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율학습 폐지론자들께 묻습니다’ 기고에 반박하며

본보는 지난 3일자 7면에 김옥희(광주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 씨가 기고한 ‘자율학습 폐지론자들께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경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씨가 반박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대로 싣습니다. <편집자주>

며칠 전 김옥희 광주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이 광주드림에 기고한 글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말로만 학생들을 위하지, 실제 학생의 삶에 관해서는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교육당국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글이었다. 교육청 앞에서 강제 자율학습을 폐지하라고 시위하지는 않았지만, 야간과 주말 및 방학의 자율학습을 전면 폐지하라고 주장하는 학습시간줄이기 운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활동회원으로서 이에 답하고자 한다.

광주를 비롯한 전국의 인문계 고등학생 대다수가 수업을 마친 후에도 쉬지 못하고 보충학습과 야간자율학습에 얽매인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당연한가? 모든 고등학교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바로 그런 안일한 생각이 학생들의 시간을 빼앗고 삶을 피폐하게 하고 있다.

사교육으로 공부 시간을 보충하는 것은 결코 대안이 아니다. 장소가 바뀌었을 뿐 학생들이 붙잡혀 공부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다니게 되면 위험하기 때문에 보호받을 수 있는 학교나 학원에 보내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해결방법은 청소년에게 위험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지 한 공간에 청소년들을 몰아넣고 공부를 시키는 것이 아니다. 좁은 교실에서 잠을 자지도 다른 일을 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앉아서 공부를 하도록 시키는 것, 끊임없이 성적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과연 보호인가 되묻고 싶다.

▶ 강제 학습 폐지를 넘어서

그렇다면 보충자율학습의 강제성만 없애서 참여하고 싶은 사람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넘어서 저녁과 야간, 주말과 방학의 보충자율학습을 전면 폐지하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공부란 이미 하고 싶음과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공부하는 양의 기준도 ‘남보다 더 많이’가 되었다. 4당5락(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 ‘네가 잘 때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간다’ 따위의 말들이 금언처럼 떠돈다. 경쟁을 하면 할수록 공부량은 늘어나고 학생들의 자유시간, 휴식시간만 줄어드는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고 싶은 사람만 남고, 하기 싫으면 집에 가라’고 한들 경쟁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서야 맘 편히 놀 수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함께 쉬고 놀자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가능하도록 제도로서 학생들의 시간·휴식권·여가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당연히 지금의 미친 듯이 달아오른 입시경쟁을 해소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경쟁에서 낙오된 혹은 벗어난 사람들의 삶을 보장하는 것과 함께 가야 한다. 그렇다고 그 뒤로 미뤄서도 안된다. 지금도 학생들의 삶은 의미를 잃은 채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놀고 싶고 맘대로 휴대폰 하고 싶은게 뭐가 나빠?

“고등학교 선생님에게 물었다. ‘학생이 야자를 안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나요?’뢾중략뢿 ‘계획이 확실하고 부모님도 야자 빼기를 원하신다면 빼줘야죠. 그런데 그런 학생은 없어요. 당장 놀고 싶고 맘대로 휴대폰 하고 싶어서 야자를 빼겠다고 하는데, 그걸 알고도 그래라 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교사가 이 세상에 있을까요? 그건 직무유기 같은데요?’”

이 대목에서는 기가 찼다. 앞으로의 계획도 삶의 여유가 있어야 세우는 거다. 그리고 그런 계획을 확실히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필자는 나이상 청소년이 아닌 사람, 즉 비청소년 중에서도 앞으로의 계획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여러 상황에 휩쓸리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그것이 개인의 부족함이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당연한 쉬고 놀 권리를 빼앗을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당장 놀고 싶고 맘대로 휴대폰 하고 싶어서 야자를 빼겠다는 것, 이것이 어디를 봐서 잘못된 요구인가. 아주 당연한 요구다. 원래 쉬고 놀아야 할 시간을 학생들이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잘못된 것은 학생의 휴대폰 사용을 규제하는 반인권적인 규칙과, 쉬어야 할 시간에도 공부를 강요하는 학교와 사회며, 당연한 욕구를 이상하다고 하는 당신들의 생각이다.

당장 당신들의 삶에 적용시켜 보라. 직장에 갔는데 고용주가 딴짓 말고 근무에 집중하라며 핸드폰을 모두 걷는다. 업무시간에 졸면 복도로 내쫓아 세워놓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원래는 4시 반에 끝나야 하지만 밤 10시까지 야근을 시킨다. 원래 출근시간도 8시30분이지만 20분 전에 나와서 근무 하라고 한다. 토요일에도 나와서 6시까지 근무해야 한다. 휴가기간에도 마찬가지다. 당신들이라면 살 마음이 나겠는가? 쉬고 놀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 당신들에게 누군가가 ‘당장 놀고 싶고 맘대로 휴대폰하고 싶어서 칼퇴근을 하겠다는데 그걸 알고도 보내주겠냐?’라고 비아냥거린다. 열이 뻗치지 않겠는가. 학생들은 다를 것 같나.

▶“야자하는 교실에 한번이라도 가봐라”

“학생들에게 시간을 돌려줘야 할 주체는 도대체 누구일까?뢾중략뢿 누가 속시원히 말좀 해줬으면 좋겠다. 여기서 한가지는 분명하다. 광주교육은 아이들의 ‘살아가는 힘을 기르기 위한 성장’에 지상 최대의 가치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진정성만이 답 없는 곳에 새살을 돋게 할 것이다.” 기고문의 일부다.

김옥희 연구원의 기고문 전체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무책임함’이라고 느껴진다. 개인의 무책임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빛좋은 슬로건 뒤에 숨어 실질적인 변화는 시도하지 않고 ‘모두가 그렇게 하는데 어쩔 수 없다’로 일관하는 교육당국의 무책임함이다. 자율학습을 자율로 시행하라고 공문을 보내고 점검을 해왔다고 썼다.

아니 그럼 어떻게 이렇게 학교에 다니지 않는 필자까지도 알정도로 공공연하게 강제자율학습이 이뤄진다는 말인가. 교육청은 단속하지도 못했던 무능함 혹은 알고도 묵인해왔던 비겁함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다시 한 번 청소년이 흔히 듣는 말인 ‘네가 커서 바꿀 수 있는 직책 올라가서 바꿔라’는 말이 개소리임을 깨닫는다. 당장 그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어쩔 수 없다’라는데.

필자와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한 고등학생 활동회원은 이 기고문을 읽고 이렇게 썼다. “제발 ‘살아가는 힘을 기르기 위한 성장’에 지상 최대의 가치를 두고 있으면 야자 하는 교실 한번만 가보라고 해라. 거기서 무슨 살아가는 힘을 기르기 위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오히려 다 소진되서 죽어가고 있는데.”

학생들을 서서히 죽여가면서도 모르겠다며 방치하는 당국은 존재가치가 없다. 또 교사·학부모 등 교육관계자들은 다시는 학생들이 게을러서 맘대로 놀라고 보충자율학습을 뺀다는 어리석은 조롱을 하지 마라. 당장 학생들의 시간을 되돌려 놔라.
이경은 <청소년이권행동 아수나로>

※아수나로 홈페이지(studyoff.org)에서 학습시간 줄이기 5대 요구안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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