상이 되고, 나머지 인근 지역은 철저한 이동제한, 이동중지 명령 등 차단 방역조치를 강화하고 3km와 10km 내의 지역은 '링'(Ring) 백신을 놓아 조류독감이 외부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동물보호연합은 “국내 조류독감 전파 감염의 90% 이상이 사람과 차량 이동 등 '기계적', '수평적' 전파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면서 기계적 전파를 막기 위한 방역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가당 사육 '총량제' 도입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국내 양계 농장은 전형적인 공장식 밀집 사육 형태로 가구당 평균 5만 4000 마리의 닭들을 사육하고 있는데 이러한 대형화, 집중화 추세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좁은 철사케이지에 빽빽이 차있는 닭들은 조류독감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

동물보호연합에 따르면 알낳는 산란계 닭 농가에서는 철사로 만든 닭장을 최고 12단까지 쌓아올려 키우며, 이런 방식으로 최대 50만 마리까지 닭을 키우다 보니 한 농가에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퍼지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동물보호연합은 “국내 닭, 오리 농가당 사육 마릿 수를 제한하는 사육 총량제를 도입하여 대규모 살처분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육 농가 '거리 제한제'도 제시됐다. 좁은 지역에 가금류 사육농가가 고도로 밀집되어 있어 조류독감의 연쇄적인 피해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

실제로 2016년 11월 H5N6형 조류독감 바이러스로 수많은 닭과 오리들을 살처분한 충북 음성, 진천, 충남 아산, 경기도 이천과 포천 등은 발생 농가 반경 3km 이내에 수십에서 수백개의 농가가 고도로 밀집되어 있다.

겨울철 사육 '휴업' 보상제' 필요성도 제기됐다.

동물보호연합은 “사육 농가들은 매년 겨울철에 발생하는 조류독감을 걱정해 가금류 사육을 포기하고 싶지만, 슈퍼 '갑'(甲)인 기업으로부터 받을 불이익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겨울 사육에 나서고 있다”면서 “실제로 사육 농민 A씨는 ‘조류독감이 걱정돼 겨울철에 오리 사육을 하지 않겠다고 업체에 말했더니, 내년 봄에 오리 새끼를 제때 공급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마광하 한국오리협회 광주 전남지회장은 “철새가 도래하는 겨울철에는 닭·오리 농장에 한해 순서를 정해 농장 휴업을 하도록 휴업보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가금류 사육 '휴업보상제’(겨울철 가금류 사육 휴지기제)란 정부가 가을철 미리 도축한 닭·오리고기를 비축한 뒤 철새도래지, 집단사육지, 중복발생지 등에서 겨울철에 닭·오리 사육을 중단하게 하는 제도로, 정부는 농가 사육중단 따른 보상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경기도 안성의 경우, 닭과 오리에 대해 사육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다.

'계열화' 기업의 방역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동물보호연합에 따르면 2010년 축산법에서 대기업 축산업 참여 제한 규정이 삭제된 이후, 공장식 밀집 사육 방식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2015년 12월 기준으로 육계 농가의 91.4%, 오리 농가의 92.4%가 하림, 동우, 올품 등과 같은 수직 '계열화'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축산 대기업이 각 농가에 병아리와 사료, 약품 등을 공급하고 위탁 사육하는 형태이며 사육농가는 기업으로부터 병아리와 사료, 약품을 공급받아 40일쯤 키운 후 마리당 사육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또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현재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보상금 분담률은 8대 2이며 그러한 조류독감 보상비의 80% 이상을 기업이 가져가고 있다.

동물보호연합은 “농가들은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몇개월 동안 병아리를 받지 못해 개점휴업 상태에 빠질 뿐 아니라, 축사 난방비, 인건비, 톱밥 구입비 등은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이 농가가 모두 떠안게 되어 살처분 보상금을 받아도 적자에 시달리는 등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계열화 기업들은 별다른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라면서 “기업에게 방역 책임을 강화하고 '가축전염병예방계획' 등을 수립하여 제출하도록 하며 '방역세' 등을 부과하여 그 재원을 조류독감 보상비 등에 사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살처분 대신 상시적 예방 백신 제도 도입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동물보호연합은 “조류독감 백신을 사용하는 나라들은 우리나라처럼 조류독감 대량 살처분하는 일이 없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조류독감이 발생한 지가 13년이 넘었지만, 조류독감 전담 기구나 전담 연구소도 없고 방역당국은 백신 사용과 관련한 매뉴얼이나 기준도 전혀 없다”면서 “조류독감 예방 백신은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동물보호연합은 '감금틀' 사육 폐지 및 '동물복지'를 확대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일반 양계장에서의 알 낳는 닭(산란계)들은 작은 닭장 케이지안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걷지도 못하고 날개도 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며 산란계 1마리의 사육 평균 면적이 A4 용지(0.062㎡) 한 장도 되지 않는 0.04㎡(20cmx20cm)이다.

동물보호연합은 “이러한 '감금틀' 사육은 동물들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심각한 스트레스 및 면역력 저하 등을 불러와 결과적으로 동물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보호연합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6년 12월까지 조류독감 발생 건수의 경우 한국 112건, 중국 130건, 일본 32건이다. 그리고 같은 기간 유럽에서 발생한 조류독감 건수는 영국은 3건, 독일은 8건, 스웨덴은 1건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의 동물복지 사육 비율은 영국 48%, 독일 89%, 스웨덴 78%이다.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에서는 아예 2012년부터 모든 산란계 농가에 대해 '감금틀'(배터리 케이지, Battery Cage) 사육을 금지하고 있다.

동물보호연합은 “조류독감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케이지 감금 사육과 공장식 축산의 폐기와 농장식 축산, 그리고 동물복지 산업으로의 구조 개혁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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