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관 새주인 선정 위한 요리 경연
마지막 주제가 ‘주먹밥’인 이유는?

▲ 연극 ‘오! 금남 식당’.
 극단 ‘토박이’는 1983년에 창단됐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에서 시민군 홍보부장으로 투사회보를 발행하며 시민군들의 눈과 귀가 되었던 고 박효선(1954~1998)과 몇몇 연극인들이 만든 연극 단체다. 1988년 ‘금희의 오월’을 시작으로 3대 오월극으로 불리는 ‘모란꽃’(1993), ‘청실홍실’(1997) 등을 만들었다. 80년 5월 광주를 잊지 않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토박이’의 노력은 3대 오월극 이외에도 여러 편의 연극 작업과 영화 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광주민중항쟁 38주년을 맡는 이번 5월에 ‘토박이’에서 ‘오! 금남 식당’을 공연한다고 해서 찾아갔다.

 ‘오! 금남식당’은 다분히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였던 ‘금희의 오월’이나 ‘모란꽃’, ‘청실 홍실’과는 조금 다른 서두로 시작한다. 금남관의 주인 오금남은 이제 후계자에게 식당을 물려주기 위해 제자 두 명에게 요리 경연을 명한다. 두 제자의 보조 요리사까지 해서 네 명은 오금남이 요구하는 주제에 맞추어 요리를 만든다. 그러나 괴팍한 성격의 오금남에게 모두 퇴짜를 맞는다. 제자들이 만들어 낸 요리에 실망한 오금남이 마지막으로 던진 주제는 ‘주먹밥’. 제자들은 요리라고 할 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주먹밥을 만들라는 오금남의 요구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해 항의하지만 결국 주먹밥을 만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두 제자의 주먹밥 역시 오금남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스승이 요구하는 주먹밥의 요건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오금남이 그 날의 주먹밥 이야기를 하면서 극은 유쾌 발랄했던 서두를 벗어나 과거로 미끌어져 들어간다. 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오금남에게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다. 1980년 오월 광주 시민 모두가 하나 되어 독재에 항거했던 그 시간. 금남의 아들도 엄마의 만류를 뿌리치고 시민군에 합류한다. 이런 시민군들을 위해 광주 사람들이 만들었던 주먹밥. 하나로 뭉치는 그 힘.

 시민들이 만든 주먹밥처럼 각기 다른 인생을 살던 사람들이 함께 뭉쳤던 항거 마지막 날 도청 투쟁. 처절한 그 날의 기억이 38년을 지나서 작은 극장에 모인 관객들의 가슴을 관통한다. 아직 어린 고등학생을 내보내려는 다른 시민군들과 끝까지 함께 싸우고자 하는 금남의 아들. 그리고 곧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총알. 쓰러져가는 시민군들.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그들. 시민군이라는 이름하에 죽어가는, 광주에 살고 있었던 것 말고는 아무런 잘못도 없던 순결한 그들.

 극을 통해서 전해지는 아픔과 상실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아 나는 연극을 한 번 더 보러 갔다. 오랜 시간 ‘토박이’와 함께 해 온 박정운 배우가 석은장(입으로 된장, 고추장을 담그는 자칭 장의 달인)으로 분하여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 관객들과 소통을 시도하는 모습을 한 번 더 보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언제나 무겁고 진지한 역할을 통해 오월의 진실을 알리는 데 긴 시간 일조해 온 임해정 배우가 연기해 내는 심심해를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보고 싶기도 했다.

 토박이의 이번 연극은 극에만 집중해야 하는 전통적인 연극을 벗어나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극 안에 끌어들이고, 관객과 동시에 호흡하는 마당극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극단 토박이를 창단한 박효선이 78년, ‘함평고구마’와 79년 ‘돼지풀이 마당굿’을 통해 마당극 정신을 계속 이어갔던 것을 생각하면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극에서 오금남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송은정은 극단 토박이가 동호인극단 성격을 벗어나 일반인 단원을 모집한 1987년에 입단했다. 공개모집 1기 출신이다. 한 때 토박이 대표를 맡기도 했던 송은정이 ‘오! 금남식당’에서 새로운 후계자를 뽑기 위해 의미 있는 요리 경연 대회를 벌이는 것 역시 자못 의미심장한 부분이었다.

 관객들은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도 연기하는 배우들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 마당에 앉아 있는 것처럼 무대와 함께 호흡했다. 광주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군인이 시민군을 때리고 질질질 끌고 갈 때는 소리를 지르면서 안타까워했고, 경연을 벌이는 요리사들에게 적극 호응했다. 축제. 우리는 한 때 오월을 광주만의 축제로 부른 적도 있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독재에 항거하면서 정연한 질서와 안정을 파괴하지 않았던 그 시간들. 잔인하게 진압되기 전까지 모두 같은 마음으로 광주를 지켜냈던 그 때. ‘오! 금남식당’은 초반부에는 그런 흥겹고 함께 하는 분위기를 관객과 같이 만들어냈고, 중반부에서는 광주의 진실을 말했다. 후반부에서 이루어지는 극의 결말은 어쩌면 몹시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1980년 오월에 태어난 아이가 중년이 되었을 2018년. 극단 ‘토박이’는 여전히 광주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지금 ‘토박이’를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최선을 다해왔고 여전히 힘차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새로운 후계자들이 나타나야 하는 지금이 되었다. 광주의 진실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것을 연극으로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고 박효선이 마지막 날 도청에서 빠져나와 광주를 알리기 위한 연극작업을 계속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한편, ‘오! 금남식당’은 민들레 소극장(동구 동계천로 111 4층)에서 지난 11일부터 26일까지 1차 상설공연을 마쳤다. 2차 상설 공연은 6월부터 10월까지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5시30분, 토요일 오후 3시에 각각 무대에 오른다.

 관람료는 일반 1만 원, 초·중·고등학생 5000원이다.

문의: 062- 222-6280.

임유진<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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