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며느라기(期)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며느라기’라는 시기가 있대. 시댁 식구한테 예쁨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그런 시기. 보통 1~2년이면 끝나는데 사람에 따라 10년 넘게 걸리기도, 안 끝나기도 한다더라고.”

 이 ‘며느라기’때에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있답니다. “제가 할께요.” “저한테 주세요.” “제가 다 할께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랑하고 결혼하고 세상을 온통 긍정으로 바라보려던 시기에 진심으로 했던 이 말들이 결국 불평등의 사슬안으로 스스로를 묶어버리게 한 것이라는 생각에 왠지 더 속상해지기도 합니다. ‘착하고 싹싹한’ 며느리를 흡족해 하는 시어머니와 가족들을 떠올리며 우리의 ‘민사린’은 점점 이런 의문에 빠져듭니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한 순간들이 자꾸자꾸 떠오르는 걸, 어떡하지?’ ‘며느라기’수신지 글 그림 (글프레스 : 2018)
 
▲“좋게 좋게”노력이 심화시킨 차별

 지난해 인기리에 연재되던 웹툰 ‘며느라기(수신자 작품)’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웹툰으로는 보지 못했지만 책을 받아 넘겨가며 보는 맛은 또 색다르더군요. 우선 책 제본부터 특별합니다. 투명 프라스틱으로 1차 커버가 씌어져 있는데, 위로 쓱 벗겨내면 웃고 있던 주인공 민사린의 얼굴이 울상으로 바뀌는 새로운 표지가 보입니다. 책을 접한 이들 모두가 아무 설명 없이도 이해해 버리는 구조인 것이지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뭔지 모를 불편함이 있는 이 땅의 며느리들 그리고 여성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회 연재될 때마다 많은 댓글이 달렸고 그래서 이 책의 뒷부분에는 그것들 중 일부를 게재해 두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회차별로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더군요. 그 중엔 이런 글도 있었습니다.

 “웹툰엔 아주 평범한 남자와 여자, 크게 나쁘지 않은 시댁 식구들이 나오는데 그 일상들 사이에 수많은 불합리와 불평등이 있다. 윗세대가 보기에 ‘우리 땐 그거보다 더했어’ 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겠으나 1980년대에 태어나서 자란 여자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불평등’이 아주 잘 묘사돼 있어 좋다”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소위 아름다운 전통을 유독, 그것도 여성-며느리에게만 강요하는 현실은 매우 답답합니다. ‘그래도 좋게 좋게’ 라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다수의 여성들이 본의 아니게 결국 벗어날 수 없는 불평등의 고리를 계속 이어가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구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민경 글 : 봄알람) 에는 이런 여성들에게도 이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고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 과장하는 거 아니야“ 나쁜 의도로 그런 게 아니야. 표현이 서툴러서 그래. 좋게 좋게 가면 되지 꼭 그렇게 반응을 해야겠니? 너 정도면 괜찮은데 왜 페미니즘 해?’ 등등 수많은 사회의 목소리들 사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은 이들에게 소리내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보다 평등하게” 뭐라도 해보자

 2016년 강남역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이후 수면 아래로 묻히고 자주 잊혀지던 수많은 여성문제들이 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성범죄의 경우, 세계적인 ‘미투운동#MeToo’ 의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 역시 굉장한 이슈가 되고 있지요. 권력을 가진 명망가들의 행태가 밝혀져서 더욱 그 파장이 컸고, 용기 낸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응원#WithYou 이 이 흐름을 확산시키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직면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반대로 여성 혐오, 이퀄리즘 등 혼란과 혐오의 말 또한 넘쳐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과정을 어떤 힘-권력을 뺏고 뺏기는 싸움으로 본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함께 하는 사회가 보다 평등하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임을 떠올려야 합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대해 저항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결국 시대가 바뀌어서 어쩔 수 없이 ‘인정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 본질적으로 인간 존중과 권리의 문제인 것입니다.

 ‘며느라기’수신지 글 그림 (글프레스 : 2018)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트이는페미니즘’ 이민경 글 (봄알람 : 2016)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