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뻔한 폐해
그러나, 탈출 못하는 인간들

▲ 연극 ‘불멸의 여자’ 중.<전남대학교극문화연구회 제공>
 지난 6일과 7일, 전남대 사거리 지하에 위치한 극장 ‘씨디아트홀’에서 공연이 있었다. ‘전남대학교극문화연구회(이하 전대극회)’가 공연한 연극 ‘불멸의 여자’였다. 나는 6일 저녁 7시에 첫 공연을 보러 갔다. 기성 극단이 아닌 대학생들이 올리는 공연이어서 신선한 기대를 품었다.

 가난한(?) 대학생들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극장은 화장실도 고장이고, 후텁지근한 날씨에 냉방시설도 충분하지 않은 곳이었다. 극이 시작하기 전 관객들은 손부채로 열기를 식히느라 분주했다. 자리 배정도 미숙해서 같은 자리에 앉을 사람이 속출했다. 누군가는 양보하고 누군가는 운 좋게 지정석을 확보했다. “이것도 뭐 기성 극단이 아닌 극단이 하는 연극을 보는 재미지”라고 치부하기엔 무더운 날씨에 짜증이 좀 났다.

 극의 공간은 팍스마트라는 대형마트 안에 위치한 ‘엔젤 가디언’이라는 화장품 코너다. 그 화장품 코너에서 일하는 두 여직원, 희경과 승아가 등장한다. 희경은 마흔이 다 되어가는 베테랑 사원이고, 승아는 일한지 3년 넘은 직원이다. 희경은 자궁암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승아는 여러 명의 남자를 섭렵해서 결혼을 잘 하겠다는 신분 상승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극의 서두에서 이미 승아는 정육점 코너의 직원과 의미 없는 하룻밤을 보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여기에 진상 손님 정란이 나타나 그녀들의 하루를 뒤흔들어 놓는다. 아마도 우아한 사모님쯤으로 나오는 것 같은 지은이라는 손님도 같은 화장품을 여러 번 바꾸며 매장을 드나든다.
 
▲ 감정노동자 두 여성 일과 뒤쫓아

 희경과 승아가 부르는 일본 애니메이션 ‘캔디’의 주제가는 극의 주제를 잘 드러내면서도 어색하고 민망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서비스업종에 일명 ‘감정 노동자’인 희경과 승아의 하루를 따라가는 연극이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그녀들의 처절함은 잘 알겠으나 굳이 ‘캔디’여야했나 싶었다. 어쨌든 극은 그렇다. 늘 스마일의 상태로 고객들을 상대해야 하고 앉아서 쉴 수도 없고, 아파도 바로바로 병원에 가기 힘든 화장품 매장의 직원들의 애환이랄까, 그런 것들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다. 진상 손님 정란은 몹시 모호한 대사들을 연발한다. 엔젤 가디언에서 구입한 화장품을 바르고 주름이 더 늘었다며 찾아 온 정란이 두 직원을 상대로 진상을 떨면서도 가끔 툭툭 던지는 대사들은 저 여자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들게 한다. 정란은 팍스마트가 들어서기 전 동네에서 조그만 슈퍼를 하던 사람이었고, 대형마트에 밀려 가게를 잃은 뒤에는 바로 그 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했다. 정란은 처음엔 진상 떠는 불편한 고객의 모습이었다가 나중엔 약간의 정신병이 있는 우울한 사람으로 보였다가 마지막엔 대형마트에 한을 품은 채 한없이 떠돌아다니는 원귀의 모습으로도 읽힌다.

 여자 네 명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남자 배우는 김상필이라는 마트 지점장이다. 상필은 나중에 지은의 남편으로 밝혀지며, 엔젤 가디언의 두 직원 희경, 승아와 모두 불륜 관계에 있음도 드러난다. 진상 손님 정란을 자기들의 근무 태도를 감시하러 온 ‘암행어사’로 여기고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던 희경과 승아는 상필의 부인인 지은에 의해 온갖 모욕과 수모를 당한다. 그 결과 승아는 직장을 떠나고 희경은 무너지고 또 무너져서 살인을 저지른다.

 ‘불멸의 여자’는 극단 ‘인어’의 작품이고, 2013년 서울연극제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극을 보러 가기 전에 나는 최원석의 희곡을 먼저 읽었다. 희곡을 읽고 나서 왜 하필 이런 대본을 대학생들이 택했는지 의아했다. 대학생들이 하는 연극치고는 막장의 요소가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욕설이 난무하고 성적 코드도 강하고 거기에다 살인까지.
 
▲114회 정기공연…광주서 54년된 극단

 ‘오늘의 웃음이 내일의 나를 부자로 만든다’는 희경과 승아의 구호가 말해주듯이 이 극은 자본주의 안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돈에 의해서 삶이 좌지우지되는 인간들. 그 폐해를 뻔히 알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을 탈출하기 힘든 인간들. 정란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희경에게 찔려 죽는 모습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약자가 약자를 해한다. 거대한 시스템에 대항해서 싸우다 무너진다기보다는 아무런 힘이 없는 자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해한다.

 갑자기 전대극회에서 이 대본을 택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무슨 연유로 (취업을 위한)공부를 할 시간에 (돈도 되지 않는)연극 연습이나 하고 있는지 개개인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이들도 곧 진입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내일의 희경과 승아가 오늘 자신들의 미래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미 시스템에 진입한 선배로서 그들이 안쓰럽고 또한 대견했다.

 전대극회의 이번 공연은 114회 정기공연이었다. 1965년부터 시작해서 무려 54년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광주·전남권에서는 유서 깊은 연극 집단이다. 요즈음은 많은 대학 동아리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고 특히나 연극 동아리들은 속속 없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뚝심 있게 연극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 전대극회는 보호해줘야 마땅한 그 어떤 것으로 느껴졌다. 더구나 그들은 아마추어라고 하기에는 몹시 진지한 태도로 연극을 대하고 있었다. 프로인 듯 프로가 아닌 프로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나 해야 할까.
임유진<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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