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 특별순례 5km구간 대학생 등 100여 명 동행
푸른길공원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 낭독

▲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빛고을 천일순례 500일째를 맞는 28일 서구문화센터 앞에서 순례에 참여한 100여 명의 시민들이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한 보는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보. 내딛는 만큼만 정직한 걸음으로 돌아온다. 침몰한 진실을 구하기 위해 1000일을 걷기로 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정직한 걸음은 딱 절반을 왔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고 안전한 마을 만들기를 염원하며 시작된 ‘빛고을 천일순례’가 500일째를 맞은 28일. 서구문화센터에서 남구 빅스포 뒤 푸른길까지 500일 특별순례가 진행됐다. 매주 월요일마다 천일순례에 참여하고 있는 금호마을의 서구문화센터를 출발해 역시 같은 날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남구 푸른길까지 이어지는 코스였다.

 어스름이 짙어진 오후 7시, 노란 조끼를 맞춰 입은 순례단 100여 명은 출발지점에 섰다. 천일순례단에 참여할 때 착용하는 조끼의 노란 색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더욱 빛났다. 조끼 부족 사태를 걱정해야 할 만큼 많은 인원이 참여한 것이다. 이에 시민상주 단체 톡방을 통해 사태를 예견한 참여자들은 마을촛불 시 입는 조끼를 가져와 ‘불상사’(?)를 막았다.

 500일 특별순례에는 앳된 학생들이 다수 참여했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광주대 간호학과 신입생 50여 명이 교수의 권유로 줄줄이 참여 신청을 한 것. 올해 스무 살이 된 이들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나이다. 친구들과 함께 걸으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에 들뜬 표정이 역력했다.

 빛고을 천일순례는 매일 다른 길잡이가 참여하고 있다. 한 사람이나 특정 단체가 순례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 누구든 신청을 통해 참여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세월호 참사 이후 마을 곳곳에서 `안전하고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지향하며 벌어지고 있는 마을촛불모임이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밖에 광주지역 많은 시민사회 단체를 비롯해 대안학교 학생들도 걸음을 보태 왔다.

 이번 특별순례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5km가 넘는 순례 길에도 지치기보다 시종일관 유쾌한 모습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벚꽃 아래서 셀카를 찍고 수다를 떨다가도 만나는 시민마다 큰 소리로 인사하며 9명의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들이 그려진 팜플렛을 건네고 천일순례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나란히 걷던 양혜린·박희선 씨는 “이토록 장거리를 걸어본 게 오랜만이다”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2년이 지나면서 많이 잊히고 있는데, 이렇게라도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같이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의미 있다”고 말했다.

 같은 과 학생 정기영 씨도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당한 일이라 남 일 같지 않고 슬펐는데 순례에 참여하게 돼 뜻 깊게 생각한다”면서 “개인이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지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천일순례단을 마주한 시민 가운데 상당수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거나 건네받은 팜플렛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등 관심을 보였다.

 1시간30여분 만에 순례를 마친 순례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남구 푸른길 촛불 등 시민상주들이 마련한 다과상과 함께 우렁찬 박수소리였다. 마지막 순서로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고 있는 남구 푸른길 촛불문화제가 대미를 장식했다.

 촛불문화제에서 이날 특별순례의 길잡이를 맡은 이민철 시민상주가 500일 순례를 맞은 소감을 발표했다.

 “세월호 이후 당신과 나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돈과 이윤보다 안전한 사회가 더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광주의 마을들이 촛불을 켰습니다. 조만간 100회를 맞이하는 마을촛불들은 이웃의 소중함을 느끼고 함께 살아가는 마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일순례 참여를 통해 더 많은 마을을 만나고 이웃을 만납니다.”

 이날 역시 순례단과 마을촛불은 많은 시민을 만나 진실을 들려줬다. 그냥 지나치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귀 기울이는 이들이 함께했다. 현장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완성된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이하 4·16인권선언)이 모든 참여자들의 입을 통해 낭독될 때는 푸른길 공원에 큰 울림을 전했다.

 한편 빛고을 천일순례는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과 17개 마을촛불모임 주최로 100여 개의 마을 순례를 목표로 시작됐다. 지난 2014년 11월15일 시작된 천일순례는 2017년 8월11일에 종료된다.

 오는 4월16일 세월호 참사 2년째를 맞아 팽목항 추모제를 비롯해 서울 등 각지에서 기억을 위한 행사 등이 개최될 예정이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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