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을 없애니 배움의 장벽 걷히다
C Program 계기, 학생중심 공간혁신
 

▲ 바닥을 활용한 교실 수업 모습.
 모두 책상 의자에 앉아 정면을 향해 있는 모습은 익숙한 교실 풍경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딱딱하고 좁은 교실 공간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이 물음표 하나에서 출발한 ‘공간 혁신’은 2년 사이 무수한 느낌표들이 되어 그 답을 대신하고 있다.

 빛고을 혁신학교는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혁신의 토대를 일궈온 어룡초등학교(광산구 소촌로)가 또 한 번 일을 냈다. 2년 전 본격적으로 공간 혁신에 나선 어룡초는 빈 공간을 되살리는 일에서 시작해(본보 2017년 4월3일자 ‘어룡초 공간혁신, 의자 하나 놓는 일부터’) 교실의 풍경을 바꾸어 놓기에 이르렀다.

 책상을 치우고 푹신한 매트 위에 엎드려 하는 수업, 보건실 대신 교실 한 켠 보금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학생들, 쉬는 시간은 곧 보드게임을 하거나 복도의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 시간…. 어룡초에선 이 모든 게 현실 가능한 꿈이다.

 많은 학교의 경우, ‘교실 벽에 못 하나 박는 일조차 쉽지 않다’고 한다. 예산 문제 등 부수적인 일들이 뒤따라 신경 쓰이는 탓도 있지만, 시설의 변화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어서다. 때문에 어룡초가 이뤄낸 변화상은 교실에 대한 선입견을 깨부수는 작업이 전제돼야 설명이 가능해진다.

바닥에 앉아서 수업한다.
 
 ▲목재 놀이터 신설…25개 학급 교실 변화로도
 
 “지금까지 모든 학교가 교실의 주인을 ‘교사’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 방향 수업을 위한 책상 배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교실에서 생활하는 주체는 학생인데도 말이에요. 그래서 교실의 주인 자리를 학생에게 돌려주자는 각오를 세웠습니다.”

 어룡초 황덕자 교장은 공간혁신의 시작과 끝이 ‘학생’에게 있다고 말했다.

 어룡초는 ‘학생이 학생 관찰하기’와 ‘교사가 학생 관찰하기’를 통해 학생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했다. 이는 학생들에게 놀고 싶은 욕구, 혼자 있고 싶은 욕구,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당연한 진실을 깨닫는 첫 출발점이 됐다.

 “학생들에게 ‘어떤 교실을 원하는지’ 물으면, 가장 먼저 나오는 답변이 ‘책상을 없애고 싶다’는 거예요. 당혹스러울 수 있겠지만, 또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바닥에 앉아서 혹은 배 깔고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되거든요.”

 어룡초는 2016년 공간혁신에 대한 연수를 계기로 C Program(씨프로그램)과 만나면서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C Program은 기업가(다음, NC소프트 등)들이 추진한 벤처 기부 펀드로서 어룡초는 그해 12월 ‘배움의 공간’이라는 프로젝트로 전국 4개 학교 중 한 곳에 선정됐다.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교직원과 학생, 학부모뿐 아니라 실내디자인, 공간예술 전문가들까지 참여한 학교공간위원회가 꾸려졌다. 학교공간위원회에서도 중심은 언제나 ‘학생’이었다.

 공간에 관심이 있는 고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공간 투어’를 실시했다. 광주지역에서 대표적인 청소년 공간, 삶디자인센터와 야호센터를 찾아 공간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공간 투어에 동행했던 어룡초 김복현 교감은 “공간 투어를 마친 뒤 학생들이 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냈다”며 “실질적인 경험이 녹아든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공간위원회의 협의를 통해 구체화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간위원회 빌표시간.

 
 ▲“바닥에 배 깔고 수업 듣는 것, 가능해졌다”
 
 그렇게 어룡초에서 가장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오는 목재 놀이터가 4층 복도의 유휴공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걱정거리였던 ‘안전’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소됐다.

 “학생들은 직접 공간 구성에 참여하면서 ‘내 삶의 공간에서 주인이 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공간이 바뀌면, 공간을 사용하는 규칙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요. 교사가 규칙을 강요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은 스스로 규칙을 세워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각 학급을 대상으로 ‘교실 공간 프로젝트’ 공모가 추진됐다. 담임교사와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25개 학급에서 저마다 다른 설계안이 나왔다. 학습공간과 놀이공간을 분리한 교실이 있는가 하면, 그 사이의 경계를 허문 교실도 있다.

 공통점이라면, 공간의 변화가 수업의 변화로 학생들의 태도의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등교시간이 빨라지고, 하교시간은 늦어졌다. 교실을 편안하고 즐거운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다.

 이 과정에서 예산을 담당하는 행정실의 지원은 든든한 뒷받침이 됐다.

 어룡초 선지영 행정실장은 “부족한 예산과 까다로운 법령으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공간의 변화가 학생들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공간에 대한 투자가 곧 교육에 대한 투자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움의 공간 프로젝트에서 시설 공사 등에 소요된 예산은 C Program의 투자와 기부체납으로 이뤄졌고, 어룡초는 시공 시 학교 발전기금 1000만 원을 확보해 지출됐다.

교실 뒤에 놓여 있는 소파들.

 올해는 광주시교육청이 지원하는 시설 재구성 사업 5000만 원을 지원받아 동아리 활동 공간인 ‘꿈 끼 공간’이 조성을 앞두고 있다.

 어룡초등학교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로 2004년 5월 개교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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